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윤_아트 플랫폼 ‘다이브인’ CEO

오프라인 공간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접어들며 움츠러들었던 오프라인 공간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 도쿄에서는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 변화를 통해 국내 리테일 시장의 지형이 어떻게 달라질지 힌트를 얻어 보자.

럭셔리, F&B와 만나다

경제가 어려웠다지만 럭셔리 브랜드들은 오히려 호황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유독 크게 성장했다. 기존 기성세대의 소비도 있었지만, 이에 MZ 세대의 합류가 크게 한몫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제품 구매에 앞서 유니크한 경험을 소비하기를 원하는 MZ 세대의 성향에 맞춰, 가장 접근성이 좋은 F&B 사업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시점에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구매력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의 디올(Dior) 카페를 시작으로, 2021년 오픈한 구찌(Gucci)의 오스테리아가 이러한 형태다. 이러한 시도가 우리나라보다 앞서 활성화된 곳은 도쿄다.

2019년 오픈한 하라주쿠 캣스트리트에 위치한 티파니 매장과 도넛 (출처: 정창윤)

2019년 하라주쿠 캣스트리트에 오픈한 티파니 매장은 스토어 내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쥬얼리 스타일링을 체험할 수 있는 스타일 스튜디오, 구입한 상품에 오리지널 각인을 새길 수 있는 카운터, 최상층에 위치한 티파니 카페 등이다. 쥬얼리가 아니더라도 티파니의 색감을 살린 카페에서 커피와 도넛은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국내외 MZ 세대가 매장을 경험하고 있다.

(좌) 랄프로렌에서 2019년 오픈한 랄프즈 커피 오모테산도점,

(우) 2021년 오픈한 랄프로렌 & 랄프즈 커피 긴자점 (출처: 정창윤)

2019년과 2021년, 랄프 로렌도 랄프즈 커피(Ralph’s Coffee)를 오픈했다. 플래그십 스토어처럼 한 지역에서만 여는 것이 아니라, 카페와 결합한 모델을 여러 지역에 연달아 만들었다. 랄프 로렌만의 엄선된 커피와 디저트, 퀄리티 높은 공간으로 기존 고객, MZ 세대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도 합세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KITH에서 오픈한 아이스크림 디저트 숍 TREATS (출처: 정창윤)

럭셔리나 프리미엄 브랜드뿐만이 아니다. 도쿄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되어 많은 MZ 세대가 찾는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에는, 편집숍으로 유명한 KITH가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F&B 공간을 접목했다. 시중의 소프트아이스크림에 비해 다소 가격이 높지만 많은 사람이 줄지어 사 먹는다. 힙한 직원들의 스타일링과 감각적인 배경 음악 등에서 KITH의 스타일을 온전히 경험해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매장까지 방문하게 된다.

다양한 브랜드가 F&B 사업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카페보다는 레스토랑에 가까운 비즈니스였다. 왜냐하면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준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은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품은 곧 서비스이므로 레스토랑이 좀 더 호스피탈리티를 적용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보다 조금 더 가볍고, 감각적인 공간을 소비하기 원하는 MZ 세대로 인해 그 지형이 달라졌다.

오히려 브랜드들은 반가웠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레스토랑보다는 카페의 투자 비용이 적을뿐더러, 의류나 상품이 놓인 매장에 냄새 등의 이슈가 적기 때문이다. 하여 카페는 더욱 쉽게 숍인숍 형태로 시작될 수 있었다. 심리적인 부담이 줄어든 고객들의 방문도 늘었다. 앞으로 많은 브랜드가 이러한 복합 형태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럭셔리, 전시와 만나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유독 많이 방문하는 곳이 갤러리, 전시장, 공연장과 같은 다양한 문화 시설이다. 적은 비용의 티켓값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수많은 공간과 브랜드가 아티스트와 협업하거나 공간 한쪽에 갤러리, 전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발길을 이끌고 있다.

(출처: 도쿄 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형태가 있으니, 바로 도쿄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디올 전시다. 럭셔리 브랜드 전시는 기존에도 많았다. 하지만 이 전시에는 크게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티켓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과 현지화(Localization)다. 기존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수익성보다는 마케팅, 홍보 차원으로 무료 전시를 열었다. 전시 티켓 비즈니스도 카페 운영처럼, 오뜨 꾸뛰르를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 특유의 무게감과 방향성에 맞지 않게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디올은 파리를 거쳐 작년 12월 도쿄에 ‘Chrisitian Dior: Designer of Dreams’라는 유료 전시회를 오픈했으며, 다양한 지역민과 국내외 관광객이 관람하고 있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대중을 타겟으로 한 비즈니스를 카페(F&B)에 이어 전시로 넓혀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존 제품을 활용하면 값어치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아카이빙과 IP를 활용해 대중이 접근하기 좋은 비즈니스와 결합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카페를 매장에 적용한 형태와 같은 결이라고 볼 수 있다. IP를 활용한 굿즈에서 공간으로까지 확대된 형태다. 앞으로는 이러한 시도는 더 많아질 것이고, 이 콘텐츠를 담을 차별화된 공간의 경쟁이 심화할 것이다.

나무 틀 위에 종이를 붙인 칸막이벽 ‘쇼지’를 모티프로 공간을 연출한 디올 전시 (출처: 정창윤)

디올 전시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특징은 현지화다. 이번 전시는 파리에 이어 도쿄로 넘어왔는데, 도쿄에서 진행하는 전시에는 일본의 전통 주택 구조를 표현해달라는 디올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화려한 기모노, 일본식 정원 등 일본이 가진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지도록 연출됐다. 그러다 보니 지역민들의 더 큰 호응을 얻었고, 한정된 전시 기간은 더 많은 방문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팝업이 너무나 유행하고 있지만, 내막을 보면 팝업으로 매출을 내는 기업은 소수다. 대부분 마케팅이나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투자 대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장기적인 비즈니스 관점에서 트래픽과 데일리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전시, 카페 비즈니스는 앞으로 모든 브랜드에 필수적으로 접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럭셔리 브랜드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창윤

공연·전시·이벤트·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 및 연출을 진행했다. 2015년에는 패션, 화장품, 공간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컨셉 기획을, 이후로는 부동산·리테일 컨설팅 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현재는 아티스트와 MZ세대를 연결하는 몰입형 아트 플랫폼, 다이브인(DIVE IN)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