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장선경 프로 (장선경 CD팀)

없던 명절증후군이 생겼다. 카피라이터로, CD로, 벌써 10년이 넘게 정관장 명절 광고를 담당하면서.

정관장 명절 광고의 주된 소재는 “가족”이다. 10여 년째 우리 가족, 남의 가족 할 것 없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보통 명절 4개월 전부터, 나는 그렇게 가족 생각을 한다. 명절이 일 년에 두 번이니 망정이지

세 번이면 열두 달 내내 가족 생각만 할 뻔했다. 다행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오랫동안 가족 생각하는 CD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전 세계를 통틀어서 말이다. 

십여 년 전 처음, 정관장 명절 광고를 맡았을 때만 해도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건 당연했다. 사회적으로나, 광고적으로나.

가족이 안 모이면 명절 분위기가 안 났다. 어딘가 쓸쓸한 명절처럼 보였고,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명절”의 표상이 외가의 명절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늘 시끌벅적했고, 잔잔한 농담과 끊임없는 먹방이 이어졌다. 지금은 그렇게 많은 일가친척이 모일 일이 결혼식과 장례식장 밖에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가 회사를 다닐 때까지, 아니 정확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런 명절을 보냈다.

다른 팀원들과 명절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모든 집이 그렇게 소란한 행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에.

아무튼 정관장 명절 광고가 딱 외가의 명절 같았다. 명절이면 긴 테이블에 앉아 함께 밥을 먹었고,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모두가 분주했다. 

그러다 그 시끌벅적한 가운데서 위트 있게 살며시, 가족에게 숨겨뒀던 마음을 꺼냈다. 정관장 쇼핑백을 건네면서. 

그런데 그런 가족이 변했다. 

내가 그렇게 애정을 갖고 살펴봤는데 말이다. 

가족이 모이는 게 불편해졌다. 그러니 광고도 응당 변해야지 별 수 있나. 

명절이 힘들고 괴로워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졌다니, 우리의 최소단위 사회 ‘가족’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명절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내 억장도 무너지고. 

하지만 세상 어떤 일도 나쁜 일만 있지는 않다고, 그로 인해 반드시 좋은 일도 생긴다고 누가 그랬던가.

가족이 왁자지껄하게 모이는 명절 풍경 대신 가족 사이의 마음에 집중하게 됐다. 그 마음을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전했다.

슛이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생각한 카피가 뭉클한 마음이 되어 담겼다. 누군가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가족의 변화란 나쁜 게 아니었다. 그 해 정관장 광고가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그러고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며 가족의 형태, 명절의 모습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정관장의 명절 광고도 형식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나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하나에 안착하지 않았으니 계속 시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재작년엔 명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2초 정도를 할애했다. 대신 부모와 자식 간의 공감을 끌어내는데 나머지 시간을 투자했다.  

2030들이 본인의 현재 모습과 자기 나이대의 부모 모습을 비교하고, 원조 갓생러인 엄마 아빠를 추앙한다는 글을 봤다. 부모를 위대하게까지 본다니, 이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 인사이트를 갖고, ‘엄빠(엄마아빠)의 갓생’이라는 캠페인을 했다.

거의 처음으로 2030 자식 세대와 5060 부모 세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들었다. 촬영 전까지 ‘명절의 모습이 이렇게 안 나와도 되나’ 

광고주분들의 우려가 컸지만, 반응이 좋았다. 아직까지 왕왕 그 광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광고제에서 처음으로 대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큰 상을 여러 개 거머쥐게 되었다. 시대의 변화도 나쁜 게 아니었다.

이쯤 되니 가족도, 우리 광고도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이제 슬슬 가족 생각을 다시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제일기획 장선경 프로 (장선경 CD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