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영 작가_콘텐츠 미디어산업 전문가 및 트렌드북 작가

실리콘밸리의 전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꾼 것이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뒤인 2022년 10월 27일, 로이터통신은 “가상 세계 ‘메타버스’를 향한 저커버그 CEO의 실험적인 베팅에 월가가 인내심을 잃었다”라는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했고, 다수의 매체 역시 이 문장을 인용해서 기사를 썼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출처: 메타 홈페이지)

일주일이 지나 저커버그는 메타 총 인력의 13%인 1만 1,000명을 해고할 것이라 밝히며 미안한 마음을 전 직원에게 전달했는데, 이 와중에도 저커버그는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메타의 방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장은 이를 메타버스 등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과거 ‘왜 맨날 똑같은 회색 후드티에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만 신고 다니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고민 이외의 결정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던 그의 발언이 멋있어 보였던 건 당시 페이스북이 실리콘밸리의 날아다니던 새도 떨어뜨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메타버스 사업부의 누적 영업적자가 13조 원을 넘어서고 월가의 투자자들이 메타버스와 관련된 투자액을 매년 50억 달러(6조 원)로 삭감시킨 상황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라는 발언이라니, 지극히 ‘저커버그’다운 소신이다.

그럼에도, 메타버스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메타버스가 인류의 삶에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 중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어려워하고, 전문가들조차 그 개념과 속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어 기업과 대중은 혼란스럽다. 필자에게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디지털 가상세계에서 나를 투영하는 아바타로 활동하는 서비스’라는 원론적인 정의가 아닌 ‘디지털 세상에서 소통하고 물건을 사고, 팔고 엔터테이닝하는 가상 세계의 모든 활동에서(‘아바타’라는 객체는 있어도 없어도 무방하다) 점차 인간을 중심으로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자유자재로 융합되는 환경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후자가 2021 년 페이스북이 공개한 LA 공연장에서 한창 음악을 즐기던 친구가 도쿄에 있는 친구를 현실의 공연 장소로 초대하던 현실과 가상이 융합되는 그 환경이다.

이번엔 인류의 삶을 진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에서의 역할을 보자. 메타버스를 통해 학생들은 토성과 금성을 검색 포털이 아닌 바로 눈앞에서 생생히 보며 학습하고, 달 탐사 중인 과학자들을 마주하며 질문을 던지며, 장애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며, 메디컬 트윈에서는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의학 솔루션들이 기적처럼 구현될 것이다.

이렇듯 메타버스가 줄 가능성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진화 속도에 대해서는 입장이 분분하다. 팬데믹이 마무리되며 IT 서비스들은 인간의 외출과 시간 경쟁을 하느라 메타버스 역시 글로벌 플레이어들조차도 사용량이 감소하거나 정체되어 있다. 실제로, B2C 서비스에서 메타버스를 끌어가던 로블록스와 제페토는 10대 중심의 사용량에 머물러 있고, 사용자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이미지 형태를 지적하고 실감형 콘텐츠에도 흥미가 떨어져 간다. 그리고 이보다 더 집중해서 봐야 할 지점은 계속 방문해야 할 목적성이 없다는 의견들이다.

현실에서 재미있는 콘텐츠가 메타버스에서도 재미있다

위 이미지는 널리 알려진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의 기술수용주기를 콘텐츠 수용주기로 변환한 형태다. 현재 ‘이노베이터’와 ‘얼리어답터’ 또는 10대 중심의 게임과 소셜 커뮤니티에 갇힌 B2C 메타버스 사용 집단을 ‘머저러티’ 집단까지 수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킬러가 필요하다. 그것은 콘텐츠도, 서비스도, 또는 독보적인 셀리브리티 집단이 될 수도 있다. 2021년 로블록스에서 글로벌 바이럴을 일으켰던 <오징어게임> IP를 재창작한 무수한 숏폼 콘텐츠들도, 제페토의 스타 크리에이터 ‘이호’가 스톱모션으로 제작한 메타버스 드라마도 귀엽고 흥미롭지만, 사용 집단이 확장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실에서 재미있는 콘텐츠가 메타버스에서도 매력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호주의 한 메타버스 커뮤니티에서 읽자마자 뇌리를 때린 글이다. 지금 메타버스는 스켈업(Scale Up)을 하기 위한 티핑 포인트가 필요하며, 그 킬러는 3D 실감형이나 사용자가 창작하는 콘텐츠여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다. 메타버스가 교육, 쇼핑, 소셜 외에도 의학이나 공간의 이동단축으로 수십조원에 달하는 경제 가치 같은 의미심장한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엔 소비자 접근성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글로벌 메타버스 사업자가 NBC 유니버셜의 슈퍼 IP ‘미니언즈’가 등장하는 ‘슈퍼배드’ 시즌 5에 투자해 콘텐츠를 독점한다고 가정해보자. 오로지 해당 메타버스에서만 볼 수 있고, 콘텐츠를 시청한 사용자는 악당 ‘그루’의 실험실 공간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해내고, NFT로 발행된 수십 종의 미니언즈 캐릭터를 각자의 아바타로 만들어 돌아다닐 수 있다. 이런 올드 미디어와의 컨버전스 역시 메타버스가 대중적으로 성장하는 티핑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0월 ‘메타 커넥트 2022’에서 저커버그는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를 화상 회의로 초대해 양사의 협력 소식을 거창히 발표하고, 두 공룡의 메타버스 인프라와 디바이스 간의 서비스 통합과 전략적 연대를 밝혔다. 메타버스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빅테크 기업 간의 결합만큼이나 콘텐츠 스튜디오들과의 본격적인 연대가 중요하다.

2023년 메타버스 마케팅, 컨버전스에서 출발하라

2023년 메타버스에 진출을 계획 중인 이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올해 교육, 금융, 유통, 커머스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메타버스 스타트업이 생겨났지만, 소비자와 직결된 마케팅 관점으로 좁혀 생각하자. 방송사들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었고 MBN, JTBC도 각자의 방식으로 메타버스를 녹여냈다. 가수들이 모션 캡처 슈트를 입고 3D 아바타가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메타버스 콘텐츠도 있었고, 3D 모델링이 아닌 실제 사람을 아바타로 세운 껍질만 메타버스를 쓴 예능도 있었다. 모두가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활용해 기획형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쏠쏠한 재미는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2023년에는 오히려 올드 미디어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하는 등, 대중적인 절충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컨버전스다.

 (출처: 2023 콘텐츠가 전부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도 SNS와 동영상 플랫폼을 넘어 메타버스로 확장됐다. 10대들의 놀이터였던 제페토에선 메타버스 드라마 크리에이터들이 생겨났고, 편의점 GS25는 웹드라마, 웹예능 트렌드에 올라타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메타버스 드라마 ‘나의 아름다운 세상은’을 선보였다. 메타버스 크리에이터를 20~30대로 확장하는 면에서는 SK텔레콤의 이프랜드도 주목할 만하다. 직장생활, 재테크, 여행 등 직장인 관심거리로 확장된 커뮤니티에 주기적으로 각계 유명연사들을 섭외해 특별 모임을 열기에 사용층 확장에 소소한 역할을 헸고 2023년은 사용층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니즈를 채워주는 메타버스 속속 등장 중

카카오 계열의 퍼피레드M은 제페토나 이프랜드와 달리 애완동물을 기르고, 아기를 돌보며, 요리나 낚시를 하는 등 생활 체험형 콘텐츠가 많아 관련 브랜드들이 체험형 마케팅으로 시도할 연결고리가 많다. 한편, 메타버스에 진입을 준비 중인 크리에이터 및 브랜드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모임을 출발할 필요가 있다. 20~40대라면 글로벌 서비스인 제페토에 비해, 국내로 한정되어 지식 공유나 강연이 많은 이프랜드에서 출발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향후 모임에 최적화된 기능들을 추가하겠다는 이프랜드의 계획만으로도, 2023년 기업이나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것으로 해석된다.

(출처: 퍼피레드M 유튜브 채널)

우리의 삶을 확장하고, 휴머니티를 구현할 새로운 디지털 미래가 오고 있다. 아직 낯선 메타버스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시점이 협업의 포인트다. 기업도, 브랜드도, 개인 크리에이터들도 우호적인 마음으로 서로를 원하고 있다. 기존의 레거시를 더해도 좋다. 주저하지 말고 빠른 속도로 컨버전스를 시도해 보자.


노가영

트렌드북 작가이자 미디어 콘텐츠산업 전문가이다. CJ CGV와 CJ엔터테인먼트(現, CJ ENM)에서 기업생활을 시작했고 KT, SK텔레콤 등 통신기업에서 미디어 전략, 콘텐츠 투자, OTT 사업전략 리더로 성장했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K콘텐츠를 분석하고 이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강연, 컬럼, 유튜브, TV, 라디오 등 다양한 채널을 넘나들며 활동한다. 매년 출간되고 있는 트렌드북 <콘텐츠가 전부다> 시리즈의 대표 저자이다. 최신작으로는 <2023 콘텐츠가 전부다>가 있으며 매월 중앙일보에 노가영의 <요즘 콘텐트 썰>을 기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