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영_여행 인사이트 미디어 ‘히치하이커’ 대표 /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저자

2022년 4월 28일,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직원에게 ‘어디서든 생활하고 일할 수 있습니다(Live and Work Anywhere)’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2021년 하반기 숙박 예약의 20%가 1개월 이상의 여행이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1주일 이상 머무는 여행이었다’며 체류 여행 시장이 에어비앤비의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음을 밝혔다. 브라이언 자신 또한 2022년 초부터 2주마다 거주지를 바꾸며 원격 근무를 실험해온 바 있다. 팬데믹 초반에는 직원 1,900명을 해고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에어비앤비는 체류 여행에 집중하면서 2019년을 넘어서는 매출을 기록 중이다.

일과 여행을 한 번에, 워케이션의 유행과 세분화

원격근무의 장기화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답답한 도심을 떠나 휴가지에 머물며 일을 병행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를 뜻하는 워케이션(Work와 Vacation의 합성어)이란 신조어는 이제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한 달 살기’라고 불리는 체류형 여행이 있었지만, 워케이션은 집이 아닌 곳에 머무르며 일과 여행을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한 미국의 경우,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원격 근무 가능한 회사를 선택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는 소위 ‘대(大)퇴사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워케이션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프리랜서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호텔 구독 서비스 HafH (출처: HafH 유튜브 계정)

2023년의 워케이션은 체류 목적과 취향에 따라 더욱 세분화될 전망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호텔 기반 워케이션, 아웃도어 워케이션과 같은 세부 카테고리가 생겨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신생 비즈니스도 탄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숙박시설을 옮겨 다니며 생활과 일, 여행을 함께 하는 프리랜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숙박 구독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호텔 구독 서비스인 HafH(Home Away from Home)은 최근 한국 호텔을 제휴 리스트에 추가하며 해외여행 시장까지 진출하고 있으며, 도큐 호텔도 2021년에 자사의 체인을 구독 형태로 묵을 수 있는 서비스 ‘츠기 츠기 (tsugi tsugi)’를 내놓았다. 최초 39개 체인으로 시작했던 츠기 츠기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2022년에는 전국 173개 지점으로 구독 가능한 호텔 수를 늘렸다. 한편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아웃도어 워케이션 서비스 언요크드(Unyoked)는 한적한 교외의 단독 캐빈에 머물며 여행과 일을 할 수 있는 숙박 서비스로, 2021년 11월까지 총 1천만 달러의 벤처 캐피털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하고 있다.

트래블 테크의 화두, 웹 3.0

2023년 여행 기술 분야 최대 화두는 웹 3.0이 될 전망이다. 웹 3.0은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대의 웹으로, 최근 몇 년간 화제가 된 가상화폐와 NFT, 메타버스 등을 모두 아우르는 광범위한 용어다. 특히 팬데믹 이후 여행 분야에서는 메타버스를 통한 가상 경험이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고,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치면서 웹 3.0으로 서서히 진입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2023년에는 여행업계에서 웹 3.0 기반의 기술이 실제 서비스와 결합되는 사례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관광청이 진행한 관광촉진 NFT (출처: YAKS)

먼저 NFT의 경우, 웹 3.0의 핵심인 참여와 공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전망이다. 태국관광청은 지난 2022년 11월부터 약 1달간 태국 전역의 주요 랜드마크 5곳에서 QR코드로 NFT를 획득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총 4,000개가 발행된 NFT를 선착순으로 찾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관광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일종의 관광 프로모션이다. 관광청은 이를 통해 여행자의 방문 동선과 국적 등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여행자는 참여를 통해 보상을 얻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에서도 대중화되고 있는데, 여행 NFT 전문 기업인 룰라는 여행지에 방문하면 결제 금액의 1%를 환원해 주는 관광 촉진형 디지털 통화 ‘룰라 코인’, 전국의 온천 관광지와 협업한 ‘룰라 NFT’를 개발해 지자체 전역과 협업하고 있다. 이미 룰라 코인은 일본 전역의 19개 지역에 적용되었으며 2023년 50개 지역으로 확대 예정이다. NFT 역시 400개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 호텔을 만들어 미리 체험케 하는 서비스 기업 호텔버스(Hotelverse)

(출처: 호텔버스 공식 유튜브 계정)

메타버스도 지금까지는 아바타를 통한 가상 경험에 한정됐다면, 최근에는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둔 호텔버스(Hotelverse)는 몰입감 있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실제 투숙 전에 좀 더 생생하게 객실을 구경하고 효율적으로 선택하도록 돕는 기업이다. 이미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IHG)을 비롯한 유수의 호텔 기업이 호텔버스의 기술을 차용하고 있다.

내 취향과 관심사를 탐구하는 여행, 노-노멀

팬데믹 3년간 전 세계 여행자는 근거리 여행과 아웃도어 액티비티로 기존의 여행을 대체하면서 뉴노멀 시대에 적응해 왔다. 또한 2022년에는 보상 소비의 심리와 함께 ‘버킷리스트’ 여행, 즉 일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렇다면 2023년의 여행 소비는 어떻게 변화할까?

세계 2대 여행 예약 플랫폼인 익스피디아가 17개국 24,000명의 설문조사를 통해 도출한 올해 여행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는 노-노멀(No-Normal)이다. 뉴 노멀을 지나 한두 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노-노멀로 지칭한 것이다. 노-노멀로 대표되는 여행으로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 영상 콘텐츠의 배경지로 떠나는 여행, 자연 속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아웃도어 여행 등을 꼽았다. 여행 전문 미디어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도 2023년 여행 트렌드 18가지를 꼽으면서 이색적인 여행을 상당수 포함시켰다. 럭셔리 요트를 타는 여행, 슬립 투어리즘(숙면에 도움을 주는 숙소나 액티비티), 자기 계발 목적의 고급 교육 여행 등 색다른 테마의 여행을 올해의 주요 트렌드로 소개했다. 즉, 노-노멀 시대의 여행은 전통적인 여행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신의 취향과 관심 테마에 맞춰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노-노멀 시대가 도래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여전한 ‘불확실성’을 하나의 이유로 꼽고 싶다. 2023년에는 그동안 많은 제약과 제한을 통해 억눌려 있던 여행의 갈망이 소비로 이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다만 여전히 남아있는 전쟁의 위험, 높은 물가, 국가 간의 정치적 분쟁과 입출국 절차의 변동성 등 외부 환경의 불안 요소가 개인의 여행 여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올해의 여행은 가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한 여행, 특히 개인적으로 몰두하거나 좋아하는 분야를 더 깊게 체험해 보기 위한 여행이 여행지 선택부터 기간, 소비 패턴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본다. 노-노멀의 시대인 2023년, 당신은 어떤 취향을 담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가?


김다영

여행 인사이트 미디어 히치하이커닷컴(hitchhickr.com)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여행 산업의 변화를 탐구하고, 앞으로의 여행을 전망하는 일을 한다. 현재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한 관광 관련 기관 및 여행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과 여행 트렌드 교육을 하고 있으며, 관광 마케팅과 트래블테크 분야의 자문과 심사,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일반 기업과 공공기관의 임직원을 위한 스마트 여행 전문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팟캐스트 ‘김다영의 똑똑한 여행 트렌드’를 통해 매주 글로벌 여행 업계의 최신 동향을 전달한다. 저서로는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