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_㈜업루트컴퍼니 CEO & 한양대 겸임교수
‘내러티브도 커뮤니티도, 가치도 없어 보인다. 나의 암호화폐 지갑만 지저분해지는 것 같다’. 최근 SNS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글을 봤다. 상품을 구매하고 프로모션으로 받은 NFT를 표현하는 글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NFT시장에서 여러 기업이 뒤처질 세라 시도하고 있는 많은 NFT는 위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행 초기 사람들은 NFT를 본인의 암호화폐 지갑에 받는 것만으로 신선함을 느끼고 투자자산이 되리라 여겼지만, 실망스러운 경험이 쌓이면서 그 기대감이 빠르게 불만으로 바뀌고 있다.
2021년 올해의 단어 ‘NFT’
NFT는 지난 한 해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단어였다. 팬톤이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처럼, 영국 콜린스 사전은 그 시대의 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다. 2021년 콜린스 사전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바로 NFT였다. 2020년 올해의 단어가 ‘코로나바이러스’였던 것을 감안하면 NFT에 얼마나 많은 관심사가 쏠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NFT는 지난 수년간 관련 업계에서 따라붙던 ‘블록체인 기술이 과연 어떤 쓰임새가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이기도 했다. 2021년은 그 원년이었고 NFT는 디지털 아트 시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창작한 디지털 아트 작품에 원본의 개념을 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희소성이 생기면서 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졌다.
2021년 2월 세계 양대 경매장 중 하나인,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NFT 작품 ‘매일 : 첫 5000일’ 이 6930만 달러에 낙찰된 사건은 디지털 아트가 NFT 시장에 포문을 여는 신호가 되었다. 이는 NFT가 블록체인에 기반한 고유한 디지털 수집품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수집하는 이유에는 투자, 투기, 정서적 애착,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강박감인 FOMO(Fear of Missing Out)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수집의핵심은 ‘희소성’이다. 무엇을 수집하든 그 이유는 결국 수집하고자 하는 물건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Lee Sedol vs. AlphaGo, Round 4, (출처: opensea.io)
필자는 NFT의 산업적 흐름을 NFT 1.0과 NFT 2.0으로 구분한다. NFT1.0 은 디지털 수집품으로의 가치 증명 시기였다. 즉 디지털 콘텐츠에 ‘소유’라는 새로운 개념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졌다. ‘소유’란 무엇인가? 소유에 사전적 해석과 별개로 필자는 “팔 수 없는 아이템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소유를 설명한다. NFT는 디지털 아트 분야뿐만이 아니라 콜렉터블 시장 전체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1년 4월 바둑으로 잘 알려진 이세돌 9단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긴 마지막 바둑 대국으로 알려진 자신과 알파고의 제4국 경기 기보를 영상으로 만들어 NFT를 발행했다. 희소성과 역사적 사건이 담긴 이 NFT는 누군가에게 수집품으로서의 가치가 생겼고 당시 2억5천만에 거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NFT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으며 그 중에는 가치를 잃고 거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NFT가 속출했다. 그리고 시장은 NFT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 NFT는 어디에 사용할 수 있나요?”
일상에 활용 가능한, 유틸리티 NFT
이 질문에 대한 답을 NFT 2.0에서는 커뮤니티와 유틸리티(사용성)에서 찾고 있다. NFT 2.0에서는 NFT를 활용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 경험은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현실 세계와 연결될 수도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사용 가치가 없는 NFT를 민팅(NFT를 만드는 행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반면, 그 사이 바다 건너에서는 NFT를 활용한 web 3.0 서비스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NFT와 연계한 ‘X-to-earn(관습적으로 수익과 거리가 먼 새로운 무언가로 돈을 번다는 뜻)’ 시장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게임을 하며 돈을 번다는 play to earn이 2021년 ‘엑시인피니티’라는 게임을 시작으로 게임업계의 큰 트렌드가 되었다. 이제는 play 뿐만이 아니라 move, learn, sleep등 다양한 earn 시리즈가 출현하고 있다. web3.0 시대에 돈 버는 방식은 달라진다. move to earn 시장을 열고 있는 스테픈(Stepn) 사례를 보자.
운동하면 혜택을 준다, Move to Earn NFT 스테픈 (출처: STEPN 홈페이지)
달리면 혜택, 공부하면 혜택. 다양하게 쓰이는 NFT
스테픈(Stepn) 프로젝트는 NFT를 활용해 ‘Move to Earn(소득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새로운 운동 문화를 만들고 있다. 스테픈에서는 워커(Walker), 조거(Jogger), 러너(Runner), 트레이너(Trainer) 등 총 4가지의 스니커즈 NFT가 있다. 워커는 1~6km/h, 조거는 4~10km/h, 러너는 8~10km/h, 트레이너는 1~20km/h라는 속도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 본인의 운동 스타일에 맞춰 해당 NFT를 장착하면 운동 속도에 따라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여기에는 NFT,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게임요소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해 운동하는데 재미와 동기를 부여한다. 내가 구매한 NFT에 이러한 유틸리티가 적용돼 있고, 이로 인해 사용자가 늘어나고 커뮤니티가 활성화된다면 지속 가능한 NFT가 될 가능성은 증가할 것이다.
공부하면 수익이 생기는 Let me speak (출처: Let me speak 홈페이지)
운동뿐만 아니라 학습 시장에도 NFT를 활용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Learn and earn을 지향하는 Let Me Speak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NFT 캐릭터를 구매하여 학습하고 보상을 받는 학습 플랫폼이다. NFT 캐릭터는 Common, Uncommon, Epic, Rare 및 Legendary 범주로 나뉘고 카테고리마다 속성과 획득 능력이 다르다. 영어 학습자는 무료로 플레이하고 학습할 수 있지만, 보상을 위해서는 NFT캐릭터를 구매하거나, 또는 빌려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구매하면 보상의 100%를 받지만 빌릴 때는 보상의 50%를 받고, 나머지 50%는 NFT 캐릭터의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이렇듯, 학습자에게 학습과정의 게임화를 통해 플레이하고 배우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학습을 장려하고 NFT 활용에 대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NFT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도 NFT는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수년간은 여러 분야에서 생각지도 못한 실험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시장의 변화를 관찰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며 다채로운 실험을 시도해보는 것. 이것이 마케터들이 NFT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최선의 자세일 것이다.
이장우 ㈜업루트컴퍼니 CEO & 한양대 겸임교수
한양대학교 글로벌기업가센터에서 겸임교수로 있으며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맡고 있다. 디지털 자산 전문 회사인 (주)업루트컴퍼니의 CEO로 비트코인세이빙과 NFT 창작소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에서 NFT 자문위원으로 있으며, 특허청의 NFT 전문가협의체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관련 저서로는 <당신의 지갑을 채울 디지털화폐가 뜬다, 2020>와 <NFT 사용설명서, 2021>의 감수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