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현_아톰릭스랩 대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NFT는 다양한 디지털 산업과 문화 영역에서 복제 불가능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기술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했다.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사용자 간 디지털 자산의 거래가 가능하게 함으로써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걸맞은 혁신적 변화의 바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디지털 서비스와 자산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크립토 시장도 확대되며 NFT 열풍이 가속화됐다.
하지만 NFT 시장은 실제적인 활용 규모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며 과열되기도 했다. 주로 단기 투자 수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트레이딩에 기반했던 NFT 시장의 열풍은 2022년 크립토 시장의 급격한 하락 국면에서 시장의 안정성에 불신을 일으킬만한 연이은 대형 사건으로 급격히 식어가는 양상이다. 이 후퇴는 NFT 거래량과 주요 프로젝트 NFT의 거래 가격 하락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단기적 시장 변화만 보면 NFT의 미래를 선뜻 긍정적으로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 더 중장기적 흐름에서 보면, 과열된 초기 NFT 시장이 진정되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활용을 위해 생태계 구축 과정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NFT가 제시한 복제 불가능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탈중앙화된 거래 시장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인 혁신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 활용 가능성은 넓어지고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23년 NFT 시장 생태계의 방향을 가늠하게 할 주요 트렌드를 살펴보자.
생활 전반에 다양하게 스며들 NFT
2022년 NFT 거래 규모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NFT를 적용하기 위한 실험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로 PFP 컬렉션, 블록체인 기반 게임, 디지털 아트, 대형 브랜드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외에 음악, 영화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패션, 부동산, 소셜 네트워크 등의 영역에서 NFT를 활용한 다양한 모델과 서비스가 소개되고 있다.
● 음악 NFT
지금까지 NFT 대부분이 이미지와 동영상을 매체로 이용한 것에 반해, 이제는 음원과 앨범이 NFT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오디오 NFT라는 더 광범위한 개념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음악 NFT로 좁혀 보자. 음악 NFT는 음악 산업 생태계를 혁신하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음악이 대형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면서, 소규모 팬을 가진 인디 음악가는 음악 활동만으로는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San Sound, Kingship 같은 음악 NFT 프로젝트는 팬들이 가수를 지원하는 수단이자 소통 창구가 되며, 더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음악 NFT 플랫폼 San Sound (출처: San Sound 웹사이트)
● 패션 NFT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NFT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으며, 패션 자체에 초점을 맞춘 NFT도 여러 형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메타버스 세계 속의 캐릭터가 가상 아이템을 입는 것이다. 나이키, 반스 등 이미 많은 브랜드가 제페토, 로블록스 등에서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증강현실(AR)을 통해 현실의 ‘나’가 가상 의상을 입는 것도 가능하다. 디지털 트윈 개념을 바탕으로 현실 세계의 상품과 가상 세계의 NFT를 연결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Louis Vuitton, Burberry, Balmain 등 이러한 실험에 동참하고 있는 브랜드가 많다.
단 한 벌 제작해 판매된 디지털 패션 브랜드 더 패브리컨트의 NFT 드레스 (출처: The Fabricant 웹사이트)
● 부동산 NFT
블록체인은 초기부터 부동산 등기 서류 같은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데 효율적일 것으로 평가되었다. 부동산 NFT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소유권을 검증하고,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으로 최근 더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 상의 가상 부동산은 외부에 별도의 법적 안전장치를 둘 필요가 없으므로 샌드박스, 디센트랄랜드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쉽게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반면 현실 세계의 부동산 소유권을 NFT와 결합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에서 이를 매개할 수 있는 법적 주체와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규제 환경이 제대로 성숙하기까지는 대중적인 규모로 확대되기 어려우나,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NFT를 이용한 부동산 거래 서비스 Propy (출처: Propy 웹사이트)
● 금융 NFT
NFT가 자산적 가치를 획득하게 되며, 이를 담보로 스테이블 코인 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이 나오고 있다. 게임 NFT를 다수 보유한 투자자가 이를 블록체인 게이머에게 임대할 수 있는 모델도 등장했다. NFT의 가치를 이용한 금융 서비스 이외에도, 대형 금융기관은 전통적 자산의 디지털화 과정에 NF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영화 NFT
영화 제작을 위한 모금에 NFT를 활용할 수도 있고, 팬 관리와 마케팅을 위한 NFT 제작도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 작품을 기반으로 Web3 생태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는데, 워너 브라더스의 무비버스가 그런 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NFT로 출시한 워너브라더스의 무비버스 (출처: 무비버스 웹사이트)
● 의료 NFT
의료 정보는 인터넷 시대에도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규제 등을 이유로 데이터 공유를 위한 광범위한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개인의 의료 기록을 NFT로 캡슐화하고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영지식증명과 동형암호 등의 암호학적 기술을 결합해 안전하게 리서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장기기증 기록을 NFT로 관리하는 서비스 (출처: FRANCE ADOT NFT 웹사이트)
● 아이덴티티 NFT
개인의 신원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고 인증하려는 시도는 몇 년 전부터 DID라는 개념 아래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개인에게 영구적으로 바인딩 된 NFT 개념은 아이덴티티 관리영역에서 더 간결하며 직관적인 서비스에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SBT(소울바운드 토큰)는 이러한 개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
로그인 한 번에 NFT 구입까지
웹2 플랫폼들은 이미 다수의 유저와 산업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기에 NFT를 활용해 이런 플랫폼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고, 또 반대로 플랫폼을 활용해 NFT를 확장시킬 수도 있다.
웹2 플랫폼과의 융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소셜로그인 시스템과의 연동이다. 웹2 사용자들이 NFT를 구매하려면 꽤 귀찮은 과정을 거친다. 크립토 지갑을 별도로 설치하고, 필요한 토큰을 구매하기 위해 거래소 계좌를 오픈하는 등 실제로 사용하기까지 높은 진입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메이저 웹2 플랫폼들이 제공하는 소셜로그인 시스템으로 사용자를 인증하고, 이를 기반으로 NFT 거래를 할 수 있는 크립토 지갑까지 자동으로 생성해 연동시키는 인터그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다만 이 과정에서 탈중앙화라는 기본 방향성을 훼손시키지 않아야 하기에, 단순히 중앙화된 개인 키 관리 방식을 바로 도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SK텔레콤의 탑포트(TopPort) NFT 마켓플레이스는 웹2 기반의 패스 앱을 이용해 사용자가 별도의 지갑을 설치할 필요 없이 애플리케이션 내장형 지갑을 사용하게 한 좋은 사례다. 서비스 운영 주체가 사용자의 자산에 직접적인 통제권을 갖지 않는 비수탁형 지갑을 제공하면서도, 사용자 경험을 획기적으로 향상했다.
탑포트 NFT 마켓플레이스의 내장형 지갑 모델 (출처: 탑포트 웹사이트)
SNS용 프로파일에 NFT를 활용하는 PFP NFT는 NFT 시장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트위터는 가장 앞서서 이더리움 기반 NFT를 검증해 트위터 계정에 연동시켜주는 서비스를 해왔다. 트위터 계정에 보이는 프로파일 이미지의 NFT를 본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도 비슷한 방식의 프로파일용 NFT를 계정과 연동시킬 뿐 아니라, 민팅 서비스도 직접 제공하려고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NFT 연동 (출처: 메타 트위터)
멤버십 관리, 마일리지와 로열티 프로그램, 티켓팅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의 웹2 플랫폼이 NFT를 인테그레이션해 웹3 생태계와의 연결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미디어 플레이어로 인기를 누린 윈앰프는 최근 음악 NFT를 직접 지원하는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NFT와 웹2 플랫폼 또는 매체들과의 결합이 광범위해질수록 신규 사용자 진입이 원활해지고, 사용자 경험은 대폭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
뮤직 NFT를 지원하는 윈앰프 플레이어 (출처: 윈앰프 웹사이트)
다양한 취향을 가진 각자의 커뮤니티
기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대규모로 독점화된 서비스가 규모의 경제로 시장을 장악해 독점 이윤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트워크 비즈니스가 가진 네트워크 효과는 신규 진입자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 쉽다. NFT 기반의 생태계 역시 네트워크 효과가 큰 비즈니스 영역이므로, 오픈씨와 같은 대규모 마켓플레이스의 시장 점유율은 매우 높다. 하지만 개별 NFT 프로젝트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대규모 사용자 수를 확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컬렉션도 보유자 수는 1-2만 명의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컬렉션 안에 너무 많은 NFT를 담는 것은 희소성을 약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웹2의 비즈니스에 비하면 적은 수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수백만 번의 스트리밍으로도 웹2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존하는 아티스트가 음악 활동만으로 생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NFT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를 잘 운영한다면 수천, 심지어 수백 명의 열성적인 팬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팬들이 지불하는 NFT 구매 금액의 대부분이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기획사의 수익으로 들어가는 대신 아티스트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취향의 소규모 커뮤니티의 활발한 활동이 매우 중요한 산업적 기반이 될 수 있다. NFT 시장의 활성화가 반드시 소수의 NFT가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측정될 필요는 없다. 여러 영역에서 더 많은 NFT 프로젝트가 각자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NFT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정우현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 1세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 석사 출신으로, 이후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커뮤니케이션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아톰릭스랩 대표로 서울 이더리움 밋업 공동 운영자, 한국이더리움 사용자그룹 운영자를 역임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국내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서울 이더리움 밋업과 한국 이더리움 사용자 그룹을 중심으로 이더리움 커뮤니티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2018년 아톰릭스랩 설립 후 개인키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키관리 솔루션과 이에 기반한 Web3 지갑을 개발하고 있다. “마스터링 이더리움”, “비탈릭 부테린 – 지분증명” 등의 번역 감수를 했고, “블록체인 인 액션”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