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_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얼마 전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KT를 쓰다가 SKT로 셋톱박스를 교체하면서 인공지능 스피커도 ‘지니’에서 ‘누구’로 바뀌었는데, 여섯 살 아들이 지니와의 이별을 심히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지니를 보내줘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지인의 아들은 하루 종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지니와의 이별식을 제대로 치렀다고 한다.

최근 세대 담론이 뜨겁다. 세대 연구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는 알파세대다. 알파세대는 2010년생 이후에 태어난 소비자를 일컫는다. 2023년 기준으로 2010년생이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으니, 대략 초등학생 정도를 떠올리면 된다. MZ세대는 자라면서 PC와 스마트폰을 접했다면, 알파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기기를 접한 세대로 아날로그 방식을 경험한 적이 없다. 디지털 퍼스트(Digital-First)가 아니라 디지털이 전부(Digital-Only)라는 뜻이다. 알파세대는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화면을 넘기거나 버튼을 클릭하는 법을 먼저 체득했고, AI 스피커와 대화하고 감정까지 교류하는 테크키즈이다. 기술은 알파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관어다.

달라도 다른 육아와 교육 방식

AI 수학 공부 앱 ‘콴다’ (출처: 콴다 블로그)

알파세대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육아와 교육시장이다. 2022년 유아교육·돌봄 매칭 플랫폼 ‘자란다’가 31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해 화제가 되었다. 자란다는 알파세대를 자녀로 둔 부모와 교사를 연결해준다. 아이는 앱을 통해 연결된 교사와 놀이, 외국어, 수학 등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가입한 교사가 19만 명에 달한다. 알파세대를 겨냥한 에듀테크 서비스도 주목받는다. 2015년 출시된 천재교육의 ‘밀크T’, 2016년 시작된 단비교육의 ‘윙크’와 같은 온라인 학습지가 대표적이다. 이후 기술력으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가세하면서 알파세대를 위한 혁신적 교습 방법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수학 문제 풀이 앱 ‘콴다’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문제 풀이로 글로벌 월 사용자(MAU) 1,300만 명을 확보했다.

알파세대의 놀이터, 메타버스

제페토에서 큰 호응을 얻어 출시한 ‘신라면 제페토 큰사발’ 한정판 (출처: 농심 인스타그램)

알파세대는 놀이방식도 기성세대와 다르다. 로블록스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가 알파세대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익숙할 것이다. 이에 따라 메타버스는 기업들의 마케팅 격전지로 떠올랐는데, 최근 흥미로운 사례는 농심이다. 2022년 10월 농심은 제페토에 ‘신라면 분식점’ 월드를 오픈했다. 이곳에서 소비자는 직접 라면을 조리하고 자신의 레시피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다. 라면 끓이기 대회를 열어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레시피를 실제 신제품으로 출시함으로써 온-오프를 연결했다. 관심사를 기반으로 아이들은 연결해주는 서비스 ‘놀잇’도 알파세대의 놀이방식을 짐작하게 한다. 놀잇은 부모의 개입 없이 오로지 공통 관심사로 매칭된 아이들이 20분간 쌍방향으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서비스로, 최근 스타트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놀이가 벌이로 이어지는 세대

9~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비즈니스 스타터 키트를 발간하는 쇼피파이 (출처: 쇼피파이 홈페이지)

알파세대는 놀이가 벌이로 이어지는 세대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유튜브, 틱톡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직접 돈을 버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SNS에는 이미 상당수의 구독자를 지닌 키드플루언서(Kidfluencers: 아이를 뜻하는 Kid와 Influencer의 합성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설립 및 운영 업무를 지원하는 쇼피파이(Shopify)는 흥미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신의 쇼핑몰을 운영하고 싶은 9~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Business Starter Kit’를 발간하고 있다. 알파세대를 단순히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제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이를 위한 핀테크 서비스의 성장

알파세대가 돈을 벌고 관리하는 주체가 되면서 아이들을 위한 핀테크 서비스 시장도 성장한다. 알파세대를 위한 모바일 직불카드를 발급해주고 지출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스타트업 그린라이트는 2021년 기업가치 3조 원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모니랩과 레몬트리가 10대를 위한 핀테크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알파세대가 금융권의 새로운 마케팅 타깃으로 떠오른 셈이다.

알파세대의 이러한 기술지향적 성향의 이면에는 밀레니얼 부모가 있다. 밀레니얼 부모는 무조건 스마트폰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 또한 디지털에 익숙하기 때문에 알파세대의 부모는 아이의 교육과 놀이에 기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즉,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교육이나 핀테크 서비스의 증가는 알파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수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알파세대가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미 포브스는 알파세대를 겨냥한 육아, 서비스, 앱 경제 규모를 약 55조 원으로 추산하며 ‘새로운 맘 이코노미(The new MoM Economy)’라 명명했다. 한국을 기준으로 알파세대의 부모 세대 인구는 약 300만 명, 시장 규모는 약 10조 원으로 추정된다. 알파세대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 세대보다 역대급 기술력과 문화적 풍요로움 속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라는 세대다. 이들이 바꿔 나갈 시장의 변화는 지금보다 더 클 것이다.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한발 앞서 알파세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쳐야 할 것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석·박사. <더현대서울 인사이트>, <트렌드코리아 2023>, <트렌드코리아 2022>, <트렌드코리아2021>, <트렌드코리아 2020>, <트렌드코리아 2019>, <트렌드코리아 2018>, <트렌드코리아 2017>, <트렌드코리아2016>, <트렌드코리아2015>, <트렌드코리아 2014> 공저자. 서울대에서 소비자 심리의 이해와 소비트렌드분석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삼성·LG·아모레퍼시픽·SK·코웨이·CJ 등 다수의 기업과 소비자 트렌드 발굴 및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인천시 상징물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에 <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칼럼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