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 라떼파파(Latte Papa) :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유모차를 미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 스웨덴에서 유래.

아빠들이 육아 아이템 시장의 주요 소비자로 부상했다. 이들은 기술이나 신제품에 대한 호기심을 육아와 가정생활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며, 실구매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말 신도시 대형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모차 미는 아빠’들이 사용 중인 그 유모차는 아빠가 직접 골랐을 확률이 높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남성들의 육아템 구매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CJ온스타일의 모바일 라이브커머스 ‘베이비 앤 키즈 페어’에서 3040 남성 구매 비중은 2년 전 7%에서 22%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이제 아빠들은 자신만의 기준과 취향으로 육아 아이템을 선택하며, 시장에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동차 및 레저 관련 제품으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 ‘툴레(Thule)’는 지난 2014년부터 메인 타깃인 남성들이 가진 니즈 중 가장 성장성이 높은 육아 장비 욕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Active with Kids’라는 슬로건 아래, 자전거 트레일러, 러닝 스트롤러 등 다목적 아동용 캐리어부터 유모차와 자전거용 아기 시트 라인까지 본격 확장을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루프박스, 스포츠백, 캠핑·아웃도어 용품들로 브랜드 충성도가 높던 남성 소비자들은, 육아 상품 역시 구매하며 이에 화답했다. 툴레의 제품들은 튼튼한 내구성과 세련된 디자인을 지닌 ‘아빠가 선택하는 유모차’로 자리를 잡았으며, ‘산에서 쓰는 유모차’까지 출시해 고객군을 흡족하게 했다.

아빠들이 육아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시장에는 이들의 실제 경험과 니즈에서 반영한 혁신적인 제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디백(Daddy Bag)’은 아빠의 육아 참여가 늘면서 등장한 아빠 전용 기저귀 가방 또는 아빠 친화형 육아 가방을 지칭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성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토트백이나 메신저백 같다. 블랙, 네이비, 그레이 등의 색상과 심플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러나 열어보면 아기 용품을 야무지게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일본 파파코소의 ‘파파백’은 대표의 육아 경험에 140명 부모의 의견을 더해 구현한 ‘이상적 대디백’이다. 특히 이 가방은 허리벨트와 어깨 끈을 이용해 임시 아기띠로도 활용이 가능하기에, 외부에서도 부담 없이 아이를 안아줄 수 있다. 하나의 장비로 용도의 확장이 가능해 남성들의 효율성 추구 니즈를 만족시킨다. 파파코소는 아빠 전용 앞치마도 개발했다. 결정적 독특함은 짧다는 것이다. 허리띠 정도의 길이로 윗도리나 조끼 느낌이라 평상복이나 재킷 위에도 잘 어울리고, 외출 시에도 어색하지 않아 앞치마를 두르고 바로 편의점이나 마트에 갈 수 있다. 역시 활용도를 높인 제품이다.

어깨에 걸치는 핸즈프리(Hands-free) 젖병 홀더 ‘The Beebo’는 엔지니어였던 마틴 힐(Martin Hill)이 직접 아기를 돌보며 느꼈던 불편함에서 출발한 제품이다. 한 손에는 아기를 안고 안정적으로 수요를 하면서도 다른 한 손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따라서 한 손으로 휴대폰을 보거나, 형제자매를 돌보며 책을 읽어주거나 간단한 집안일을 할 수 있다. 2015년 미국 TV 프로그램 ‘샤크탱크(Shark Tank)’에 출연해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시장에 등장한 이래 월마트나 아마존 등 유통망에서 꾸준히 판매되며 성과를 거두어 왔으며, 얼마 전에는 Better Family Inc.의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편입되었다.

오늘날 육아용품 시장의 메인 타깃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엄마’가 주요 소비자로 간주되어, ‘엄마 전용’, ‘맘스 초이스’와 같은 문구가 당연했다. 반면 최근에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구매와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다층적 소비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모 모두를 위한’, ‘패밀리 초이스’ 등 포괄적이고 성평등한 메시지가 눈에 띈다. 실제 2023년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83%가 광고가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동등하게 어필해야 한다고 답했고, 특히 밀레니엄 세대 아빠의 86%는 유튜브에서 육아 정보와 제품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등, 아빠 역시 주요 소비자이자 정보 탐색자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소비자들이 더 이상 연령, 성별, 지역 등 ‘데모그래픽 세그먼트(demographic segment)’에만 따라 움직이지 않고, ‘나’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구체적인 취향에 따라 제품을 선택한다는 변화가 있다. 최근 소비자들은 집단의 전형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니즈에 따라 자유롭게 소비한다.

따라서 브랜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제품의 가치를 가장 잘 알아보고 열광할 수 있는 핵심 고객군을 좁혀 공략하는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 전략’이 필수적이다. 무작정 시장을 넓히기보다는, 유효 시장의 무게중심을 찾아야 하며,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개별 니즈를 기준으로 소비자를 세분화해 접근해야 한다. 이제 전통적 데모그래픽 구분만으로는 소비자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육아용품 등 특정 카테고리의 구매 결정자를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는 각자 고유한 준거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소비 여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혜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랜드 코리아> 시리즈,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vol.2>의 공저자. 서울대 소비자학 학사·석사·박사로, 대한출판문화협회·다산북스·리더스북·카카오페이지 등에 재직한 바 있으며, 삼성·SK·LG 등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트렌드 연구를 수행해 왔다. 고려대 공기업 고급정책과정에서 ‘소비사회와 트렌드’를 가르치며, 다양한 기업과 정부기관에서 트렌드 강의를 진행한다. 대구TBN ‘Trend A to Z’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이고, 최근에는 일본 소비트렌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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