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_과학 전문 저술가

친한 동생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가게 됐다. 그 집 아들은 돌이 지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단계였는데, 거실 TV의 화면이 바뀌면서 커다란 소리를 내자 그쪽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화면 한 귀퉁이를 터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TV 화면도 ‘유튜브’와 같은 스마트폰 화면과 마찬가지로, 손끝으로 터치만 하면 지금의 보기 싫은 장면이 빠르게 지나가리라 생각한 듯했다. ‘TV란 그저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세대와는 영상물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세대로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만들 세상은 우리가 겪어 왔던 그 세상과 근본부터 다를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알파세대 = AI 네이티브

요즘 태어난 아이들을 ‘알파세대(Generation Alpha)’라고 부른다고 한다. 호주 사회학자 마크 매크린들이 지금의 MZ세대 뒤의 새로운 세대를 지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Z를 이을 영문 알파벳이 없어 고대 그리스 알파벳 첫 글자인 ‘알파’를 붙여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기적으로는 2010년 이후 태어나 현재 13세 이하인 친구들을 뜻한다.

현재의 MZ 세대가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한 세대라면, 알파세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신문명,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감각 자체가 다른 세대로 정의된다. 그래서 알파세대를 ‘인공지능 원주민(AI Native)’이라고도 한단다. 이들 세계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는 그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장의 흐름은 곧 알파세대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의 특징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출처: 로블록스 공식 홈페이지)

그들이 만드는 미래를 보기 위해선 알파세대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알파세대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며, AI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2022년 12월, 인터넷 포털 업체 네이버(NHN)가 한 조사 결과가 참고할 만한데,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2800만 명의 엔터테인먼트 및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 설치 현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1970년대에 태어난 ‘X 세대’는 ‘밴드’를, 1980~2009년 출생한 ‘MZ 세대’는 ‘인스타그램’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2010년 이후 등장한 알파세대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건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였다.

둘째로 전반적인 소비성향이 과거와 비해 훨씬 더 디지털 중심적이다. MZ세대가 PC와 스마트폰의 경계선에 있었다면, 알파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기기를 접하고 AI를 친구처럼 여기며 자라고 있다. MZ세대만 해도 ‘굳이 낯간지럽게 AI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알파세대엔 이런 방식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디지털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가상공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창작하는 일에 열중하기도 한다. 짧은 콘텐츠를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즐기는 ‘단타’ 성향이 강하다. 대한민국 10대 사용자 표본조사 결과, 불과 몇십초 정도의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틱톡’의 총 사용 시간은 월 19.4억 시간으로 카카오톡(18.6억 시간), 네이버(11.4억 시간) 등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자도 모르는 영유아들이 남긴 댓글

알파세대 올인원 통신수단 ‘디스코드’

(출처: 구글 플레이스토어)

또 전화, 문자를 넘어 ‘카카오톡’ 정도를 겨우 사용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알파세대의 통신수단은 ‘디스코드’ 등 올인원 통신수단이 인기다. 문자 및 음성통화, 영상통화 등 뭐든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뽀로로 영상 등을 보면 가끔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댓글들이 잔뜩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글자는 아직 모르지만 ‘댓글’은 남겨두고 싶었던 영유아들이 댓글 창에 마구 찍어 둔 기호(?)들이 대부분이다. 즉 글을 배우기 전에 기호와 음성, 제스처 등으로 디지털 기기와 소통하는 것을 익혀온 세대다.

그러니 이들은 AI와 친밀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이었던가? 생후 18개월 된 아이가 입을 떼며 던진 첫마디가 엄마, 아빠가 아닌 ‘알렉사’였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례가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다. 그 아이에게 집안 모든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 ‘알렉사’는 엄마, 아빠보다 더 먼저 배울 필요가 있는 단어였던 셈이다.

현재의 알파세대에게 AI란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도우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이 성장해 사회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AI를 마치 수족처럼 부리며 다양한 일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알파세대에게 AI는 만능열쇠다. AI로 로봇을 통제하면 현실 세계를 자동화할 수 있고, 메타버스 세상에선 모든 주문을 척척 소화해주는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시장의 중심

지금까지 시장에선 ‘알파세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 구매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파세대를 중심으로 시장 상황도 변화하고 있다. 매년 주목할 흐름을 제시하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23년 10대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알파세대’를 꼽았을 정도이다. 사실 이미 알파세대는 시장의 숨은 주역이다. 부모와 조부모, 여기에 부모의 형제(이모·고모·삼촌 등)이 모두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알파세대는 전 세계에서 매주 250만 명이 태어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총 22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세대를 위한 당장 눈 앞에 펼쳐질 시장은 ‘교육’ 분야가 될 것이라는데 이견을 갖기 어렵다. 지금 학생인 세대,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세대를 위해 다양한 교육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다. 기초적인 AI 개념부터 시작해 컴퓨터 코딩, 로봇제어, 동영상 편집 등의 IT 관련 수업은 ‘그저 감각적으로’ AI를 활용하던 아이들의 경쟁력을 한층 높여 줄 수 있는 수단이다. 관련 수업 역시 시대 흐름을 타고 꾸준한 인기가 있다. 이 밖에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학문적 기본을 다져주는 고전적 교육 역시 꾸준히 시행할 필요가 있다.

알파세대를 잡기 위해서 굳이 최첨단 디지털 산업을 새로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비즈니스 운영자들은 빠르게 AI를 접목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어떤 사업 형태에서도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 의류 판매를 하는 사람이라면 AI를 적용한 스마트 판매 방식을, 요식업자라면 AI를 활용한 식당 운영 방식을 고민하는 식이다. 여력이 된다면 알파세대를 위한 놀이 공간을 만드는 일, 이른바 ‘AI를 활용한 플랫폼’ 시장 개발 집중할 필요도 있다.

알파세대는 디지털 매체와 모바일 문화의 영향 속에 성장해 사고방식과 소비 패턴이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다. 알파세대가 경험한 불과 십 수년간의 시간은, 기성세대의 몇십 년에 필적한다.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새로운 아이들을 우리가 ‘알파세대’라 부르는 건, 신인류의 시작임을 의미한다는 뜻도 담겨있다. 시대의 변화를 견인하는 세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보다 AI에 익숙한 세대, 이 아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모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미래 비즈니스의 성패가 걸려있다고 보아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전승민 과학 전문 저술가

‘현실 세계에 도움 되는 기술이 진짜 과학’이라는 모토로 18년 동안 다양한 과학기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전문 저술가. 과학기술 전문 미디어 기업 ‘동아사이언스’에서 11년간 일하며 월간 <과학동아> 기자, <동아일보> 과학팀장, <동아사이언스> 온라인뉴스 편집장 및 수석기자를 지냈다. 이후 세계적 과학기술 매체 <와이어드(Wired)>의 한국판(Korean Edition) 정보과학부장을 지냈다.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 및 과학저술가로 <국민일보>,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등 여러 매체에 고정 필진을 맡고 있다. ‘나는 AI와 일한다’ ‘소설로 알아보는 바이오 사이언스’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