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건강 챙기는 게 제일 재밌어요.” 지난 5월, 노들섬에서는 독특한 축제가 열렸다. 건강에 진심인 사람들이 다 함께 운동을 즐기는 축제, ‘시티포레스티벌2024’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일렬로 앉아 요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몸을 푸는 모습은 평소 볼 수 없는 특별한 광경을 선사했다. 아이돌만큼이나 인기 있는 운동 인플루언서들이 출연해 참여자들에게 운동을 알려준 덕분일까. 해당 축제는 국내외 운동 매니아 3000명이 참가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운동 인플루언서들과 야외에서 운동하며 즐기는 페스티벌, 시티포레스티벌 (출처 : 시티포레스티벌 인스타그램)
바야흐로 건강 전성시대다.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건강관리가 핫해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 젊은이들에게도 건강이 중요한 관심사로 주목받으면서 건강 트렌드도 변화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고진감래형 건강관리가 아닌, 과정과 결과를 모두 즐기는 건강관리법이 대세가 되고 있다. ‘트렌드코리아’에서는 이를 건강(health) 관리가 즐거워진다(pleasure)는 의미에서,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로 정의하기도 했다. 지루하리만치 익숙한 건강관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트렌디해진 것일까? 헬시플레저 추종자들의 즐거운 건강 관리법을 살펴보자.
운동이 제일 재밌어, 오운완
“요즘 무슨 운동하세요?”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간단한 스몰톡에서는 늘 운동 관련 이야기가 등장한다. 헬시플레저 건강관리의 핵심은 운동 역시 즐기는 것이다. 때문에 무작정 헬스클럽에 등록하여 하기 싫은 운동을 꾸역꾸역 해나가는 식의 방법은 지고,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을 찾아 밥 먹듯이 운동을 즐기는 방식이 뜨고 있다.
먼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상에서 운동 루틴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매일경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10명 중 9명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오늘 하루의 운동을 기록하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해시태그 개수도 800만을 넘어섰다. 오운완 인증 트렌드가 지속되자, 심지어는 여행에 가서도 운동 루틴을 사수하려는 탓에 호텔을 고를 때에도 객실만큼이나 피트니스 시설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호텔업계에서도 헬스장, 수영장, 사우나뿐 아니라 요가,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운동 특화 객실 패키지를 선보이는 등 소비자 니즈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2030 세대 사이 인기를 끄는 프리다이빙
한편 여가 생활로서의 운동도 눈여겨볼 만하다. 요즘 2030 세대 사이에서 인생 취미라 불리는 운동은 ‘프리다이빙’이다. SNS에서는 프리다이빙 후기와 함께 관련 명소를 공유하거나 함께할 사람을 구하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자축구와 풋살이 떠오르는 추세다. 멋진 유니폼을 함께 맞춰 입고, 소속된 팀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실제로 여성 풋살팀은 5년 새 3배나 증가했으며, 서울의 유명 풋살구장에서는 예약 경쟁이 치열해 하늘의 별따기가 될 정도라 한다.
맛과 건강을 동시에 즐긴다
건강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은 식단관리다. 먹는 즐거움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식습관에서도 변화가 포착된다. 특히 칼로리, 카페인, 단백질, 알코올 등의 섭취 총량을 정해놓고 이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양상이 눈에 띈다. 무조건 제한하기보다는 적당히 섭취하되 자신이 정한 상한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다.
먼저, 이왕이면 제로상품을 찾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편의점 GS25의 매출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1월에서 4월까지 탄산음료 상품 매출에서 ‘제로 음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2.3%를 기록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편의점에서 인기 있는 식음료 역시 제로 상품이다. 최근에는 밥알이 들어있는 식혜가 0칼로리로 출시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었는데, 50일 만에 판매량 300만 개를 돌파하며 초기 예측 판매량을 4배나 앞섰다고 한다.
라라스윗의 ‘저당 멜론 아이스크림’과 팔도의 ‘비락식혜 제로’
저당 멜론 아이스크림도 출시 직후 SNS 화제템으로 급부상했는데, 일반 메론바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구현했다는 후기들이 속출하며 제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처럼 음료로 시작된 저당 열풍은 아이스크림, 제과, 주류, 숙취해소제까지 다양하게 확산되며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한편, 디카페인과 무알콜 역시 화제다. 특히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으로 수면장애를 경험하는 고객에게 인기다. 실제로 지난해 디카페인 커피 수입량은 5년 만에 300% 가까이 뛰었는데, 일각에서는 보리를 원두처럼 로스팅해 커피와 비슷한 맛을 내는 대체 커피도 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회식 자리에서도 술이 없어지면서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무알콜 시장이 성장세를 보인다. 하이트진로가 수도권 거주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근 한달 간 구매한 주종을 묻는 항목에서 무알콜․비알콜의 응답률이 21.3%로 칵테일(16%)이나 양주(15.6%)보다 높게 나타나며 부쩍 높아진 인기를 실감케 했다.
술자리 2차, 3차를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도록 유도하는 오사카의 아이스크림 가게 ‘21시아이스’ (출처 : 21시아이스 인스타그램)
특히 무알콜 트렌드는 글로벌하게 포착된다. 일본에선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며 무알콜을 마시며 의도적으로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신조어까지 유행한다. 오사카에선 이자카야가 많은 상권에 2차 3차를 술이 아닌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도록 유도하는 야간 아이스크림 가게 ‘21시 아이스(21時アイス)’가 생겼는데, 일본 2030 세대에게 인기가 많다.
이제는 건강관리도 힙해야 한다
지금껏 진부했던 건강관리가 사회적, 세대적, 기술적 흐름과 맞닿아 새로워지고 있다. 헬시플레저 트렌드가 관련 시장에 주는 시사점은 ‘건강도 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건강관리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이 아니다. 새롭고, 트렌디하고, 하면 할수록 즐거운 것이다. 헬시플레저 트렌드는 소비시장의 주축이 된 2030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나의 거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건강과 지속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건강관리(healthy)가 즐거워져야(pleasure) 한다’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기업도 적극적으로 화답해야 할 때다.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소비자가 구매 시 느끼는 다양한 소비 감정들과 데이터를 통한 소비 행동 분석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삼성・LG 등 다수의 기업과 소비 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 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KBS1 Radio <성공 예감> 고정 출연, KBS <사사건건>, YTN <뉴스라이더>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트렌드 코리아 2024>를 비롯해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등 다수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