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섭 IT 칼럼니스트
스마트폰과 함께 대중화된 터치스크린은 세상의 모든 입력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화면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만진다’는 방식은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였다. 디스플레이는 버튼이 되었고, 키보드가 되었으며, 스위치가 되었다. 하나의 화면 위에서 거의 모든 조작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차량용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모든 제어 버튼이 터치 스크린으로 통합되고 있다
이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자동차의 센터 디스플레이다. 전통적으로 차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버튼들은 사라졌고, 공조장치부터 오디오, 내비게이션, 변속기까지 하나의 터치스크린 안으로 통합됐다. 이제 대부분의 차량들은 디스플레이 하나에 모든 기능을 밀어 넣는 구조를 ‘표준’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효율의 끝에서 발견한 ‘조작감의 위기’
스마트폰 역시 같은 방향에 서 있었다. 초창기 스마트폰 앱의 디자인을 돌아보면 메모는 메모지처럼, 버튼은 밀고 넘기는 동작처럼 설계됐다. 현실의 형태와 질감을 빌려 디지털 UI의 직관성을 높이려는 접근, 이른바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면서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점차 이 흔적들을 걷어냈다. 장식은 사라지고 구조만 남았다. 인터페이스는 더 얇고 단순해졌고, 기능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겨졌다. ‘플랫 디자인’의 시대다.
효율은 극대화되었지만, 이 구조는 사용 경험의 다른 한쪽을 놓치기 시작했다. 바로 조작감의 위기다. 자동차에서 음량을 조절하거나 공조기를 켜고 끄는 일은 가장 빈번한 조작 중 하나다. 과거에는 손끝으로 버튼이나 다이얼을 더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시선을 도로에서 떼지 않아도 조작이 가능했다. 이제는 다르다. 화면을 확인하고, 메뉴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촉각으로 해결되던 행위들이 시각 중심의 조작으로 바뀌면서, 조작은 느려지고 주의는 분산됐다. 피로도와 안전 부담도 함께 커졌다.
다시 손으로 돌아오다, ‘손맛’의 재등장
이 지점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손끝의 감각, 이른바 ‘손맛’이다. 손맛은 조작을 더 쉽게 만들고, 동시에 더 즐겁게 만든다. 화면을 확인하지 않아도 손끝의 반응만으로 조작이 끝났다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다시 딸깍거리는 버튼과 분명한 물리적 반응을 주는 입력 장치들이 돌아오고 있다.

기분 좋은 터치감과 경쾌한 사운드의 기계식 키보드 (출처: 키크론 웹사이트)
이를 가장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기계식 키보드다. 기계식 키보드는 한때 소음과 가격, 과하다고 여겨진 구조 때문에 대중 시장에서 밀려났다. 더 얇고 조용한 키보드가 충분히 편리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기계식 키보드는 다시 돌아왔다. 타이핑의 감각과 리듬이 다시 가치로 평가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딸깍거리는 소리와 키가 눌리는 깊이, 손끝으로 전달되는 확실한 피드백. 사용자들은 타이핑 경험 자체가 즐겁다고 말한다. 이 촉각과 청각의 피드백은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고 작업의 리듬을 만든다. 몇 개의 키 스위치를 열쇠고리로 만들어 판매하는 시장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손끝에 와 닿는 감각이 가치를 만드는 현상을 ‘물성매력’이라 부른다. 재질의 촉감, 무게감, 저항을 이겨내는 기계적 구조 자체가 디자인이자 인터페이스가 되는 순간이다.
불편함이 경험이 될 때
라이카 M 시리즈 카메라는 이 물성매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고의 기술을 담고 있으면서도 촬영 방식은 철저히 ‘클래식’을 고집한다. 수동 초점, 레버 조작, 디스플레이 없는 구조. 디지털카메라이지만 즉각적인 결과 확인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한 컷을 찍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이 촬영 경험의 일부가 된다.

수동 필름 카메라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 찍는 ‘맛’을 강조한 라이카 (출처: 라이카 웹사이트)
이 물성은 과거로의 회귀에 머물지 않는다.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의 제품들은 디지털 기술 위에 아날로그적 조작 감각을 얹는다. ‘TP-7’는 디지털 음성 녹음기지만, 테이프 레코더처럼 감고 되돌리는 물리적 조작을 중심에 둔다.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소리를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디지털 기술에 테이프 레코더의 물리적 회전 원리를 얹은 녹음기 ‘TP-7’(좌), 손으로 조작하는 감각에 집중한 신디사이저 ‘OP-1 Field’(우)
(출처: 틴에이저 엔지니어링 웹사이트)
휴대용 신디사이저 ‘OP-1 Field’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한 메뉴 대신 물리 버튼과 노브로 음악을 만든다. 설정을 조정하는 대신, 손으로 만지고 돌리며 흐름을 이어간다. 디지털 기기이지만, 경험의 중심은 철저히 물리적이다.
테크 기기에서의 물성매력은 언뜻 불편처럼 보인다. 때로는 사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버튼 하나, 노브 하나는 인간의 즉답성을 자극한다. 감각적 확신을 만들고, 같은 일을 해도 전혀 다른 ‘맛’을 만든다. 결국 기술의 진화는 더 빠른 입력이 아니라 더 깊은 경험을 향하고 있다. 손이 닿는 경험은, 결국 손이 선택한다는 것. 디지털이 완성될수록, 우리는 다시 촉각을 찾고 있다.
최호섭은 IT칼럼니스트
<PC사랑>과 <블로터> 등 테크 전문 미디어에서 일했고, 현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프리랜서 컬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화웨이>, <샤오미>, <손에 잡히는 4차 산업혁명>의 저자이며, EBS <비즈니스 리뷰>, KBS <차정인의 T타임>. 한경TV <앱으로 여는 세상> 등 방송 활동과 다수의 기업, 공공기관에서 강의와 기술 자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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