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혜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배움은 예로부터 늘 쉽지 않은 일로 여겨져 왔다. 르네상스의 학자들이 촛불 아래 고전을 탐독하던 순간에도, 조선 선비들이 서원에서 학문에 매진하던 때에도 공부는 인내와 꾸준함을 요구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그런데 요즘 Z세대들의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암기하며 공부하던 모습 대신, 좋아하는 굿즈로 꾸민 감성적인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타인과 소통하는 새로운 공부 문화가 부상한다. 지루하기만 했던 ‘공부’가 어느새 즐겁고 멋진 라이프스타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처럼 새로워진 스터디 트렌드는 Z세대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It’s a place to be solitary, but also a place to build community, and a place to flex.”
(혼자이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곳)
-미국도서관협회의 세대별 도서관 이용 조사 리포트 중-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주목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전 세계 Z세대에게 고독하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떠오른 곳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공공도서관이다. 조용히 공부만 해야 할 것 같은 공간이 Z세대에게 주목받는 공간으로 떠오르다니! 실제로 미국도서관협회(ALA)의 세대별 도서관 이용 조사에 따르면, 13~40세 응답자의 54%가 최근 1년 내 오프라인 도서관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성세대에 비해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더 높은 비율로 공공도서관을 이용함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뉴욕 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은 단연 인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도서관에는 ‘더 로즈 메인 리딩룸’이라는 대형 열람실이 있는데, 르네상스풍의 천장화에 책상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 ‘인증샷’을 부르는 핫플레이스로 꼽힌다. 최근 유명 셀럽인 두아 리파가 자신의 북클럽 라이브 녹화를 해당 도서관에서 진행하며 ‘뉴욕 공공도서관=핫플’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근 각 지역에 새롭게 문을 연 테마형 도서관에 젊은 세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오갈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인 동시에 공간이 주는 몰입감과 휴식에 매력을 느낀 탓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서울에 개관한 ‘강동숲속도서관’은 소셜미디어 입소문을 타고 ‘오픈런’을 해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2025년 5월 이후 ‘숲속도서관’ 키워드 검색량은 급증세를 보이며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점차 다양한 형태의 공부 공간이 등장하는 추세다. 덕수궁 근처의 한 공유 서재는 예약제로 운영되어 일정 시간 공간에 머무르며 책을 읽거나 사색에 빠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밤에는 와인 페어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며 복합 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한다. 한편, 스타필드 수원의 한 스터디 카페는 책상과 의자가 빼곡하게 나열된 단순한 스터디 카페가 아닌 새로운 컨셉의 스터디 공간을 기획했다. 프라이빗하게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1인실 공간을, 미팅이나 세미나가 필요한 이들은 그룹 룸을, 가볍게 재충전이 필요한 이용자에겐 릴렉스 공간을 이용하는 식이다.

홀로 고독하게 공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공부는 함께하는 소셜 활동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스터디윗미(Study with me)’ 영상이 대표적 예다. 유튜브와 틱톡에서는 ‘의대생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스터디윗미’, ‘5시간 벼락치기 같이 공부해요’, ‘시험 일주일 남은 로스쿨생과 같이 공부해요’ 등 다양한 스터디윗미 영상이 인기다. 심지어는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캐릭터들과 함께 스터디하는 콘텐츠인 일명 ‘동숲 스터디’ 영상도 인기다. 이는 ‘혼자 있고는 싶은데, 혼자 있으면 외로운’ Z세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러한 영상들은 화려한 강의나 족집게 공부 비법을 전수하지 않는다. 그저 책상에 앉아 한두 시간, 심지어는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기에 바쁘다. 그런데도 조회수 10만 회를 가뿐히 돌파하며 인기를 끈다. 댓글에서는 ‘덕분에 자극받고 책상에 앉았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다.’, ‘같이 공부하니까 집중이 잘된다.’와 같은 호응이 이어진다. 화면 속 누군가와 함께하는 듯한 유대감을 느끼며 집중력을 높이고 동기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스터디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이처럼 함께 공부하는 문화를 반영한 웹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일례로 ‘Study Stream’은 비대면 회의 플랫폼 줌(Zoom)을 기반으로 전 세계의 모르는 학생들과 함께 영상을 틀어놓고 공부하는 웹사이트다. 링크를 통해 입장하면 마치 24시간 내내 오픈된 국제 독서실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왠지 독서실에 들어온 분위기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는 반응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내에는 ‘열정품은타이머’(이하 ‘열품타’)가 있다. ‘열품타’는 학습 시간 관리를 돕고 공부 습관을 형성하도록 지원하는 모바일 앱으로, 온라인 스터디 그룹에 가입하여 공부 시간도 경쟁할 수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공부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고립된 행위가 아닌, 서로 연결되며 즐거움을 찾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한다.

배움을 즐기는 방식은 공간뿐 아니라 아이템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이 공부에 필요한 아이템을 단순한 기능성 제품이 아닌, 몰입감을 높이고 만족감을 주는 아이템으로 선택하고 있다.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필수품으로 꼽히는 아이템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다. 특히 소니의 무선 헤드폰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소니코리아에 따르면 학생층인 15세~24세의 프리미엄 무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구매 비중이 2019년 7%에서 2023년 31%로 불과 4년 만에 약 4배 증가했다고 한다. 문구류의 부활도 눈에 띈다. 지난 4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29CM가 주최한 오프라인 문구페어 ‘인벤타리오’는 단 3일 만에 티켓이 매진되었고, 29CM 앱에서는 ‘문구페어’ 검색량이 약 10만 건에 달했다. 자신의 책상을 아기자기한 문구로 꾸미려는 사람들로 행사장은 북적였다.

한편 디지털 아이템들도 강세다. 전자책과 태블릿, 각종 AI 도구 등 다양한 아이템들이 학습환경을 크게 변화시키는 추세다. 특히 효과적인 공부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늘면서, 최근 클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활용한 스터디 플래너용 디지털 템플릿들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왕이면 눈에 보기에도 즐거운 디자인을 선호하며, 공부 자체를 하나의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이처럼 Z세대가 공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배움은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AI 전성시대, 산업구조가 급변하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오늘날, 이들은 생존을 위한 의무가 아닌 미래를 대비하는 주체적 선택으로 공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둘째, 소셜미디어 공유 문화와 아날로그 감각이 결합하며 공부 과정 자체가 멋지고 즐거운 콘텐츠로 변화했다. Z세대는 공부를 단순한 작업이 아닌 자기표현과 커뮤니티 활동의 무대로 만들었고, 북커버 · 문구류 같은 감각적인 제품들과 뉴욕 공공도서관 · 숲속도서관 같은 장소들은 공부를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Z세대에게 공부는 단순한 학습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 새로운 문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업계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다혜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삼성 · SK · LG 등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트렌드 기반 미래전략 연구를 수행하며, <K뷰티 트렌드>, <스물하나, 서른아홉>,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시리즈를 공저했다. 현재 서울대 학부 및 대학원에서 소비자행태론 과목을 강의하고, KBS1 라디오 성공예감 트렌드 팔로우 코너에 고정 출연하며 다양한 기업에서 트렌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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