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윤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멘탈 웰니스(Mental Wellness) 트렌드가 일상화되고 있다. 감정 일기 앱, 명상 콘텐츠, 온라인 상담, 심리 커뮤니티까지 스스로 감정을 다듬고 관리하는 마인드풀니스는 이제 특별한 활동이 아니다. 병원 대신 앱을 켜고, 편한 옷차림과 무자극 콘텐츠 속에서 ‘정서적 균형’을 지키는 MZ세대만 봐도 그렇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중요해진 공간이 있다. 바로 ‘욕실’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Everything Shower’ 콘텐츠. 길게는 3~4시간을 할애하여 샤워하는 과정이 나온다. 여기서 샤워는 단순히 씻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리추얼(ritual; 의식)’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대중목욕탕을 찾는 청년층이 늘었다고 한다. 대중목욕탕에서 사우나와 냉탕을 몇 번 오가다 보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정신을 ‘리셋’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 욕실을 찾는다.

욕실은 도피처로 활용되기도 한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심할 때 잠시 화장실을 찾아가 ‘화캉스(화장실+바캉스)’를 보내며 리프레시한다. 미국 Z세대의 소셜 미디어에는 욕실로 캠핑을 떠난다는 의미에서 ‘욕실 캠핑(bathroom camping)’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욕실에 담요를 깔고 앉아 영상을 보거나 ‘멍때리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욕실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인 만큼 마음이 안전해지는 듯한 효과를 얻는다. 결국, 욕실이 중요한 공간으로 떠오른 데는 멘탈 웰니스라는 키워드가 중심에 자리한다.

마음이 위험한 시대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조사에서 전국 만 15~69세 응답자의 73.6%가 심각한 스트레스나 지속적인 우울감 등 정신 건강 문제를 한 가지 이상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 등 마음이 위험해진 이유는 수도 없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대에서 40대 여성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건강한 삶을 위해 중요한 것’ 1순위로 ‘스트레스 관리’(응답자의 60%)를 꼽았다. ‘건강’하면 떠오르는 ‘신체운동’(22.6%)이나 ‘식단 관리’(12.8%)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이다. 이제 멘탈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일상에서 어떻게 멘탈 웰니스를 지켜내고 있을까?

첫 단계는 내 마음의 상태가 괜찮은지 세심하게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감정 기록 앱 ‘무디’에서는 귀여운 캐릭터가 조심스럽게 오늘의 감정을 묻는다. 특히.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 등 단순한 표현 대신, ‘부정’의 감정 안에도 ‘답답한’, ‘고민되는’, ‘공허한’ 등 수십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여 마음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도록 돕는다. 감정을 고르고 나면 감정 관리에 도움이 되는 퀘스트도 추천해 주다 보니 가벼운 게임처럼 어렵지 않게 매일 마음을 관리할 수 있어 1030 세대에게 인기가 많다.

생성형 AI를 통해 마음을 돌보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오늘 뭐 먹을까’하는 사소한 고민부터 직장 스트레스, 연애 고민은 물론, 사주풀이에 타로점까지 무엇이든 챗GPT에 상담을 청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싫은 기색 하나 없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개인들의 AI 활용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전에 비해 기술적인 영역보다 정서적인 활용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전문적인 심리치료 기법을 기반으로 설계한 AI 챗봇을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로 주목하며 해당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예견한다.

직접적으로 마음을 케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이 멘탈 관리로 이어진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음료 소비도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가 ‘웰니스’를 생활의 1순위로 꼽다 보니 알코올이나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 소비는 줄어들고 있다. 대신, 숙면에 도움이 되는 타트체리, 감태 등 성분이 함유된 일명 ‘수면 음료’가 인기를 끈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항스트레스성 자연 물질을 일컫는 ‘어댑토젠’을 함유한 음료가 무알코올 음료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여가생활도 멘탈 관리에 큰 역할을 한다. 2030 여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인터뷰 참여자가 러닝‧요가‧수영 등 각자만의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운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입을 모아 ‘멘탈 관리에 좋기 때문’이라 말했다. 최근 뜨개질이나 필사 등 손을 사용하는 취미가 인기를 끈 이유에서도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공통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열 명 중 세 명(31%)은 ‘손 글씨를 쓰게 된 이유’로 ‘마음의 안정을 주는 취미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이 ‘멘탈 웰니스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생각을 전환할 때다. 정신 건강이 곧 삶의 질이 된 시대, 전자제품‧패션‧여행‧보험 등 산업을 가리지 않고 멘탈 웰니스를 내세운다. 가령 한화손해보험은 업계 최초로 정신건강 관련 특약을 신설하고 홍보를 위해 명상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이제 생각의 방향은 ‘어떻게 우리가 하는 일과 멘탈 웰니스를 관련지을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권정윤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학·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9>, <트렌드 코리아 2020>, <트렌드 코리아 2021>, <트렌드 코리아 2022>, <트렌드 코리아 2023>, <트렌드 코리아 2024>, <트렌드 코리아 2025>,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2>, <스물하나, 서른아홉> 집필에 참여했다. 전자·식품·뷰티·통신·유통·여가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과 소비트렌드 도출 작업을 함께 해왔으며 이외에도 강의, 방송, 기고,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비자와 시장을 탐구하고 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Cheil Magazine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