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혜 연구위원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유뮤직 숍은 음악이 무대를 넘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에요” – 조르디 솔레(Jordi Solé), 유뮤직 호스피탈리티 & 라이프스타일 사장
2025년 12월, 세계 최대 음악 기업 유니버설뮤직그룹(UMG)이 뉴욕과 런던에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였다. 단순히 음반을 파는 매장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이곳은 올리비아 로드리고, 빌리 아일리시 등 글로벌 아티스트의 음반과 굿즈는 물론, 몰입형 설치미술과 라이브 공연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거점’에 가깝다. 스마트폰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유니버설뮤직은 왜 다시금 ‘물리적 공간’에 주목했을까?

아티스트의 음반과 굿즈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유뮤직 숍’ (출처: UMusic Shop 웹사이트)
디지털 콘텐츠 시대, ‘물성 있는 IP’가 뜬다
이 질문의 답은 ‘물성(Physicality)’에 있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비물질의 시대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만질 수 있는 현실의 감각을 갈망한다. 디지털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물리적 경험의 희소성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스트리밍으로만 소비되던 음악 IP를 ‘손에 잡히는 아카이브’로 재설계했다는 점이다. 유뮤직 숍(UMusic Shop)에서 팬들은 묵직한 바이닐(LP)의 무게감과 앨범 커버의 질감을 느끼며 디지털 음원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몰입을 경험한다. 즉, 스트리밍이 음악을 ‘청취’의 영역에 머물게 했다면, 오프라인은 음악을 보고, 만지고, 소유하는 ‘다감각적 경험’으로 확장시킨 셈이다.
화면을 찢고 나오다, #넷플릭스하우스
IP가 물성을 입는 추세는 음악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면을 찢고 나왔다”는 식의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 이는 콘텐츠가 스크린을 넘어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OTT 서비스 넷플릭스는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넷플릭스 하우스’라는 오프라인 체험 공간을 열었다. 단순 포토존이나 팝업스토어가 아닌, 영상 속 장면을 생생하게 실제 공간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IP기반의 몰입형 체험관이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직접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 미션을 수행하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음료를 맛보기도 하고, <기묘한 이야기> 속 폐허가 된 마을을 탐험한다. 수년간 모바일 OTT 서비스에 집중해온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IP를 활용해 만든 상시 오프라인 체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콘텐츠 속 장면을 현실로 구현한 ‘넷플릭스 하우스’의 체험 존 (출처: 넷플릭스 웹페이지)
캐릭터에도 숨결을, #꿈빛파티시엘, #듀가나디
최근에는 디지털 콘텐츠로 빠르게 소비되는 캐릭터 IP 역시 물성을 입으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2010년대 초 투니버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꿈빛 파티시엘’은 15년 만에 물성을 입고 팝업스토어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이 팝업은 어린 시절 해당 콘텐츠를 즐겼던 20대가 성인이 된 지금, ‘향수’라는 감정을 정교하게 자극하며 사전 예약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주목할 점은 굿즈 판매를 넘어, 만화 속에 등장하던 케이크와 음료를 실제로 맛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슈가슈가룬’ 팝업 오픈을 예고하며, 애니메이션 IP 물성화가 단발적인 유행이 아님을 보여준다.

디지털 밈에서 출발해 굿즈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된 캐릭터 ‘듀 가나디’ (출처: 라인프렌즈스퀘어 숍)
이모티콘이나 밈에서 출발한 캐릭터 IP 역시 활발하게 물성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듀 가나디’ 캐릭터다. 강아지를 귀엽게 부르는 발음에서 알 수 있듯, 무심한 표정과 삐뚤삐뚤한 선이 특징인 이 캐릭터는 이모티콘과 밈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 팬층을 형성했다. 이후 오프라인 굿즈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F&B 업계의 가나디 케이크 협업, 뷰티 브랜드 토리든의 한정판 패키지, 패션 브랜드 스파오와의 협업 티셔츠까지 이어지며 캐릭터 IP가 무궁무진하게 확장됐다. 디지털 캐릭터가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재탄생한 것이다.
물성이 대세가 된 이유
그렇다면,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세상을 호령하는 지금, 물성이 중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소비자들의 아날로그 경험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오늘날 소비자의 물성을 향한 목마름은 곳곳에서 관찰된다. 버튼 하나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 LP가 다시 주목받고,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에 필사가 유행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것을 디지털로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역설적으로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하고자 한다.
둘째, IP 전략이 산업 간 경계를 넘어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IP는 더 이상 특정 콘텐츠나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의 IP는 음악에서 패션으로, 영상에서 공간으로, F&B‧뷰티‧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물성을 입고 디지털 콘텐츠의 가치를 N차로 확대해 나간다. 브랜드와 콘텐츠 기업으로서는 IP를 물성화함으로써 짧은 소비를 반복하는 콘텐츠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침투하여 IP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스크린 속 게임 경험을 압도적 규모의 실물로 구현한 ‘닌텐도 뮤지엄’ (출처: 닌텐도 뮤지엄 웹사이트)
놀이동산이나 박물관에 다녀올 때, 사람들은 작더라도 기념품 하나쯤은 사 오고 싶어 한다. 추억을 물성으로 간직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일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IP가 결국 물성을 입으려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IP는 화면 속에서 소비될 때보다 손에 쥐고 경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에 IP의 물성화는 디지털 콘텐츠의 가치를 확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다혜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삼성·SK·LG 등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트렌드 기반 미래전략 연구를 수행하며,『K뷰티 트렌드』, 『스물하나, 서른아홉』,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시리즈를 공저했다. 현재 서울대 학부 및 대학원에서 소비자행태론 과목을 강의하고, KBS1 라디오 성공예감 트렌드 팔로우 코너에 고정 출연하며 다양한 기업에서 트렌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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