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_프로젝트렌트 대표
우리는 개인도, 제품도, 회사도, 도시조차도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일상에서 끊임없이 브랜드를 만나고, 이야기하며, 만듦과 동시에 소비한다. 바야흐로 브랜드의 전성시대다. 브랜드는 팝업 스토어나 플래그십 스토어 등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한다. 사람들은 어떤 브랜드를 원하고 어떤 공간에 모일까? 흔히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하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의 진심이다.
그 자체로 중요해진 브랜드
한국 경제는 제조업의 시대에서 벗어나 서비스 사업이 사회의 주축이 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제품의 기능을 구매하기보다 선호하는 브랜드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비가 일상화되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효율과 저렴함, 가성비 대신 가심비, 가치소비,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성장하며 소비자에게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게 되었고, 이들의 경험과 취향은 새로운 지적자본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의 카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힙하고, 다양하고, 실험적이다. K-드라마와 K-pop이 세계적인 문화의 맥락으로 인정받을 만큼 시장도 성장했다. 전국에 외국 호텔 체인 이상의 멋진 건축과 인테리어, 컨셉의 숙소와 스테이가 넘쳐나고 있다.
이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자체가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보다 빠르게 브랜드의 공급이 많아져, 선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결핍이 아닌 본인의 취향과 즐거움을 위해 소비한다. 또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소비 수준이 높아질수록 본질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왜 구매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것이다.
브랜드를 경험하고 공유하는 소비자
좋은 제품과 경험이 주변에 넘친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똑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경험을 SNS에 알리며, 알아야 할 만한 사람들이 모두 아는 데에는 1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반대로 좋지 않은 사례도 언론의 기사화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거나 생산하며, 모여서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한다. 소비자들 사이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져 브랜드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브랜드의 진심을 요구하는 시대
철학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사랑받는 브랜드 파타고니아
(출처: 파타고니아 공식 홈페이지)
파타고니아는 자신들의 옷을 사지 말라고 하며, 새 옷을 사지 말고 수선해서 입으라는 캠페인 활동을 진행한다. 사람들은 파타고니아에 열광한다. 파타고니아가 공유하는 철학, 진행하는 캠페인 활동을 통해 그들의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브랜드에도 철학과 세계관이 있는지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진행되는 브랜드 팝업스토어에서도 소비자들은 진심을 중시한다. 성공적인 팝업 스토어의 후기를 보면 꼭 이 공간이 진심인가에 대한 부분이 다뤄질 정도다. 팝업스토어는 2021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불과 2년 만에 일상의 거리에서 너무나 쉽게 마주치는 마케팅이자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되었다. 2018년부터 프로젝트 렌트가 팝업스토어를 기획, 운영하며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는 팝업의 성지가 된 성수동은 한 달간 소규모 팝업까지 100여 건이 펼쳐진다고 한다.
부산 전포동의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출처: 시몬스코리아 인스타그램)
가장 큰 분기점이 된 것은 시몬스 침대의 팝업스토어다. 시몬스 침대는 150년이라는 긴 헤리티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브랜드의 색을 젊은 세대의 결에 맞게 잘 풀어낸 사례로 언급된다. 이들이 팝업스토어를 기획하는 데 중시하는 요소 중 하나는 ‘소셜라이징(Socializing)’. 시몬스라는 브랜드를 매개로 로컬 브랜드와 커뮤니케이션한다. 시몬스 팝업 열풍의 첫 시작이던 ‘시몬스 테라스’부터 시몬스 공장이 있는 이천의 농산물을 별도로 디자인해 판매했으며, 부산이라면 부산의 로컬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해당 지역 맛집을 함께 입점시켜 소개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곳에서 해당 지역의 특성을 살린 팝업스토어를 지속해 열 수 있고, 매번 주목받는다.
코로나 이후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많은 브랜드가 이곳저곳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있다. 팝업 정보만을 공유하는 SNS 계정 및 리뷰어들이 생기기도 할 만큼 현상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공급이 많으면 사람들의 관심은 변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팝업스토어가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찾아갔지만, 팝업이 수없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서 방문한 만큼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성공하지 못하는 팝업 스토어는 공급자 관점에서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이 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의 관심도, 이슈화도 되지 않고 심지어 경쟁사조차도 모르는 팝업들이 벌어진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방향과 밀도다. 이 공간을 방문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밀도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오감으로 오트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매일유업 ‘어메이징 오트’의 팝업스토어
(출처: 프로젝트 렌트)
매일유업의 비건 오트 음료 어메이징 오트는 방문자들이 오트의 매력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팝업스토어 ‘카페 어메이징 오트’를 기획했다. 공간 전체를 귀리로 활용해 꾸몄고, 의자까지 제작해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방문자들은 어메이징 오트를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맛보거나 비건 베이킹 클래스에 참여해볼 수 있다. 팝업스토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을 경험하고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중요한 부분은 사람들이 재미를 넘어 가치 있다고 느끼는가이다. 매일유업의 팝업스토어는 비건과 오트에 진심이라는 이야기와 매일유업이라는 브랜드의 식물성 우유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나아가 사라지지 말고 계속 존재해주기를 기원하는 후기들이 줄을 이었다. 이제는 스푼 하나같은 디테일한 기물조차도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 콘텐츠가 되었다. 그저 MZ세대를 쫓기보다, 왜 이 공간을 만드는가, 브랜드의 진심을 담았는가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브랜드가 진심이라는 것은 브랜드다움을 넘어선 비전과 철학, 실질적인 경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일관성 있게 하나의 방향으로 만들어졌을 때 소비자의 체감이자 경험으로 완성되는 영역이다. 브랜드를 더 멋지게 데코레이션한다는 것은 본질이 될 수 없으며, 경쟁상품도 많을뿐더러 심지어 소비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비교해 판단하는 상황이다. 이제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의 판매와 수익을 넘어, 팬을 만들고 지속가능성을 가지기 위해 브랜드의 존재에 대해 왜라는 질문에 답하고,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한다. 사람들은 진심이 있는 곳에 다가온다.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LG전자에서 모바일폰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현대카드 어드밴스디자인팀과 스타트업 사업을 기획해 브랜드 컨설팅 에이전시 필라멘트앤코 대표를 맡았다. 성수동의 팝업스토어 플랫폼 서비스 ‘프로젝트 렌트’를 운영 중이며, 단순한 브랜딩을 넘어 공간 기반의 콘텐츠 기획 및 프로듀싱의 영역까지 오프라인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