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_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MZ 라는 단어로 세대 담론은 절정을 향해가고 있다. 밀레니얼과 Z세대, 이들이 업계를 막론하고 소비시장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부모의 지원 속에 절대적인 빈곤을 모르고 귀하게 자라 자기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MZ 세대. 하지만 단순히 ‘이기적’이라는 단어로 치부해 버리기엔 그들 덕에 소비시장에 불고 있는 선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한 것처럼 마치 자신의 입장에서 좋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최선으로 이기적이려고 하는 생산적인 모습마저 보인다.
소신의 조각들
한국의 세대 담론이 시작된 것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사회의 변화를 부르짖었던 386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 생활을 한 당시의 30대는 보급과 확산이 한창이던 컴퓨터의 CPU에 빗대어 표현될 만큼 시대를 앞서가는 신세대의 아이콘이었다. 사회문제에 뜨겁게 들끓고 힘들게 투쟁하던 젊은피가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MZ 세대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대 의식이나 뜨거움의 온도 차는 다르지만 기술의 격변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확고한 주관과 빠른 실천에 능하며 즐겁고 자주적으로 사회에 동참하는 특징을 보인다. 가치 있는 소비를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비용을 더 지불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미담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퍼 나르는 부지런함으로 무장해 있다.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소소한 습관으로 자리한 윤리 소비의 가치를 발산시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친(親)환경에서 필(必)환경으로, 이제는 필환경을 넘어 절박(切迫)환경으로 환경의 무게감은 더욱 심해졌다.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해 현실과의 괴리가 심해지자 오히려 일상이 더욱더 권태로워지는 것을 경험한 현대인들은 평이한 일상적 콘텐츠를 추구하며 ‘루틴’에 큰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경험적 가치를 중시하는 MZ 세대는 ‘겪어보지 못한 로망‘이나 ‘우상의 완벽한 삶’보다는 자신이 늘 겪는 작은 경험의 조각들에 집중하며 소신 있는 삶을 꾸려가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것을 ‘자의식 과잉’이라 하며 촌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강해져 ‘꾸미지 않아도 멋진’ 일상을 선망한다. 갑질로 점철된 기업의 제품은 보이콧(Boycott)하고, 선행을 베푼 기업의 제품을 바이콧(Buycott)함으로써 개혁을 위한 의지를 표명하는 이들은 귀찮아도 무거워도 개인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라벨 없는 페트병을 선호하는가 하면, 매장으로 유리 용기를 들고 가 천연샴푸와 바디클린져를 직접 덜어 구입해 오는 부지런함을 보인다. 물론 이 과정을 SNS에 인증하는 것은 필수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옛말은 마치 ‘라떼 시리즈’처럼 들린다. 좋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이 있을까. 이들의 인증샷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부터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실천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세련되면서 즐거운 선행
소방관 화재진압복을 업사이클링한 브랜드 119REO 가방 (출처: 119REO 유튜브 채널)
MZ 세대의 즐거운 소신 소비는 개인적으로 자기효능감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복을 업사이클링한 것도 기특한데 ‘소방관 한 명이 책임지는 생명의 수’를 나타내는 1181을 네이밍에 적용해 런칭한 가방 브랜드는 이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방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한다. 음식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리사이클링을 ‘용기내 챌린지’라는 톡톡 튀는 세련된 선행으로 풀어내며 즐겁게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비건을 소비하는 타겟을 위한 10가지 채소를 사용한 오뚜기 10채황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는 MZ 세대가 늘자 식품업계엔 맛있고 몸에도 좋은 비건 푸드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심지어 비건 라면까지 등장한 식품업계에는 닭이 낳지 않은 달걀도 출시되었다. 또 패션업계에는 가죽이나 모피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오히려 반겨지는 기현상도 생겼다. 인조 모피를 넘어 버섯으로 만든 명품브랜드의 옷까지 등장했으며, 다이아몬드 또한 실험실에서 합성한 인공 다이아몬드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기업도 등장했다. 하지만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러한 윤리 소비 품목들을 마냥 환호해 줄 수만은 없다. 위장환경주의를 뜻하는 ‘그린 워싱’, 환경을 고려하는 것이 제품의 프리미엄화를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을 뜻하는 ‘그린 프리미엄’ 등 부정적인 움직임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풍조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을 추구하고, 자기 성찰적인 사회 풍조로 변화하고 있는 이 세상의 중심엔 MZ 세대가 있다. 이들은 부지런히 사는 자신에게서 성취감을 느끼고, 무언가 부조리하다고 느껴지던 것들을 바로잡고 싶은 욕망과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소소한 실천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발전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이를 원동력 삼아 꾸준히 바지런한 삶을 유지한다. 알뜰한 재테크와 내돈내산 지르기라는 양극단적 소비행태를 보이며 짜릿함을 갈구하는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엄청난 다짐을 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즐기며 기꺼이 좋은 일에 동참하는 윤리 소비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향은
CX트렌드와 사용자심리를 연구하는 성신여자대학교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11>부터 <트렌드코리아 2021>까지 총 11권을 공동 집필했다.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어워드 독일 iF Design Award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고객 및 사용자 관점의 DX(Digital Transformation)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강연을 통해 국내외 대기업들의 경영컨설팅과 자문, 혁신 제품 컨셉 개발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