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_더밀크 코리아 부대표

“이제 나만의 개성적인 아이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6일부터 10일까지 열린 WWCD2022에서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애플의 iOS16을 개인화된 아이폰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사용자는 아이폰의 잠금 화면을 개인 맞춤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디자인과 색상, 심지어 폰트까지 사용자가 자신의 개성에 맞게 재설정할 수 있다. 애플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놀라운 변화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사용자들이 맥의 하드웨어를 튜닝하는 걸 막기 위해서 나사 구멍을 없애려고까지 들었다. 그랬던 애플이 N 개의 개성을 아이폰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시대다. 개성의 시대다. 경험의 시대다. 모든 소비의 트렌드는 더 내밀하게 개인적이고 더 생생하게 경험적인 방향으로 거세게 흐르고 있다. 애플조차 이런 트렌드를 아이폰에 반영한 셈이다. 특히 이미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와 점점 소비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Z세대에게, 소비에서 얻는 개인화된 경험은 삶의 목적에 가깝다. MZ 세대는 직접 살아봐야 하고 정말 먹어봐야 하고 진짜 만나봐야 믿는 세대다. 당연히 그런 트렌드에 적응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여행, 명품만큼 MZ 세대에 중요한 소비 아이템

여행은 개성과 경험의 소비 트렌드가 가장 먼저 반영된 시장이다. 여행만큼 개인화되고 체험화된 콘텐츠도 없다. 내가 가서 내가 보고 내가 먹는 소비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명품만큼이나 MZ 세대 소비자에게 중요한 소비 아이템이 된 이유다. 그동안은 코로나가 문제였다. 지난 3월 21일부로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해외 입국자의 자가 격리 의무가 해제되면서 억눌렸던 잠재 수요가 폭발할 조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여행 수요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뀌는 소비자들의 여행 취향에 맞춰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기업들만이 주목받는 추세다. 그리고 그들 기업엔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애플처럼 여행 상품을 소비자가 직접 설계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이다

여행도 커스터마이징의 시대

커스터마이징 여행 상품은 MZ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여행 상품은 크게 2가지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60% 정도는 항공권과 숙박권 같은 예약 시장, 40% 정도는 현지 볼거리, 식사, 교통과 쇼핑 같은 현지 투어 디자인 시장이다. 기존 여행사들은 항공권과 숙박권 시장에 집중했었다. 이젠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모바일로 예약이 가능하다. 결국 여행 시장의 미래는 현지 투어 디자인 시장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여행 업계의 주요 소비자로 부상하고 있는 MZ 세대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진다.

사용자 맞춤형 여행 상품을 제안하는 여행 서비스 ‘트리플’ (출처: 트리플)

여행 서비스 트리플은 사용자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이용해 사용자 맞춤형 여행 상품을 디자인해 준다. 용어는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여행 일정을 트리플에 공유한다. 트리플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른 사용자들에게 추천 여행 코스를 제공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 스팟, 맛집 등을 취향에 맞춰 추천하면서 개인화된 여행 코스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구현은 어렵다. 빅데이터를 확보해야 하고 개개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추천 알고리즘 고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한 트리플은 700만 명에 육박하는 사용자를 확보했다. 450만 개 여행 일정이 공유됐다.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났다. 이는 사용자가 자기 집 인테리어를 소개하게 유도하고 그걸 이커머스로 연결한 오늘의 집과도 유사하다. MZ 세대는 나의 개성을 중시하는 만큼 나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각자의 인생은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패키지, 항공, 호텔팩까지 소비자의 여행 패턴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는 하나투어 (출처: 하나투어 홈페이지)

하나투어 또한 엔데믹 이후 달라진 소비자들의 여행 패턴을 고려한 상품들을 선보인다. 새로운 여행 트렌드에 맞춰 ‘프라이빗 여행’, ‘여유로운 일정의 여행’, ‘안전한 여행’ 상품을 소개해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여행 상품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원하는 인원끼리 소규모 단독 여행을 계획해 다닐 수 있는 개별 패키지 서비스도 론칭했다. 개인 여행뿐만 아니라 패키지여행에도 취향과 선택을 추가한 셈. 개인 여행보다는 저렴하게 단체보다는 취향에 맞게 진행되는 서비스로, 가격에도 선택지를 추가했다.

또한 국내외 프라이빗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빌리티 스타트업 무브와의 협약으로 소규모 프라이빗 투어를 강화하고, 해외 자유여행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드라이빙 가이드 투어, 가이드 없는 현지 투어, AI/빅데이터 기반 상품 콘텐츠 연계 등 차량과 결합한 다양한 상품을 선보인다. 프라이빗한 차량&기사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욱더 편리한 여행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야놀자 역시 지난 3월 렌터카 플랫폼 캐플릭스에 투자했다. 캐플릭스는 렌터카 공유경제 서비스와 차량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이다. 기존 카셰어링과 달리 전국에 있는 렌터카를 캐플릭스에 편입시키고 알고리즘과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언제 어디서나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항공권과 지상 모빌리티의 실시간 연계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집에서 여행 목적지까지 끊김이 없는 모빌리티 서비스야말로 소비자들이 여행 앱에 기대하는 부분이다. 야놀자는 모빌리티를 통해 맞춤형 여행 시장을 노린다는 계산이다.

‘나눠서 숙박’ 기능을 선보이기 시작한 에어비앤비 (출처: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숙박에서 여행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에어비앤비는 숙박 경험을 다양화시켜서 성공했다. 메리어트 같은 정형화된 글로벌 체인 호텔들이 줄 수 없는 다채로운 숙박 경험을 제공했다. 개성과 체험을 중시하는 MZ 소비자들이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공유 경제에서 숙박, 여행 서비스로 체질을 개선한 에어비앤비는 현지 쿠킹 클래스나 익스트림 스포츠 체험 등을 연결해 주는 익스피어리언스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여행 설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한 도시에서 2개 이상의 숙박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에어비앤비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익스피디아는 아예 대규모 부동산 투자로 호텔 체인들을 인수, 합병해나가고 있다.

카카오와 네이버뿐만 아니라 쿠팡과 마켓컬리 역시 자체 고객들을 위한 맞춤형 여행 콘텐츠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컬리처럼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한 이커머스라면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다. 맞춤형 신선 식품을 제공하듯 맞춤형 신선 여행을 제공하는 식이다. 여기서도 빅데이터에 기반한 추천 알고리즘이 기술적 해자다.

해외에선 과거엔 여행업과 무관했던 기술 기업들도 여행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 또한 나타나고 있다. 레볼루트는 런던의 핀테크 대기업이다. 토스의 벤치마크 모델이다. 레볼루트는 지난 2021년 7월 여행 예약 서비스인 스테이를 론칭했다. 레볼루트의 로드맵은 야놀자와 닮았다. 항공편과 렌터카 등의 예약 패키지 옵션을 추가해 여행에서 발생하는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토털 솔루션 서비스다.

엔데믹이 안정화되며 여행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여행업계에 기회가 오고 있다. 다만 모두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소비자들은 여행 경험을 나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남과 다를 게 없는 경험을 선물하는 건 내 인생에 대한 모독이다. 테크와 콘텐츠를 결합하는 여행의 기술을 가진 여행 서비스들만이 살아남는다.


신기주

더밀크 코리아 부대표. 전 북저널리즘 CCO. 전 <에스콰이어> 편집장. 대중문화와 경제경영 전문 잡지사에서 취재기자로, 연예, 음악, 독서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 시사토크쇼 진행자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콘텐츠를 제작하고 편집하고 전달해왔다. 저서로 《플레이》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우리는 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