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은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높아져만 가는 1인가구 비중, 낮아지는 혼인율과 출생률까지. 얼핏 보면 우리 사회는 점점 외로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 오히려 혼자가 익숙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눈치 보이고 유난스럽게 보던 ‘혼밥’에서 시작된 ‘혼~’ 키워드는 이제 너무나도 우리 삶에 익숙한 키워드가 됐다.

‘혼영(혼자 영화)’, ‘혼콘(혼자 콘서트)’ 등 절대 혼자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영역까지 쉽게 혼자 즐긴다. 더 이상 함께 해야만 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함께’가 필수가 아닌 시대라고 해서 이 시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된 시대상에 맞게 사람들은 누구와 함께하려 할까? 소셜 빅데이터로 분석 결과 ‘함께하다’의 연관 대상 키워드 중 눈에 띄는 변화는 ‘가족’과 ‘선생님’에 있다. 이 시대의 관계성, 그 중에서도 ‘가족’과 ‘선생님’이 주목받는 이유를 소셜 빅데이터 분석으로 알아보자.

2020년 코로나로 다시금 중요해진 가족과의 시간 이후 2023년부터 다시 가족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러한 가족에 대한 관심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2030세대의 가족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소셜 빅데이터로 10년 전인 2014년의 2030세대가 말하는 가족의 연관어와 현재 2024년 그들이 말하는 가족의 연관어를 비교해 봤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첫 번째 변화는 ‘가족’이라는 개념의 범위다. 지금의 2030세대가 말하는 가족은 앞으로 만들어갈 나의 가족이 아닌, 지금의 직계 가족인 부모님을 뜻한다. 1인가구 증가, 혼인율 저하와 같은 사회적 현상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과거에 비해 지금의 2030세대에게 가족은 미래의 배우자, 자녀가 아닌 지금 당장 현존해 계신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변화는 부정 감성어의 출현이다. 2014년에는 ‘눈물’, ‘따뜻한’과 같은 애틋한 감성을 가족과 연관되어 말했다면, 2024년에는 ‘눈치’, ‘불편함’, ‘어려움’과 같은 부정 감성어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과거에는 가족에 대한 부정 감성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2030세대는 가족에 대한 불편함, 부담을 입 밖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빠가 일 그만두고 싶어 하시는 거 같은데 어쩌지. 내가 가족들 부양하길 바라는 눈치야. (…) 만약 아빠가 일 그만두면 집에 돈 나올 구석 없어서 당연히 내가 우리집 생활비를 대야 함. 아빠가 앞으로 3~5년 안에 일을 더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서(노후는 안 되어 있음) 나도 막막하긴 한데 저런 식으로 말하니까 황당하다. 머리 터질 것 같음.”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부양 부담이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에서 불안감이 찾아온다. 가족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쪽으로만 변화한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변화는 ‘데이트’라는 키워드에 있다. 얼핏 보면 2014년에 비해 2024년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콘텐츠가 양적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을 본다면 질적으로는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가족과의 데이트에서는 무엇을 할까? 2030세대가 말하는 가족과의 데이트에는 ‘산책’과 ‘인생네컷(셀프 사진 촬영 서비스)’과 같은 키워드가 나타난다. 퇴근 후 가족과의 동네 산책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 붕어빵과 같은 일상적인 것이 이들이 말하는 가족과의 데이트 코스다. 그리고 부모님과 찍는 ‘인생네컷’도 데이트를 인증하는 주요 수단이다.

2014년 가족 콘텐츠에는 ‘가족사진’이 있었다. 과거의 가족사진은 주로 부모님의 요구에 의해 찍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 가족의 화목의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써 딱딱하게, 모두 같은 자세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가족사진은 거실의 한가운데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과 일상 속 데이트에서 ‘인생네컷’을 찍는다. 대단한 예약도, 차려 입을 필요도 없이 쉽게 포토부스에 들어가 다 같이 재미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 사진은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자랑의 수단이 된다.

자식은 부모님과의 친밀함, 허물없음을 자랑하기 위해 SNS에 사진을 올리고, 부모님은 냉장고, 지갑 등 본인이 가장 자주 보는 곳에 사진을 놓아 뿌듯함을 느낀다.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의 가족행사가 아닌, 평일의 일상 속에서 가족과의 데이트로 변모한 것이다. 새로운 가족 형성을 통해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 부모님이라는 내 가족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증진시키고 지킬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의무의 가족은 지고, 호혜(互惠)의 가족만이 남는다.

호혜(互惠)의 관계를 추구하게 되면서, 관계의 불편함을 다른 형태로 대체하려 한다. 그 중심에 ‘선생님’이 있다. 필자가 공동 집필한 <2025 트렌드노트>에선 선생님의 유형 4 가지에 주목했다. ‘운동, 뷰티, 의료, 공부’ 분야의 선생님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소셜 데이터 상 큰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트레이너 선생님’이다. ‘PT(Personal Training)’를 받게 되면, 운동부터 시작해 매 끼니 식단, 생활 습관까지 모두 선생님과 카톡으로 공유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야식 먹으면 안 된다’, ‘운동이 부족하다’, ‘채소를 더 먹어라’ 등 내 건강을 위한 수많은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듣게 된다. 제대로 지키지 않아 혼나기도 하지만 그조차 돈을 주고 자발적으로 구매한 서비스이다. 공부의 영역에 있는 ‘학습지 선생님’도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최근에 학습지를 찾는 203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학습지 선생님에게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평일의 내 일상을 체크해준다는 점과 운동과 식단, 숙제라는 과제를 꼭 지키기 위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선생님 서비스를 이용할까?

“성인구몬 해본 사람 있어? 만족도가 어땠니? 쌤(선생님)이랑 비대면으로도 할 수 있다던데 어때? 그냥 좀 삶이 느슨해지는 것 같아서 일본어나 중국어 하려고 하거든. 아님 그냥 다른 것도 좋고. 뭐든 괜찮음.”

이들이 선생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대단한 몸짱이 되기 위해서, 외국어 마스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느슨해지는 내 삶을 붙잡기 위해, 잔소리를 듣기 위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잔소리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엄마의 잔소리와 닮아 있다. 어른이 돼 혼자 사는 지금 이들은 스스로 잔소리 서비스를 돈을 주고 구매한다. 한마디로 ‘케어의 아웃소싱’ 현상이다.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누군가의 케어가 당연하지 않은 삶을 혼자 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키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키우기 위해 선생님이라는 서비스를 스스로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기계발보다 자기관리, 그 중심에 있는 케어의 아웃소싱

케어의 아웃소싱 트렌드 내에는 이제 자기계발보다 자기관리를 더 중시하는 2030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드러난다. ‘재테크, 자격증, 투자 공부’ 등과 같이 나의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것이 한 때의 트렌드였다면,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잘 유지하고 관리할지가 큰 관건이다. 나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몸, 피부, 정신건강, 혈당’까지 앞으로 생겨날 것이 아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

이들의 목표는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다. 느슨해지는 나를 다잡아줄 무엇인가가 필요할 뿐이다. 이제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케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의무를 지우지 않는 호혜(互惠)의 가족, 1인 가구로서 스스로를 잘 키우는 삶에서 케어의 아웃소싱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브랜드가 다잡아 줄 수 있는 고객의 일상은 무엇인가?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관리의 형태로 일상을 체크해 줄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자.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케어는 능력치 향상, 지금 갖지 못한 것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유지하기 위한 관리임을 잊지 말자.


신예은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트렌드노트2023>, <트렌드노트 2024>의 공저자, <트렌드노트 2025>의 대표저자로 참여했다. 유튜브 생활변화관측소에 출연 및 기획을 맡고 있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다. 세상의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알기 위해 소셜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았다. 현존하는 가치관들과 앞으로 생겨날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해 생각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