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 한양대 ERICA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23년 콘텐츠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우선 눈에 띄는 건 OTT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보편화, 그리고 IP 중심의 가치 창출 시스템, 콘텐츠 전달 채널을 스스로 만드는 전략 등이 돋보였다. 올해 콘텐츠 생태계의 변화를 정리하며, 2024년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를 예측해 보자.

콘텐츠 경쟁, 국경을 너머 시간을 너머

과거 우리나라 콘텐츠판을 좌지우지하던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요즘 자주 앓는 소리를 낸다. 경쟁하는 상대를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 상대는 믈론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기반의 콘텐츠 향유가 보편화되면서 콘텐츠는 지역, 언어, 국가, 계층 등의 경계를 넘어서며 무한 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국가별, 지역별로 독립적인 콘텐츠 시장을 형성하며 대규모 자본을 기반으로 강력한 배급력을 지닌 글로벌 기업들만 넘어설 수 있었던 장벽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단번에 넘어서며, 전 세계가 동시에 같은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신작 경쟁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30여년이나 지난 드라마 <사인필드> 1년 방영권을 무려 1억 달러에 구입했다. 아무리 과거의 콘텐츠라도 인기 요소만 있다면 지금 다시 보여줘도 신작과 경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콘텐츠 수명도 무의미해졌다. 결국 출시된 모든 콘텐츠가 수명을 다하거나 소멸되지 않고 데이터베이스화되면서 콘텐츠는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말은 재미있고 수준 높은 콘텐츠의 생산도 중요하지만 콘텐츠의 무한경쟁 속에서 향유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의미다.

대중적 검증을 받은 인기 IP를 원해

요즘 영화나 드라마 보면 과거와 다른 어떤 특징이 보인다. 인기 작품의 후속작이거나, 스핀오프 혹은 게임 등 타 장르에서 이미 인기를 얻는 작품을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콘텐츠 경쟁이 심해지고 제작비까지 올라가며, 콘텐츠 생산자는 흥행 실패의 위험을 줄이고(risk hedge) 후광효과(halo effect)를 극대화하고자 대중적 지지를 검증한 원천 IP에 주목하는 추세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 홈 티저 포스터 (출처 : 넷플릭스)

웹소설과 웹툰이 원천 IP로 각광을 받고, 히트한 작품의 시즌제가 활성화되는 이유다. 2023년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무빙>이 전자의 예라면, <스위트 홈>, <경이로운 소문>이 후자의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2024년에 양적인 측면에서 더욱 확대되며 보편화되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보다 정교하게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전략

최근 콘텐츠의 장르화가 심화되고 플랫폼, 미디어, 디바이스 등의 변화에 따라 콘텐츠의 길이와 형식이 다양화하고 있고, 데이터베이스 향유를 전제로 한 다양한 향유 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웹소설과 웹툰이 원천 IP로 각광을 받으면서 콘텐츠 기업은 세계 시장에 원천 IP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원천 IP의 대중성 검증은 물론 글로벌 팬덤까지 확보해 거점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네이버가 만든 글로벌 웹툰 서비스 ‘웹툰’ (출처 : 네이버 웹툰)

네이버의 경우 웹툰은 영어를 비롯하여 8개 외국어 서비스를 실시하는 ‘웹툰(webtoon.com)’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고, 웹소설은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wattpad)를 6,000억 원에 인수함으로써, 웹툰과의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였다. 이를 통해 네이버는 양질의 원천 IP 발굴하고 동시에 관련 빅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을 거점 콘텐츠(향후 다양한 후속 작품의 기반이 되는 콘텐츠)로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시도는 워너브라더스가 DC코믹스를,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한 이유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곧 성취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디즈니가 프랜차이즈 영화나 애니메이션, 리메이크에만 과도하게 치중함으로써 참신함으로 잃고 흥행 부진에 빠졌고, 극장용 콘텐츠 공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디즈니는 극장용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관객을 모아서 IP를 각인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테마파크, 라이선싱, 굿즈 등의 디즈니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해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은 뼈아프다.

2024년 콘텐츠 생태계엔 이런 흐름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은 넷플릭스가 2억 5,000만명, 디즈니+가 1억 5,000만명의 구독자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지향 목적별로 성격과 규모는 다양하다. 넷플릭스와 쿠팡플레이나 애플TV는 각각 서비스 목적이 다르기에 콘텐츠의 수급 방식이나 집중해야 할 콘텐츠의 분야를 차별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자본 열세와 보유 콘텐츠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티빙이 예능 비중을 높이고, 왓챠가 웹툰을 부가 서비스로 제공하고,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중계권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구독자 유인 및 묶어두기(lock-in) 전략은 다양하게 시도될 것이다. 거기에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FAST, Free Ad Supported Streaming)의 전면화나 두 구독 서비스를 묶어서 할인을 제공하거나 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번들링 등 콘텐츠 제공 방식에 대한 방법들도 더 다양하게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4년엔 AI 검색 시스템을 스트리밍 서비스와 결합해 검색 편의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가속될 수도 있으며, 팬덤 경제의 확대로 기업들이 팬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모습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부분이다.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확신할 순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콘텐츠 영역에서 지금까지 상상 못 했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점이다. 콘텐츠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더 유연한 판단과 기민한 대응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박기수 한양대 ERICA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으로 국제문화대학 학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전문가로서 실천중심의 연구에 힘쓰고 있다.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과 함께 문화콘텐츠 향유 전략 및 팬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계를 통한 실천적인 학문의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서사구조와 전략》, 《アニメは 越境する》,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구조와 전략》, 《윤태호》, 《강도하》, 《박흥용》, 《웹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가능성》,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전략》 등 30권의 저서와 8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