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하_<팬시, 취향을 삽니다> 저자

불황에는 싼 제품만 잘 팔릴까? 오픈런을 부르는 프리미엄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비싸도 기능,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 측면에서 더 좋은 제품이 여전히 젊은 층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는 미코노미(Meconomy) 트렌드와 결합해 ‘프리미엄 미코노미’라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코노미는 한마디로 자기중심 소비다.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도 나에게 더 큰 가치를 주는 제품을 선택한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과시 목적으로 값비싼 물건을 사는 ‘플렉스(Flex)’ 소비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며 일상의 지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팬시(Fancy)’ 소비로 성숙해가고 있다. MZ세대들은 왜, 어떠한 곳에 지갑을 열고 있을까?

소비의 고급화, 명품이 다일까?

우리나라의 럭셔리 브랜드 사랑은 유별나다. 모건 스탠리의 명품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인의 명품 구입액은 전년보다 24% 증가해 168억 달러(약 20조 9,000억 원)이며, 인당 환산 금액은 325달러(약 40만 원)로 전 세계 1등이다. 럭셔리 굿즈 외에도 프리미엄 비즈니스가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이를 견인하는 것은 MZ세대의 프리미엄 소비 경향이다.

MZ세대는 과시적 소비를 즐기며, 소위 ‘플렉스 해버린다’고들 말한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이들이 명품이나 사치품을 사기 위해 과분한 소비를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MZ세대의 프리미엄 소비가 단순히 고가의 명품 구매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프리미엄 소비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하는 품목도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취향에 따라 다르다.

다양해지는 프리미엄 소비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오쏘몰 이뮨’ (출처: 디몰)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프리미엄 제품에 ‘OO계의 명품’이라는 별명을 붙이곤 한다. 그만큼 작은 물건 하나에도 자신의 가치와 취향을 드러내며 행복을 느낀다. ‘비타민계의 에르메스’, ‘치약계의 샤넬’ 등 기존에는 사치재로 볼 수 없었던 일상품이나 ‘경험’을 사치재처럼 소비한다. 단순히 고가의 제품을 ‘지름’으로써 잠깐의 만족을 얻으려는 욕구 이상으로,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심리가 있다. 일상생활을 더 잘 누리는 것에 프리미엄의 가치를 두는 ‘누리미엄’을 추구하는 것이다.

명품부터 위스키까지 아침부터 줄 서게 하는 ‘오픈런’, 일반 제품보다 비싸지만 MZ를 사로잡은 ‘니치 향수’와 ‘프리미엄 가전’ 등 여러 산업으로 퍼지고 있는 프리미엄 소비의 다양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불황에도 프리미엄 소비 트렌드는 꺼지지 않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마케팅 솔루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MZ세대의 호응을 얻는 삼성전자의 빔프로젝터 ‘The Freestyle’ (출처: 삼성닷컴)

비싸도 찾는다, 내 취향을 위해서라면

엔데믹 이후 하늘길이 열리고 여행사들이 프리미엄 여행 상품을 내놓자 순식간에 매진된다. 호텔뿐 아니라, 프라이빗한 숙박 경험을 할 수 있는 ‘고급 스테이’의 예약 경쟁도 치열하다. 코로나 기간 홈술 문화가 퍼지면서 와인의 대중화를 이끈 MZ세대들은 이제 원소주와 같은 프리미엄 소주, 위스키 등 고급 주류 시장의 큰손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위스키 공병을 중고 거래할 정도로 취향을 위한 수집가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프리미엄 치약 ‘마비스’ (출처: 마비스 코리아 홈페이지)

일반 치약보다 20배 정도 비싼 이탈리아 프리미엄 치약 ‘마비스’는 2019년 한국 시장에 런칭한 후 연평균 20%의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딥티크, 바이레도 등 니치 향수를 판매하는 신세계 인터내셔날의 향수 매출(2월 1일~13일)은 전년 동기 대비 43% 늘었고 매출의 80%가 MZ세대 소비자이다. 핸드워시 하나에 3~4만 원 정도 하는 논픽션, 이솝은 브랜드를 통해 일상의 품격을 높여주기 때문에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 부러워야 이기는 것

팬시(Fancy)는 ‘멋지고 고급스러우면서 질 높은’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힙하고 가치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요즘 소비 트렌드를 말한다. 이러한 팬시 소비를 하게 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나만을 위한 최상의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선망’의 요소를 활용해야 한다. 선망은 나에게는 없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특질이나 업적, 재산 등을 부러워하고 바라는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는 말이 있지만 고급화를 지향하는 브랜드 세계에서는 ‘부러우면 이기는 것’이 정답이다.

‘알파세대’가 만들어갈 또 다른 프리미엄 세상

MZ세대가 주도한 프리미엄 소비의 다양화와 대중화 현상이 다음 세대인 알파세대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알파세대는 2010년과 2024년 사이에 태어난 0세부터 14세까지를 말한다. 알파세대가 소비를 시작하는 나이가 이전 세대보다 앞당겨지고,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현상이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프리미엄소비를 경험하며 ‘골드키즈’로 자라고 있다. 호캉스를 익숙하게 다니는 MZ세대, 이제 30~40대가 된 일부 MZ세대는 부모가 됐다. 초저출산 시대, 아이 1명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MZ세대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핸드폰을 썼다면, 알파세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가 사준다. 핸드폰 케이스는 케이스티파이와 같은 프리미엄 제품을 사달라고 조르고,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인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를 통해 부모에게 게임 아이템 ‘현질’을 부탁하기도 한다. 유튜브, 틱톡과 같은 SNS 채널을 일찍부터 접해 거기에 따라붙는 광고에도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알파세대는 이미 달라진 소비관을 가진 MZ세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며,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와 교류하고, ‘챗 GPT’와 같은 AI, 메타버스 환경에서 자라날 것이기에 앞으로 이들이 이끌 소비 트렌드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최수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신한카드에서 18년째 근무하고 있다. LG카드 홍보팀, 신한카드 브랜드전략팀과 글로벌사업팀, 신한지주 전략기획팀 등을 거치며 브랜드 마케팅과 기획 분야의 전문성을 쌓았다. 트렌드에 민감한 카드 회사에 근무하며 수많은 데이터를 접하지만, 데이터에 매몰되지 않고 소비자의 숨겨진 욕망과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2022년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소비 트렌드를 파헤친 <팬시, 취향을 삽니다>(부제: MZ세대 프리미엄 소비 인사이트) 책을 출간하며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