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트렌드 분석가
요즘 스마트폰이나 가방, 바지에 캐릭터 인형으로 된 키링이나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들어간 키링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키링, 우리말로 열쇠고리다. 즉 열쇠를 위한 도구가 키링인 셈인데, 요즘 사람들은 열쇠를 쓰지 않는다. 당연히 키링은 사라져야 할 상품이었다. 집 출입문이 디지털 도어락으로 바뀌고, 자동차도 스마트키로 대체되는 시대, 열쇠를 주렁주렁 키링에 달고 다니던 모습은 과거의 기억에만 존재한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열쇠도, 키링도 점점 사라지고 잊혀지는 중이었다.
그러던 키링이 2020년대 들어 부활했다. 열쇠는 사라졌지만 키링은 되살아났다. 이제 키링은 열쇠가 아니라 스마트폰, 가방에 붙어서 존재한다. 열쇠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키링이 열풍이 분 아주 특이한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키링은 문화적 측면, 욕망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
키링 열풍의 중심에 선 Z세대
키링 열풍의 주도자는 Z세대다. 초중고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1020 세대의 키링 사랑이 아주 뜨겁다. 키링을 사려고 오픈런을 하고, 한정품이나 고가의 키링도 인기를 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키링을 산 값의 몇배로 되파는 경우도 있다. Z세대에겐 열쇠는 낯선 도구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까진 보편적 도구였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에선 열쇠도 낯설고, 키링도 당연히 낯설다. 키링 자체가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도구지만, 그들은 소비 한다. 키링이 가진 ‘기능적인 용도’가 아니라, 키링에 달려있는 ‘브랜드’나 ‘캐릭터’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키링 게시물 127.2만개 (출처 : 인스타그램)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나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법이 바로 키링이다. 옷을 다 그 브랜드로 바꾸기엔 비싸지만, 키링 하나만 포인트를 주듯 바꾸는 건 브랜드 소비 측면에선 가성비 높은 선택이다. ‘나도 그 브랜드 가졌어’ 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굿즈만 한 것이 없고, 그 중에서 키링이 머스트잇 아이템인 것이다. 이것이 키링 열풍의 핵심 이유이자, 키링 열풍의 한계기도 하다. 키링 열풍이 3040 세대 이상으로는 번지지 않고, 1020 세대 사이에서만 머무는 것도 적은 돈으로 브랜드를 소유하는 욕망 때문이다. 경제력이 있는 3040 세대는 키링으로 브랜드 소유하는 것으로 욕망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굿즈 열풍으로 보는 키링
키링 유행은 굿즈 열풍의 일환이다. 브랜드, 캐릭터 등을 활용해 만든 소품인 굿즈(Goods)는 원래 조연으로 시작했다. 마케팅을 위한 판촉용 증정품으로 제작하거나, 혹은 브랜드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소품으로 제작되었다.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높여 주력 상품을 팔도록 만드는 것이 원래 굿즈의 주목적이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뜨겁게 불어닥친 굿즈 열풍은 굿즈를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승격시켰다. 사은품이나 증정품으로 주는 굿즈의 경우엔, 굿즈를 가지려고 주력 상품을 사는 역전 현상도 벌어진다. 굿즈 오픈런, 굿즈 리셀이 활발해지고, 열풍처럼 굿즈에 대한 욕망은 번져갔다. 그렇게 명품 브랜드를 비롯 유명 패션 브랜드나 F&B 브랜드, 인기 캐릭터, 아이돌 그룹이나 유명 셀럽들도 앞다투어 굿즈를 만들어 내고 다들 굿즈 열풍의 수혜자가 되었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 키링 (출처 : 글로벌 팬덤 라이프 플랫폼 위버스)
욕망의 측면으로 보면 굿즈 소비는 합리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의 옷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굿즈를 사서 자신이 그 브랜드를 소유한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 사실 명품 브랜드 키링의 경우, 예전부터 해당 브랜드를 값싸게 소유하는 방법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최근엔 패션 명품 브랜드 키링을 너머 다양한 분야로 키링의 인기가 확산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유명 아이돌 그룹, 심지어 스타벅스나 던킨도너츠 같은 F&B 브랜드가 만든 키링 등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다양한 키링을 소비한다. 굿즈 열풍의 새로운 다크호스가 된 것이 바로 키링이다.
키링을 스마트폰과 가방에 달고 다니는 이유?
자신의 스마트폰을 취향대로 꾸미는 ‘폰꾸’라는 트렌드가 있다. 스티커부터 케이스까지 다양한 커스텀을 시도하는데, 여기서도 키링이 등장한다. 갤럭시 Z 플립 이용자들의 ‘폰꾸’ 인증 사진을 보면 각양각색의 키링을 활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Z세대가 키링을 주로 달아 두는 곳은 스마트폰과 가방,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옷은 매일 바꿔 입을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그럴 수 없다. 하나를 사면 1~2년을 쓰고, 그 이상도 쓴다. 그리고 옷처럼 스타일이 다양하지 않다. 같은 폰을 쓰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갤럭시Z플립키링 게시물 (출처 : 인스타그램)
매일 들고 다니기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인 텐데,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욕망이다. 키링이나 폰케이스를 통해 스마트폰에 자신의 개성을 입힌다. 가방도 마찬가지다. 10대에겐 많아 봤자 몇개 정도가 많고, 학교 갈 때 쓰는 가방 하나를 일년내내 계속 드는 경우도 있다. 가방은 바꾸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 브랜드나 인기 캐릭터의 키링을 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가방의 변신, 혹은 취향의 반영이 가능하다. 확실히 키링은 가성비가 높다.
Z세대 중에서도 키링에 별로 관심 없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SNS를 통해 자기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해진 세대에게 트렌드를 동참하려는 욕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트렌드를 거부하며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트렌드를 받아들이되 그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SNS 속 Z세대의 스마트폰과 가방마다 키링이 붙어 있는 이상, 그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더 희소하고, 더 비싼 키링을 욕망하게 되고, 기업들은 키링 마케팅으로 이들을 공략할 수밖에 없다.
고급스러움으로 인기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키링 (출처 : 루이비통 홈페이지)
키링 유행은 처음이 아니야
재밌는 건 키링 열풍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여년 전에도 키링 열풍이 한번 불었다. 20년 당시는 스마트폰이 아닌 핸드폰 자체가 퍼질 때였다. 그때 젊은 세대 역시 자기 핸드폰에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아이템을 달았고, 그중 하나가 키링이었다. 가방에 키링을 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이미 키링의 정체성은 무너진 것이다. 키링이지만 열쇠와 짝이 되는게 아니라 핸드폰과 가방과 짝이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키링이 아닌 폰링 혹은 백링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키링이라고 부르는 건 열쇠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Z세대의 레트로(때론 뉴트로) 욕망에도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엔 실용적인 것만 소비되지 않는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도 소비된다. 분명한 건 키링 열풍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용섭 트렌드 분석가 /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정부기관에서 3,000 회 이상의 강연과 워크숍을 수행했고, 트렌드 전문 유튜브채널 ‘김용섭 INSIGHT’를 운영한다. 저서로 <라이프 트렌드 2024 : OLD MONEY>, <라이프 트렌드 2023 : 과시적 비소비>, <ESG 2.0>,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언컨택트>,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