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_(주)메타버스 제작사 대표

메타버스가 뜨거운 열기와 함께 빠른 속도로 영역을 확장해나는 요즘, 그 실체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많은 브랜드 담당자들 역시 메타버스란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터, 메타버스가 미래 비즈니스가 될지 판단하기 위해선 메타버스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관을 만들 때 우리가 해야 할 것들

메타버스를 제작할 때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유니버스. 그 유니버스 앞엔 사실 ‘대체’가 생략되어 있다. 대체 우주(Alternative Universe)란 말에는 우리 우주와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무엇’은 초능력일 수도 있고, 마법 혹은 거대 로봇 기술일 수도 있다. 현실과 다른 ‘무엇’에 바로 세계관이 필요하다. 이 세계관은 어떻게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 세계관 제작 교육에 확립된 체계는 없지만 메타버스 세계관을 기획해온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설정, 월드, 물리법칙, 월드뷰 정도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STEP 1. 설정

설정은 스토리를 쓰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정리한 단계를 말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일부를 발췌하고 짜 맞춰서 소설의 기반 설정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슈퍼맨이 뉴욕에 등장해서 어떤 건물을 부수려면 갖추어야 할 건물 내부의 설정이 이에 해당한다.

STEP 2. 월드

월드는 특정 공간과 그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 혹은 사람들을 말한다. 비밀 집단일 수도 있고 혹은 국가일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특정한 땅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을 ‘지정학(geopolitics)’이라고 한다. 이 산맥에는 드워프들이 살고 있고, 저 들판에는 요정들이 살며 서로 교류하고 갈등하는 식이다. 지정학적 사유는 캐릭터들이 활동하는 배경이 되어, 당장 스토리에 필수적인 부분뿐 아니라 향후 확장될 여지를 만든다는 면에서 더 중요하다.

STEP 2. 물리법칙

유니버스에선 현실과 다른 특별한 물리법칙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 유니버스에 몰입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그 경계를 납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남의 재벌 2세 젊은이가 가난한 집안의 연인과 몰래 데이트를 하다 불량배들을 만나자 두 눈에서 레이저를 쏴서 물리쳤다”면 느낌이 어떨까? 미리 설정을 알고 있어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깨는 느낌’이 들고 말 것이다. 마블 시리즈로 유명한 슈퍼히어로의 초능력은 그 세계의 다른 현실적 요소에 영향을 끼친다. 초능력자가 많이 있는 세계라면 이 특수 능력을 가진 자들이 군대에 동원되는지, 사회에서 어떤 신분 계급을 가지고 있는지 등이 궁금해질 수 있다. 많은 작품들이 초능력자가 사회적으로 우대받거나, 차별받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 몰입을 위해서는 그 경계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들은 유니버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스타트렉’의 리플리케이터라고 불리는 복제기는 극 중에서는 음식 만들(복제할) 때나 쓰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복제기야 말고 세계관을 뒤바꾼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금, 은, 보석 등 갖가지 귀한 물건 마음껏 복제하게 된 인류는 협소한 물질주의를 버렸고, 결국 인류에게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복제하지 못했던) 새로운 물건 또는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결과가 스타트렉의 우주 대탐험 시대로 나타났던 것이다.

STEP 4. 월드뷰

월드뷰는 세계를 해석하는 시각, 즉 새로운 유니버스에 메시지와 철학을 담는 단계다. 현실 세상에 기독교적 세계관, 이슬람 세계관 등이 있다면, 가상 세계에는 스타트렉 세계관이나 반지의 제왕 세계관이 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그 세계의 메시지를 추구하며 이에 맞는 마음가짐을 자연스럽게 따르거나, 적어도 자신이 그 세계관에 동의하며 그 메시지나 이미지를 표방한다고 믿는 상태가 된다.

꼭 세세하게 과정을 구분하지 않아도 브랜드, IP, 스토리, 제품은 이 단계들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 독자는 ‘충성 고객을 보유한 기업 브랜드’가 각 어느 단계에 속하는지 대입해 볼 수 있다. 코카콜라의 경쟁사들은 자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고객들에게 자사의 제품이 맛에서 더 높은 선택을 받았다고 강조했지만 이런 접근으로는 코카콜라를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코카콜라가 아니니까 그 정서를 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IP는 그 거래 대상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세계관’을 이해해야 그 세계관에 동의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된다.

메타버스를 ‘국가’라고 본다면? 메타버스 네 가지 요소

“메타버스는 일종의 국가다. 위에서 얼핏 보면 땅 위에 세워진 건물만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 경제가 보인다. 메타버스를 이루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핵심 요소인 ‘사람’ ‘영토’ ‘경제’ ‘문화’ 4가지를 구분해 보아야 메타버스와 IP의 관계가 보인다.”

첫 번째 요소. 사람 + 부캐

요즘 부캐란 말이 유행이다. 우리 평소 자아를 말하는 본 캐릭터와 달리 부캐는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지고 만든 자아를 말한다. 그런데 부캐는 사실 펭수나 유재석이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아이디로 일컬어지는 커뮤니티 초기 부캐들은 계정과 텍스트로 ‘디지털화’되었지만, 본캐인 자신과 연결된 모든 관계를 이 계정에 담았기 때문에 부캐는 본캐의 디지털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세대들은 취향에 따라 부캐들을 좀 더 자신과 분리하기   시작했다. 가령 아이돌 팬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한 계정은 오직 팬들을 친구로 삼는 식이다.

게임을 위해 게임 캐릭터를 만드는 것처럼, 메타버스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디지털화된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본캐를 온전히 대변하고 있지 않다면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친구들’일 것이다. 정확히 말해 요즘 말하는 인친(인터넷 친구)들로 이들은 공통의 취향으로 무리를 이루기에 이 존재만으로도 기업이 주목할 만한 대상이 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특정 아이돌을 좋아하는 부캐 집단, 아이를 키우는 이들의 부캐 집단, 이런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메타버스 시대의 미래 고객 집단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사람은 복합적이지만 캐릭터는 단면적이다. 특별한 하나의 목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지만 캐릭터는 특정 목적을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캐는 필요하면 본캐를 부른다. 그렇게 게임 캐릭터들이 실제 사람, 본캐를 소집하고 항의하고 시위트럭을 살 돈을 모아 실력행사에 나선다. 그리고 그들에겐 상징과 철학, 서로 동의한 철학과 설정, 컨셉이 필요하다. NFT 중 하나인 PFP(프로필 픽처)는 본래 그런 의미가 가치의 바탕에 있다.

두 번째 요소. 영토 + VR

부캐들의 소통이 게시판과 텍스트에 머무를 리 없다. 우리가 문자보다 대면을 선호하듯, 이제 부캐는 텍스트를 넘어선 시각적으로 서로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현실적이고 대용량의 바이트를 교환할 수 있는, 비주얼 그래픽과 VR이 필요하다. VR, MR, XR은 현실의 지리적 거리를 초월하는 기능으로 기대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존재적 초월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이기에 메타버스 시대에 더 실감 나는 시각적 통신매체로 기대받는 것이다.

세 번째 요소. 경제 + NFT, 코인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들은 때로 가상 공간 속 땅을 NFT로 판매하기도 한다. NFT 판매로 ‘가상의 돈’과 ‘가상의 사람’을 모은 사업자는 ‘가상의 영토’를 만들어 땅을 상징하는 NFT를 구매한 부캐들을 입주시킨다. 새로운 땅에 실체화된 부캐들은 자기 소유가 된 빈 부지에 건물을 지어야 하고 내 캐릭터에게 옷도 입혀야 한다. 가상의 옷과 가상의 건물을 만드는 직업이 생기고 이 창작물들은 NFT로서 거래된다. 이 거래를 위해 가상 자산, 즉 ‘코인’이 사용되고 이제서야 코인은 단순한 환금성 수집품에서 벗어나 실제 경제적 용도를 가지게 된다. 더 나아가 PFP NFT가 커뮤니티를 규정하게 된 것처럼 코인이 커뮤니티를 규정하게 된다.

네 번째 요소. 주권과 코인 이코노미

무형인 디지털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서류와 약관 동의가 필요하지만, 가상 자산과 NFT는 이를 한 번에 해결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디지털 영토와 코인으로 인해 새로운 유니버스는 마치 국가처럼 경제 설계를 요구받게 된다. RMT(real money trading)이라는 전문 단어가 있을 정도로, 리니지의 ‘아데나(리니지 속 재화)’처럼 예전에도 게임 내 재화가 거래되어 왔지만 메타버스 속 코인은 그런 수준을 넘어 코인 거래소를 통해 본캐의 국가 통화와 연결되며 ‘메타’성을 갖추고 더욱 구체화될 수 있다. 즉 가상과 현실의 공식적 접점이 생기면서 (가상의) 유니버스에서 메타버스가 되는 것이다. 이 코인이 재화성을 가지게 되면 인터넷을 따라 특정 유니버스의 경계를 넘어 재화가 이동할 수 있기에, 현실 세계의 국가가 각종 규제를 고민할 정도가 된다.

문화와 세계관, 그리고 IP

건물과 의상 같은 메타버스 속 창작물의 트렌드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나아가 메타버스 속 부캐들은 어떤 문화를 향유하게 될까?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작가의 설정 같은 것이 아닌 메타버스 구성원이 만들고 가치를 부여하고 메타버스의 문화가 된다. 이 단계에서 흔히 IP라 불리는 모든 요소들(글, 그림, 음악, 조형물, 건물 등)을 이끌어가는 표현 양식을 컬처라고 부를 수 있고, 이를 통칭해 세계관 또는 IP라고 부르게 된다.

가상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아

메타버스는 다양한 기술이 섞인 복합체이지만, 사실 이 구성요소들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 꼭 3D가 아니어도 되고, VR이 생각보다 훨씬 늦게 대중화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이나 아바타 아이덴티티 역시 일시적인 유행으로 드러나 버블이 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어도 하나 남는 것은 있으니 바로, 이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공유하는 ‘아트 컬렉터’, 즉 고객 집단이다.

전화 모뎀을 통한 데이터 통신이 시작된 이후 사람들이 가상 공간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들의 여러분이 제공하는 메타버스 속에 빠져들기를 원한다면, 모든 요소들을 전부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을 수 있는 IP가 필수적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필자의 이야기를 너무 나간 해석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해 가치를 창출해 온 여러분 독자들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인사이트와 결합해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김동은

현) 세계관 NFT 작가 ‘하얀용WhtDrgon.’  ‘NFT 현명한 투자자’ 저자
전) (주)하이브 세계관 라이브러리 파트장, <BTS WORLD> 총괄 제작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