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정_프리랜서 브랜드 기획자&에디터

반지의 제왕, 마블, 유재석. 이들 셋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그들만의 ‘세계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는 별개로 인물, 장소, 이야기를 설정하고, 이는 마치 진짜 세계처럼 작동한다. 과거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세계관’이 이제는 우리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관에만 있지도 않다.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세계관을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캐릭터: 인물과 스토리가 만드는 새로운 세계

시작은 ‘빙그레’였다.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소비자뿐만 아니라 업계에도 큰 화제가 되었다. ‘빙그레가 쏘아 올린 빙그레우스’ 덕분에 많은 기업이 겁내지 않고 과감한 설정을 시도한다. 이후, 브랜드는 세계관을 구성할 때 ‘캐릭터’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스토리를 부여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속 세계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빙그레의 캐릭터 빙그레우스 (출처: 빙그레 인스타그램 @ binggraekorea)

샌드위치 브랜드 ‘써브웨이’는 기존의 자사 캐릭터인 ‘카도’에 ‘썹시티’라는 세계를 만들었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카도가 썹시티에 산다는 설정이다. 이곳에는 굿즈 덕후 ‘수집왕카도’,  ‘넵넵’만 말하는 ‘워커홀릭카도’, 근손실*을 못 참는 ‘운동덕후카도’ 등 총 7가지 카도들이 살고 있다. 어딘가에서 봤을 법한, 혹은 나처럼 느껴지는 카도에 소비자들은 반응했다. 캐릭터 설명이 적힌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각 카도의 캐릭터의 일상을 올리기도 하고, 캐릭터 이름 맞추기 이벤트 등으로 소비자와 카도간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기존의 캐릭터에 ‘썹시티’라는 세계를 만들어 캐릭터에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근손실 : ‘근력 손실’의 줄임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근육이 빠지는 것이 걱정되거나 두려울 때 주로 쓴다.)

로티스 아파트 (출처: 롯데월드 공식 블로그)

이처럼 캐릭터에 신선함을 불어넣어 세계관을 만든 사례는 또 있다. 지난 8월, 롯데월드는 캐릭터 ‘로티’를 주인공으로 한 팝업 스토어를 선보였다. 올해로 32년 차를 맞이한 직장인 로티의 아파트로, 퇴근 후 로티의 일상을 담았다. ‘로티의 아파트’에는 로티가 즐겨 먹는 라면, 맥주, 접시, 책과 같은 소품과 싱크대, 테이블, 소파 등으로 ‘직장인의 방을 구현했다. 롯데월드에서 늘 웃으며 인사하는 로티도 결국 우리와 같은 직장인이라는 관점으로 캐릭터를 재해석하여 그의 이야기를 확장했다. 로티와 함께 커온 2030대는 로티의 아파트를 보며, 직장인의 애환을 함께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디서부터 진짜일까?’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계. 소비자는 이것이 가상 세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현존하는 것 마냥 함께 놀고, 공유하며 캐릭터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들은 오늘도 열심히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협업: 우리가 만들 수 없다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브랜드 스스로 세계관을 만들 수 없다면 어떤 방식을 활용할 수 있을까? 바로 ‘협업’이다. 이미 잘 만들어진 세계관에 자사 브랜드를 등장시킬 수 있다. 11번가는 피식대학의 캐릭터 중 하나인 ‘김갑생할머니김’의 ‘김호창’ 본부장과 협업하여 실제 김을 만들었다. (제조는 지도표 성경김이 했다.) 김호창 본부장의 세계의 소비자들은 실제 김갑생할머니김을 마주한 순간, ‘이게 진짜였다니!’라며 세계관의 현실화에 크게 호응했다.

제페토 속에 구현한 편의점 ‘CU제페토한강공원점’ (출처: BGF리테일)

세계관에 빠트릴 수 없는 것으로는 ‘메타버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제페토’가 있다. 제페토는 오픈 초기 때부터 ‘구찌’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입점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이번에는 편의점 CU가 ‘CU제페토한강공원점’을 오픈했다. 이곳에는 실제 한강시민공원점에서 인기 있는 즉석조리 라면이나 삼각김밥, 곰표 맥주 등을 판매한다. (실제 거래를 하는 형태는 아니다.) 제페토 속 사람들은 CU에서 제품을 선택하고 파라솔이나 루프탑에 앉아 한강의 경치를 보기도 하고, 버스킹도 즐긴다. 제페토라는 세계에 CU가 오픈하면서 ‘세계 속의 세계’가 펼쳐진 셈이다. CU는 오픈 기념으로 제페토의 한강공원 맵에서 ‘삼각김밥’ 찾기 이벤트를 열고, 당첨자에게는 실제 제품을 보내기도 했다. 본래 우리는 한강공원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오히려 ‘CU제페토한강공원점’으로 현실 세계를 가상세계로 확장한 것이다.

협업의 목표는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이다. 제품이나 타깃 확장의 개념에서 이제는 서로의 세계관을 공유한다. 두 개의 세계관이 만나거나(마치 어벤저스처럼), 또는 다른 세계관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마치 11번가가 이호창의 세계관에 들어간 것처럼, 혹은 제페토와 CU가 세계관을 공유한 것처럼 말이다.

‘세계관’은 ‘세계’와 ‘볼 관(觀)’이 합쳐진 단어이다. 직역하자면, ‘세계를 보게 하다’라는 뜻이다. 세계관에서 주체는 브랜드가 아닌 결국 소비자이다. 세계관은 브랜드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소비자가 동참할 때 비로소 ‘세계관’이 완성되는 것이다. 캐릭터 하나로 세계관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관과 비슷한 말은 ‘철학’이기도 하다. 즉, 세계관은 브랜드의 철학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브랜드의 생각을 확장하며 소비자에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세계관을 만들기로 했다면, 방식을 고민하기 전에 ‘브랜드의 철학’을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한다. 본캐가 단단해야 부캐도 살아남을 수 있다. 


구아정

브랜드 컨셉 플래너, 콘텐츠 기획자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브랜드를 실제 소비하는 사람들과 트렌드를 분석하며, 브랜드 컨셉, 스토리 에디팅, 네이밍 등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