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주하나 프로 (서가영 CD팀)

버거킹의 버거 이름을 3개 이상 말할 수 있는 사람? 버거킹 글로벌 캠페인에서 나온 질문에 사람들의 답은 이런 식이었다. “와퍼, 주니어 와퍼, 어쩌고 와퍼…?

‘와퍼의 집(HOME OF THE WHOPPER)’이라는 오랜 슬로건처럼 와퍼는 버거킹의 핵심이자 전부였다. 하지만 혼자 나는 새는 멀리 갈 수 없는 법. 버거킹은 또 다른 주력 제품, 새로운 왕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크리스퍼(KRISPPER)’. 와퍼가 비프버거의 왕이라면, 크리스퍼는 치킨버거의 왕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이른바 버거 킹덤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 치킨버거 플랫폼의 등장인 셈이다. 물론 버거킹에서 치킨버거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름부터 다르다. 와퍼(WHOPPER)와 크리스퍼(KRISPPER). 퍼(-PPER)자 돌림에서도 알 수 있듯, 크리스퍼는 버거킹의 적통 치킨버거다.

크리스퍼. 어찌 들으면 사람 같기도 한, 이 이름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오리엔테이션 문서 속 나란히 적힌 두 이름에서 답을 찾았다. “WHOPPER & KRISPPER” 크리스퍼는 혼자일 땐 그저 낯선 이름일 뿐이었지만, 와퍼와 함께 두면 힘이 생겼다. 와퍼급의 치킨버거라는 느낌이 분명해졌다. 와퍼는 크리스퍼가 넘어야 할 큰 산인 동시에, 버거킹의 자산이기도 하다. 그렇게 와퍼를 이용해 ‘와퍼 레버리지’를 만들어보자는 전략이 나왔다.

레버리지와 ‘어그로’ 사이에서 큰 컨셉이 나왔다. “나는 와퍼를 좋아하진 않아 (I DON’T LIKE WHOPPER)” “하지만 크리스퍼는 사랑하지 (BUT, I LOVE KRISPPER)”. 버거킹 광고에서 과감하게 “와퍼는 그닥”이라는 메시지를 넣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치킨버거 러버들이 와퍼 말고 크리스퍼를 외치는 모습을 통해 버거킹의 주력 치킨버거 크리스퍼를 강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광고주도 분명 재밌어 하리라는 마음 반, 너무 갔나 걱정하는 마음이 반이었지만 이미 ‘와퍼 헤이터(WHOPPER Hater)’라는 8톤 트럭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티저에서 우리는 와퍼를 마음껏 찢고, 낙서했다. 이래도 되는 거예요? 싶을 정도로.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광고주는 이미 완전히 크리스퍼의 팬이자 와퍼의 안티팬이 되어있었다. 회의 시간에 “와퍼 포스터를 불에 태우자”던 팀 막내에게 “그래도 정도가 있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광고주 입에서 “더 센 건 어때요? 불에 태운다던가.”라는 말이 나왔다. 화형식까지 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되는지 되물을 정도로 열린 마인드인 광고주 덕에 마음껏 와퍼를 괴롭혀보았다.

티저가 치킨버거 러버들이 와퍼를 싫어하는 면모를 보여줬다면, 본편은 그들이 사랑하는 크리스퍼와 함께 보내는 주말 하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콘셉트였다. 모델도 이 부분을 중점으로 선택했고,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담기 위해 실제 필름 카메라로 촬영 후 필름을 미국으로 보내 인화했다. 덕분에 “잠깐만요, 롤 갈고 갈게요!”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신기했던 건 신개념 저화질 모니터링이었다. 디지털이 아니기에 촬영본을 바로 볼 수 없었고 이런 방식의 모니터링만 가능했다.

초저화질 화면을 통해 느낌적인 느낌으로 모니터한 촬영본은 모든 장면이 베스트 컷이었다. 흐린 눈으로 봐서 다 예뻐 보이는 거 아닌지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기다리고 기다렸던 필름이 미국에서 도착한 순간, 그런 걱정은 직사광선을 만난 필름처럼 싹 날아갔다.

사실 촬영 전 가장 우려했던 것은 모든 식품 광고의 숙명인 취식 컷이었다. 하지만 노윤서, 추영우 배우의 기꺼운 먹방으로 촬영 후에는 오히려 가장 기대되는 컷이 되어버렸다. 역시 두 배우가 백상 신인상을 괜히 받은 게 아니다. 주목받는 신예인 두 사람처럼 크리스퍼도 치킨버거 계의 황금 신인이 되길 바라본다.

광고가 방영되고 주변에서 광고 음악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럴수록 내심 아쉬움이 커졌다. 우리에겐 꼭 쓰고 싶은 음악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시안에 들어갔던 것인데, 너무 비싸서 차마 주머니에서 꺼내지도 못했었다. 모델이자 가수인 수키 워터하우스(Suki Waterhouse)의 노래 ‘My Fun’. 오늘은 크리스퍼를 먹으며 이 음악을 들어보면 어떨까.

크리스퍼는 현재 출시된 버전을 기본으로 라인업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와퍼만의 집이었던 버거킹이, 크리스퍼와의 공동명의가 될 그날까지. 이제 막 즉위한 어린 왕을 위하여. “Long Live KRISPPER!(크리스퍼, 오래도록 만수무강하시길).”

제일기획 주하나 프로 (서가영 CD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