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정성수 프로 (디지털플랫폼 6팀)
추운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크립토(가상 자산) 업계 또한 날씨만큼이나 얼어붙고 있다. 한때 엄청난 트렌드가 될 것 같던 NFT, 메타버스, 코인, DeFi 관련 모든 자산이 빠짐없이 폭락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은 무시나 조롱으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 우리가 과소평가했던 것이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던 기억들이 있다. 신용카드는 처음 등장했을 땐 쓰는 사람을 빚쟁이로 만드는 나쁜 수단으로 보였고, 통신 데이터가 부족하고 문자 메시지로도 충분하던 시절엔 스마트폰이 꼭 필요할까 싶었고, 인프라도 부족한데 전기차가 왜 필요한가 했던 기억들 말이다.
크립토 업계는 과거의 이런 기억들처럼,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까? 아니면 이렇게 서서히 잊혀가게 될까?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고 회자되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것 같다.
모든 것의 시작, 탈중앙화
블록체인, NFT, 코인, 디파이 등 이쪽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탈중앙화라는 개념인데, 이는 다양한 관점에 따라 해석될 수 있다. 마치 정의라는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 따라 바라본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433쪽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크립토 업계에서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바라보길래 그렇게 자주 사용하고 기대가 높은 것일까?
먼저 탈중앙화를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좌) 중앙화 (우) 탈중앙화
(출처: 이더리움 창시자인 Vitalik Buterin의 The Meaning of Decentralization)
중앙화는 마치 회사의 조직도처럼, 하나의 점을 기준으로 (예를 들면 대표이사) 단정하게 모여있는 모습이고, 탈중앙화는 중심 없이 제각각 퍼져 있는 모습이다. 정부와 기업, 우리가 사용하는 메신저, 소셜 플랫폼, 스트리밍 서비스 등등 대부분이 중앙화된 시스템이므로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반면, 탈중앙화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한 번에 와닿는 서비스가 없으므로, 중앙화된 시스템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행을 기준으로 단순하게 살펴보면, 은행은 본사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중앙 서버에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으며, 송금 내역 등은 당사자만 볼 수 있고, 개인 인증을 통해 가입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앱이나 웹페이지에 접속하고, 혹시 이를 잊어버리면 고객센터에 연락하여 비밀번호 찾기가 가능하다.
탈중앙화 은행이 있다면 어떨까? 모든 의사결정은 은행 사용자들의 합의를 통해 진행되고, 데이터는 엄청나게 많은 컴퓨터에 분산되어 저장되어 있고, 송금 및 거래 내역은 원한다면 모두가 확인할 수 있으며, 회원가입 없이 익명으로 누구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고, 은행별로 계좌를 따로 만들 필요 없이 자신의 ‘지갑’ 하나로 어떤 은행이든 접속이 가능하지만, 고객센터는 없으므로 혹시 문제가 발생하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장단점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과연 모든 의사결정을 투표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엄청나게 많은 컴퓨터에 분산해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을까? 익명인데 사기꾼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능하다. 구성원들이 합의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고, 안전하게 데이터는 나누어서 보관되며, 사기를 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 이것이 탈중앙화가 가진 강점이자,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블록체인, 탈중앙화에 날개를 달아주다
말 그대로 블록체인 기술을 탈중앙화의 강점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다음과 같은 것들이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하게 되었다.
- 사용자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 해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개인 정보가 보호된다.
- 공인된 제3자가 사라지고 온전한 P2P가 가능하다
- 모든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해킹으로부터 안전하며 개인 정보가 보호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업계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세 번째 항목 온전한 P2P부터 활발하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온전한 P2P에 대해 이야기하면, 만약 은행에서 우리가 해외의 가족에게 송금할 경우, 송금 수수료와 함께 최소 2-3일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중앙화된 은행을 통하기 때문인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해외의 가족에게 송금할 경우, 시간은 5-10분이면 충분하다.
은행의 중계 없이 바로 나와 가족 간에 바로 거래가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단순 은행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중간 역할이 사라지고 P2P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될까? 아직 산업의 여러 분야로 진출하진 못했지만, 대표적으로 DeFi (Decentralized Finance) 라고 불리는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예금, 대출, 환전, 송금 등의 기본적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 과정을 누구나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내가 가족에게 송금한 내역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래처럼 개인의 신원이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히 거래에 대한 내역 확인은 가능하다.
(출처: Etherscan.io)
그렇다면 투명하게 기록되는 특성을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 우선 ‘짝퉁’을 판별하는 데 아주 유리할 것이다. 원산지가 어디이고, 누가 제작하였으며 누가 구매했다가 판매했는지 기록이 모두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의약품의 원산지를 탈중앙화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아티스트의 작품이 위조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부동산의 소유권을 관리하는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확장 선상에서 우리가 자주 듣던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라는 것이 등장한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을 통해 구현 가능하며, 블록체인 상의 화폐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코인’이고, ‘코인’을 사용해 P2P로 바로바로 송금하거나 거래를 할 수 있으며, 누구나 거래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NFT로 부동산이나 아이템 등 자신의 소유권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거래하고, 소유권을 가진 자산을 가꾸어 나가게 되는 공간, 바로 이제는 익숙한 메타버스인 것이다.
탈중앙화의 미래를 기대하며
한편에선 탈중앙화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선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가 파산신청을 하는 등, 크립토 업계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연 탈중앙화 서비스는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지, 후에 기억될 시도들로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으며 우리 일상을 바꿀 혜택을 제시할 수 있다면, 크립토 팬들의 설렘은 계속되지 않을까?
제일기획 정성수 프로 (디지털플랫폼 6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