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혜 트렌드 미디어 캐릿 에디터
올해 상반기,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콘텐츠를 뽑으라면 단연 ‘폭싹 속았수다’가 아닐까.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온라인에서는 한동안 ‘폭싹 속았수다’ 열풍이 불었다. 주목할 점은 화려한 액션신, 자극적인 설정 없이 그저 ‘가족애’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대중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런데 TV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SNS에서도 가족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주류 트렌드로 떠오르는 흐름이 발견되고 있다. 틱톡이 발표한 ‘What’s Next: Trend Report 2024’에서는 ‘가족 콘텐츠의 증가’가 차세대 트렌드로 꼽히기도 했다.

Z세대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육아 유튜브 채널 ‘태요미네’ (출처: 태요미네)
형제자매부터 장인·사위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족 콘텐츠
실제로 ‘리쥬라이크’, ‘해쭈’ 등 가족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자주 오르내릴 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가족 콘텐츠는 어린아이를 중심으로 한 ‘육아’ 콘텐츠가 대표적이었다. 반면 최근에는 ‘부부’, ‘조손’, ‘형제자매’부터 심지어는 ‘장인·사위’까지, 이전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 크리에이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붙임성 좋은 사위와 덤덤한 장인의 케미를 다룬 ‘주서방’, 네 자매의 일상을 그린 ‘네자매모먼트’ 등이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Z세대가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남의 가족’을 찾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사위와 장인의 케미를 다룬 인스타그램 채널 ‘주서방’ (출처: 주서방)
불안의 시대, ‘가족의 일상’이 힐링 서사로 통하다
최근 무해한 콘텐츠가 뜬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으로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의 콘텐츠가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Z세대 사이에서 ‘불안감’이 화두로 떠오르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경제 불황을 겪으며 만성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층이 크게 늘어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020의 불안 및 우울증 치료제 처방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 콘텐츠가 정서적 안정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힐링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다 함께 모인 가족들의 화목하고 정겨운 분위기, 복작복작 떠드는 대화 소리와 특별한 사건 없는 평범한 일상. Z세대는 이런 모습에서 정서의 허기를 채우고 이른바 ‘인류애’를 충전한다. 콘텐츠 속에서 가족이 다투고 화해하는 모습이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 역시 ‘가족애’가 담긴 서사로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가족 채널의 댓글 창에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가 다 행복해진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 경우가 많다.

부부가 일상을 소재로 나누는 소소한 대화에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더한, ‘인생 녹음 중’ (출처: 인생 녹음 중)
뿐만 아니라, 가족 간 일상 대화가 담긴 ‘오디오’까지 힐링 콘텐츠로 소비되는 추세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는 가족들이 실제 나누는 대화의 녹음본에 간단한 애니메이션이나 자막을 덧붙인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첫 영상 업로드 9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한 ‘인생 녹음 중’이다. 이외에도 ‘마공홈’, ‘K그래맨’ 같은 유사 채널이 늘고 있다. 구독자들이 이런 채널에서 시청자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애니메이션보다 이들 가족의 ‘자연스러운 대화 음성’이다. 화면 너머로 들리는 잔잔한 일상 대화를 들으며 단란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포근함을 느끼는 것이다.
‘남의 가족’ 콘텐츠가 대리 경험의 창구가 되다
현대 한국 사회의 가족 구조는 점차 달라지고 있다. 형제자매보다 외동이 흔해졌고, 3세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 형태는 보기 어려워졌다. 명절이면 온 친척이 모이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시간이 중시되며 가족 간의 물리적인 왕래도 줄어든 지 오래다. 반면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국내 전체 가구의 34.5%를 차지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족 콘텐츠는 나와 관련 없는 ‘다른 가족의 형태’를 간접 체험하는 하나의 창구로 기능한다. Z세대는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삶을 간접 체험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족의 관계 역시 그에 속한다. 자녀가 없는 Z세대는 부모로서의 시선과 고민을, 조부모와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한 이들은 그들의 애정을 화면 너머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Z세대는 이상적인 가족상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거나, 다른 가족의 형태를 간접 경험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다. 더 나아가 화면 속 가족의 모습에 몰입하며, 그 가족을 지지하는 랜선 이모·삼촌이 되기를 자처하기까지 한다.

네 자매가 함께하는 일상을 공개하는 인기 브이로그 채널 ‘네자매모먼트’ (출처: 네자매모먼트)
줄어든 가족 간 소통 역시 이러한 콘텐츠가 주목받는 배경 중 하나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가족에 대한 향수를 콘텐츠 속 시끌벅적한 모습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실제로 SNS에서는 한자리에 모인 3세대의 모습, 삼촌·조카, 매형·처남 등 평소 자주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등장하는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가족 콘텐츠는 Z세대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가족 콘텐츠, Z세대가 참여하는 하나의 놀이가 되다
주목할 점은, 가족 콘텐츠가 더 이상 소비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의 주요 시청자였던 Z세대가 이제는 제작자가 되어 가족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10~20대의 개인 일상 계정에서 업로드한 가족 관련 숏폼이 수십만, 많게는 천만 조회수를 넘기며 바이럴되는 사례가 잇따른다.
SNS에서는 가족 단위가 간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이나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손바닥 끈끈이 장난감’, ‘끈끈이 스파이더맨’처럼 단순한 장난감을 활용한 콘텐츠가 하나의 놀이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예컨대, 가족끼리 끈끈이 장난감으로 용돈 쟁탈전을 벌이는 게임은 유튜브에서 1,100만 조회수를 돌파했을 만큼 반응이 뜨겁다. 세대 차이를 유쾌하게 풀어낸 가족 콘텐츠도 눈에 띈다. Z세대는 자신에게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본 부모님의 반응을 담거나, 본가에서 부모님의 옷을 입어본 후기를 영상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끈끈이를 던져 돈에 붙여 가져가는 끈끈이 용돈 챌린지 (출처: 좌 민이하우스 / 우 강현이어라)
가족이라는 소재의 높은 접근성과, 촬영 과정 자체가 ‘우리 가족의 추억’을 남기는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Z세대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제 ‘가족’은 Z세대가 몰입해 시청하는 것을 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강력한 소재로 자리 잡았다. Z세대의 참여를 이끌고자 하는 브랜드라면, ‘가족’이라는 단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지혜 트렌드 미디어 캐릿 에디터
‘대학내일’ 소속 트렌드 미디어 ‘캐릿’에서 Z세대의 유행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포토프레스’, ‘셀프 분석 세대’ 등 트렌드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정의하는 일을 한다. 콘텐츠 제작 외에 강연, 방송 등 외부 활동을 통해 트렌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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