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와 수학자 등 많은 학자들이 게임의 속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해 보려고 했답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와중에 한 가지 점에선 확실히 입을 모았는데, 바로 ‘게임에는 반드시 규칙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규칙이 없다면 게임이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죠.
하긴 그렇습니다. 오징어 놀이를 할 때 금을 밟으면 죽고, 사방치기에선 돌멩이가 다른 칸에 떨어지거나 금에 닿으면 실격이죠. 고무줄 놀이는 고무줄 높이를 발목 근처에서 무릎, 허리, 어깨로 점점 높이는 게 규칙입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선 술래가 뒤돌아봤을 때 부동 자세로 있어야 하죠. 이렇게 그 무엇보다 규칙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국어 사전에서도 게임을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정의하고 있나 봅니다.
예전에는 집 앞 골목이나 동네 공터에서 이런 놀이판이 자주 벌어지곤 했지만, 지금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땅 위에서 벌어지던 이런 판들은 1990년대 초반 전자오락실이 등장하면서 그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PC방이 주요 무대가 됐죠. IMF 외환 위기로 경제가 휘청일 적에도 고소득 창업 아이템으로 부상한 PC방이 전국에 들불처럼 퍼졌습니다. 선풍적 인기를 몰고온 스타크래프트 덕분이었죠.
이제는 놀이판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혹시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들어보셨나요? 전세 버스, 관광 버스…. 그런 버스와 유사한 거냐고요? 그런 건 아니고, 초월을 뜻하는 접두어 메타(meta-)와 우주, 경험 세계 등을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데, 이 용어는 미국의 소설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1992년 출간한 SF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쓰였다고 하죠.
해커이면서 피자 배달도 하고 있는 주인공이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놓고는 현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메타버스에서 힘을 발휘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던 가상 현실과 메타버스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가상 현실은 가상으로만 존재하지만,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서로 넘나든다는 점입니다.
올해 최고의 인기 게임 중 하나인 ‘모여라 동물의 숲’에선 내 아바타가 물고기도 잡고 곤충 채집도 하고 화석도 캐면서 그곳에서 살아갑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동물의 숲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하지만 만약 우리 동네에도 있는 KFC가 그곳에 매장을 열고 치킨을 판다면 어떨까요?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로, KFC 동물의 숲 지점에 방문해 커넬 샌더스를 만나면 치킨 쿠폰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이벤트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비단 KFC뿐만 아니라 발렌티노나 마크 제이콥스 같은 패션 브랜드들도 동물의 숲에서 신상품을 선보였죠.
▲ 올봄 ‘동물의 숲’에서 선보인 마크 제이콥스의 신상품들
ⓒ 마크 제이콥스 인스타그램(instagram.com/marcjacobs)
이처럼 메타버스는 가상 공간에서 가상의 캐릭터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벌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게임 속에서 유저들이 생일 파티를 열거나 결혼식을 올리는 건 이미 진즉에 일어났던 일이죠. 전자오락실도, PC방도 모두 현실에 속해 있던 ‘판’들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판들이 이제는 현실인 듯 현실 아닌 현실 같은 메타버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고로 재미가 있는 곳에서 판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판에서 놀던 사람들이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애정을느끼는 순간 ‘팬’이 됩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즐겁게 놀 수 있는 판이 마련되면 기꺼이 참여함은 물론이요, 이를 재생산해서 유통시킵니다. 재미는 이제 단순히 기분이나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가치관[主義]’이 됐습니다. 그 가치와 가장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게임입니다. 그래서 게임은 이제 브랜드가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중요한 채널이 됐습니다.
제일매거진 11월호에서는 몰입감과 자연스러운 브랜드 체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이 새로운 채널로 주목받고 있는 트렌드를 짚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