최원석 프로젝트 렌트 대표
2020년대를 경계로. 우리의 시간 흐름은 어떤 면에서 바뀌어져 버렸다. 어릴 적의 하루는 매우 긴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하루하루는 순식간인 느낌이 들 정도다. 나이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일상은 무료할 틈 없이 무언가로 끊임없이 채워지고 자극되고 있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바뀌고, 변화해 가는 것이 오히려 일상인 시대, 가장 변화가 느렸던 오프라인 비즈니스 역시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코로나와 함께 우리가 알고 있던 수십년의 일상이 바뀌어 버린 것들도 많고, 온라인의 성장과 더불어 이젠 모든 것을 버튼 하나로 결재하고 받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리테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더 이상 불편함과 신기함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제조업의 시대에 익숙한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고민할 때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하면 좋아할 거야!” 또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아해 줄 거야!”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여전한지는 의문이다. 다들 무인 편의점에 열광했던 과거를 기억하는지? 직원도 없이 물건을 사서 들고나오기만 하면 결제가 완료되어 너무나 신기했던 미래의 매장 같았다. 더 현대 서울의 언커먼스토어도 같은 맥락의 매장이다.

한때 리테일의 미래라 불리던 ‘아마존고(Amazon Go)’가 2023년 3월 전면 철수를 결정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아마존고에는 한번의 신기함이 전부였고 의미 있는 쇼핑 경험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가 핵심 문제라고 평가한다. 편하고 신기한 것은 일회성이고 기능적인 관계일 뿐이고, 결국 모든 일의 본질은 고객이자 사람이다. 개발자의 사고가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유의미한 쇼핑 경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화려한 기술도 한번의 신기함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유의미한 쇼핑 경험이란 어떤 의미일까? 예를 들면. 길거리에서 신기하고 예쁜 매장을 발견하면 우리는 기억하고 방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입구에서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뭐 하는 매장일까?” “들어가면 내가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 만큼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매장에서 우리는 상품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간과 공간 역시 소비한다.
리테일에서는 소위 ‘오픈빨’이란 말이 있다. 새로 생겼기에 신기함으로 2~3개월은 장사가 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재방문할 만한 가치 있는 경험과 시간을 제공했는지가 그 매장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 그 공간에서 소비한 시간과 머무르는 경험이 매력적일 때, 우리는 그곳을 친구에게 추천하고, SNS에 공유하며, 사람들에게 가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신기함은 첫번째 방문을 만들고 이야기거리가 되기엔 좋지만 유통기한이 있는 법이다.
리테일테크, 기술과 경험의 만남
다양한 기술이 리테일과 연계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 리테일라 불리는 영역은 IoT, AI, AR/VR, 모바일 및 비대면 결제 등의 최첨단 기술을 통합해 고객의 쇼핑 경험을 혁신하고 비즈니스 운영을 향상하는 새로운 소매 형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오프라인 비지니스와 함께 하는 기술적인 접근들의 총칭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얼마전 대전 성심당에서 빵 스캐너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장비의 신기함은 얼마가지 않기에 중요치 않다. 핵심은 더 쾌적한 쇼핑 경험, 결제 대기 시간의 최소화, 그리고 그 편의성만큼 고객 응대에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활용해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다.
우리는 리테일테크에 대해 2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첨단 기술을 결제, 재고 관리, 물류 등 유통 프로세스에 접목해 리테일 전반을 효율화시키는 관점이다. 로봇 딜리버리 서비스, 물류최적화를 위한 AI 등 이전에는 불가능했고 비효율적이였던 기능들을 로봇과 AI의 도움으로 최적화하는 기술 방향이다. 예를 들면 무인 주류 자판기의 성인 인증 기술이나 세븐일레븐이 운영하는 무인 편의점 ‘시그니처’의 경우 손바닥을 대면 결제가 되는 ‘핸드페이’도 대표적인 사례다.
두 번째는 오프라인 매장 내에서 소비자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기술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사실 온라인 마케팅이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것은 마케팅 분야에서 처음으로 측정 가능하고, 특정 가능한 고객에게 제안을 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오프라인 역시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이 가능한 기술이 성장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온라인에서 고객 데이터 베이스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이런 정보들을 모아 고객을 파악하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좋은 제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세일즈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미국의 스타트업 B8TA는 제품을 팔고 테스트해보고 싶은 고객사에게 구독형 모델로 공간을 팔고 고객 피드백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한국에 다양한 스타트업들도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매장 내 고객 데이터를 연구하고 트래킹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서비스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마케팅 성과를 측정해야 할까?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 좀 더 근본적인 사람에 대한 욕구를 이해하기 위한 리서치들이 시작되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의 반응과 행동, 소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세일즈 관점이 아닌 마케팅의 관점에서 오프라인에서 마케팅 효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더 이상 기존의 온드미디어(Owned Media)를 보지 않는 시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지금 마케팅 성과에 대한 측정은 너무나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분 좋게 기억되고,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가? 일방적인 정보의 제공과 푸쉬의 마케팅의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 소비자의 바람, 니즈(Needs)가 아닌 욕망(Desire)를 제안해야만 하기에 이제 고객의 본심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프레임의 변화가 필수다.
단순히 센서를 설치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어떤 인사이트와 어떤 프레임으로 분석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할 지가 더 중요하다. 2024년 ‘파친코 시즌 2’ 팝업 스토어의 경우 IT장비와 정성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분석을 통해 방문객들에 대한 이해와 마케팅 효과의 파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팝업스토어 중 하나였다. 방문객 수,전환율에서부터 파칭코시즌2에 대한 인지도 변화, 시청희망의지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긍적적인 Data를 기반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에 대한 결과를 측정할 수 있었다.

파친코 시즌2 팝업스토어
고객의 마음을 분석하기 위한 팝업스토어
필자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리테일테크의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프로젝트렌트는 2019년도부터 data를 기반으로 팝업스토어와 매장 내에서의 마케팅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서 분석을 해왔다. 얼마 전엔 프로젝트 렌트와 현대자동차 선행디자인팀은 ‘오픈 디자인 랩(Open design Lab)’이라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고객조사 및 분석, 워크샵을 위해 한 달간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은 다양한 질문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 생산까지 반영하기 위한 테스트랩으로서 운영되었다. 제품 개발에 있어서도 개발자나 디자이너끼리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바랐다.
실제 공간에서는 CCTV와 센서, 그리고 설문조사 및 FGD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형태로 소비자 리서치가 설계되어, 제품 생산에 단서가 될 정보들을 모으고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자이너들과 일반인들이 공감대를 키우기 위한 확장된 형태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였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기존의 전통적인 설문조사 리서치 방식은 텍스트 형식으로 필요한 질문들을 나열하고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세요.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과연 사람들은 그 단어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마케팅과 행동과학 전문가 제럴드 잘트먼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5%가량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당신이 좋아하는 어제저녁 본 노을의 빨간색은 어떤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비슷한 단어로 설명해서 나열한 후 골라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다. 과연 사람들이 고른 항목의 결과를 기반으로 우리는 사람들이 원한 빨간색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픈디자인랩은 직접 실물을 보며, 왜 이런 상품을 기획했는지, 이런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도 하며 새로 출시를 고려하는 상품에 대해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그와 연결된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일종의 B8TA과 유사하지만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이슈에 대한 질문과 체험으로 구성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센서와 카메라, 설문조사 등 서로 다른 타입의 데이터들을 함께 비교 분석함으로써 단순 수치(방문객 수, 체류시간)가 아닌 상관관계를 찾는 것이 매장 내 리테일 데이터 분석의 핵심이다.
결과론적으로 일부 조사 항목에선 생산자와 소비자 생각에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고, 여기에서 나온 의견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10여 가지 상품 아이디어 중 몇 가지만 골라서 실제 제품을 출시 예정이다. 사람들은 텍스트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제 기능성 소비를 기대하지 않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언어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을 진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방금 소개한 사례는 정답이 아닌 한 사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처럼 ‘어떤 질문을 통해 리테일테크의 방향을 잡는가’이다.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 낼까? 아니면 기술을 통해 소비자를 이해해 듣고 싶은 형태로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많은 기업이 정밀해진 리테일테크에 나서고 있다. 마케팅 담당자라면 이런 리테일테크에서 나타날 많은 변화에 주목해 보길 바란다.
최원석 프로젝트 렌트 대표
오프라인 마케팅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 대표.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동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했다. 졸업 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와 현대카드 디자인팀에서 일했다. 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라멘트앤코를 창업하고 카페뎀셀브즈, 모던눌랑을 비롯해 수많은 F&B 브랜드와 아프니벤큐, 레디큐 등의 제품을 컨설팅했다. 모두가 ‘오프라인의 위기’를 말하며 온라인으로 달려갈 때, D2C(Direct to Consumer) 커뮤니케이션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오프라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오프라인 마케팅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의 문을 열어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고, 팝업스토어의 특구가 된 성수동의 선도자로 활약했다. 300여 개의 팝업스토어를 기획, 운영하며 한국 최초로 RaaS(Retail as a Service) 기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삼성, 롯데 등 국내 기업 대상 브랜드 컨설팅과 공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콘텐츠 기반 공간 프로듀싱을 주제로 대중 강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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