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뉴욕 록펠러 센터 근처의 오래된 완구점 ‘F.A.O 슈와츠(F.A.O Schwarz)’.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코너는 ‘젤리캣 다이너(Jellycat Diner)’이다. 다이너(Diner)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식당은 아니다. 와플, 햄버거, 핫도그 등 먹거리를 모티브로 한 젤리캣의 인형을 판매하는 코너로, 인형 구매를 마치 식당에서의 음식 주문인 것처럼 만들어 두었다.

두 달 전부터 가능한 사전 예약을 마친 고객은, 매장 입장 후 메뉴판과 계산대가 있는 주문 카운터로 향하면 된다. 인기 메뉴인 ‘어뮤저블 버거(Amuseables Burger)’를 선택하면 셰프 복장에 앞치마를 두른 점원이 햄버거 모양의 봉제 인형을 꺼내 ‘조리’를 시작한다. 노래를 부르고 인형을 프라이팬에 올려 굽는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면 마치 뮤지컬 같다. 실제로 불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쿡탑 모형의 붉어지는 전열선이나 지글지글 효과음은 요리 현장에 있는 듯한 실재감을 선사한다. 고객에게 조리 중이던 인형을 건네 ‘이븐’하게 익었는지를 확인시키는 연출도 있다. 마무리는 봉제 인형에 소금이나 후추를 뿌리는 척을 하고, 포장지로 감싼 후, 테이크아웃용 상자에 넣는 것이다. 기념 에나멜 핀, 스티커 시트와 함께 재사용 토트백에 담긴 ‘햄버거’를 건네받기까지 시간은 총 10분이 걸린다.

젤리캣 다이너는 매대에 늘어선 인형 중 하나를 골라 들고 계산하는 일반적 구매 프로세스와는 전혀 다르다. 갓 만들어진 ‘햄버거’를 사는 듯한 몰입감에, 고객들은 구매 과정에서부터 소비물에 대한 애정도가 상승할 수 있다.

2025년의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다양한 기대를 가진다.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가치를 제공받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 대 사람의 직접적 휴먼터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점포 방문 후 “여기에 와서 좋았다”는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 몰입형 경험, 개인화, 옴니채널 전략 등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리테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앞서 이야기한 젤리캣 다이너는 종업원과 고객 모두를 집중시키는 ‘놀이 체험’을 활용한 몰입형 경험의 전형적 사례이다. 다른 사례도 살펴보자.

도쿄 하라주쿠에는 ‘친구가 하는 카페(토모다치가야떼루 카페, 友達がやっているカフェ)’라는 독특한 이름의 가게가 있다. ‘친구가 알바하고 있는 카페에 놀러가기’라는 콘셉트로 운영되는 이곳은 점원이 친구로서 접객을 한다. 즉 반말로 말을 걸어온다. 손님이 들어왔을 때의 인사부터 친근함이 넘친다. “엄청 오랜만이야! 가게에서 먹을 거야? 테이크아웃?” 메뉴 이름도 친구끼리 격 없는 수다에서 나올법한 표현이다. “맨날 마시는 그거”는 친구, 즉 점원이 알아서 주는 자유 메뉴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꽤 간단해서 괜찮아”라는 메뉴는 ‘드립커피’를 뜻한다. “확실히 라떼 맛있었지?”를 주문하면 내 입맛에 꼭 맞는 듯한 ‘카페라떼’가 서빙 된다.

낮에는 커피숍으로 저녁때는 바(bar)로 운영되는 이곳은 친구네 가게에 들르는 분위기를 연출해 부담 없는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직원들을 배우나 모델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약하는 사람들로 채용하고 있어 콘셉트가 실감난다. 그럼에도 실제 친구가 하는 가게인 것은 아니니 많이 팔아줘야 하는 의무 따위는 없다. 유사 친구 체험으로 고객 만족을 극대화할 뿐이다. 커피를 마시는 특정한 상황처럼, 그저 필요한 때 구축될 수 있는 친구 관계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했다. 나만을 위한 맞춤형 추천과 혜택을 기대하는 요즘의 소비자들에게,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위한 기술적 개인화가 아닌 감성적 개인화로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화장품 전문점 올리브영의 명동타운점은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K뷰티를 즐길 수 있는 글로벌 체험 공간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K뷰티 트렌드를 큐레이션한 매대에서 다양한 제품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이곳에서는 흡사 전람회처럼 ‘스토어 도슨트 투어’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고객들에게 매장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할 목적이다. 매장의 각 섹션을 안내하며, 제품 추천과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다. 도슨트 투어의 끝은 서비스 라운지에서의 멤버십 가입과 환급 서비스 안내 및 웰컴 기프트 증정으로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내 돈을 쓰지 않고도 제품을 받게 되는데, 그 샘플을 들고 본제품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 매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 역시 하나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방문객을 고객으로 전환해주는 고객 경험을 설계한 결과이다.

올리브영은 단순 리테일이 아닌 ‘플랫폼’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테스트는 오프라인, 할인과 쿠폰을 더한 구매는 온라인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상품안내-주문-제품 수령-배송을 끊김 없이 연결한다. 즉 고객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방문을 할 유인을 가질 수 있다.

소비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비의 대상을 내 삶의 일부로서 흡수하는 과정에서, 직접 상품을 만져보고 사용해보며 품질을 확인하고 다양한 사용성을 경험해보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점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성을 다각도로 교감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리테일 공간 방문을 일종의 마이크로 여행으로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매장의 인테리어 분위기나 환대(hospitality) 등으로 소비자를 대접하거나, 제품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주체적 경험을 누리게 함으로써 자사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혜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랜드 코리아> 시리즈,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vol.2>의 공저자. 서울대 소비자학 학사·석사·박사로, 대한출판문화협회·다산북스·리더스북·카카오페이지 등에 재직한 바 있으며, 삼성·SK·LG 등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트렌드 연구를 수행해왔다. 고려대 공기업 고급정책과정에서 ‘소비사회와 트렌드’를 가르치며, 다양한 기업과 정부기관에서 트렌드 강의를 진행한다. 대구TBN ‘Trend A to Z’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이고, 최근에는 일본 소비트렌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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