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희_AR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위에이알 대표
좋은 콘텐츠 한 개의 성과가 캠페인 열 번의 성과를 넘을 수 있다. 명품 브랜드 구찌가 단 한 개의 AR 콘텐츠로 약 2억 명의 소비자에게 스니커즈 신제품을 알리는 데 성공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이에 질세라 구찌의 경쟁사인 루이비통, 샤넬, 디올 등이 매 시즌마다 AR 콘텐츠를 출시하고 있다. AR 콘텐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건 패션 산업뿐만이 아니다. 쥬얼리, 가전제품, 식음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이 AR 콘텐츠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AR 마케팅이 핫해진 걸까?
퀄리티가 높아진 AR, SNS로 들어오다
구찌의 AR 스니커즈 (좌) / 디올의 AR 메이크업 홍보 영상(우)
AR(Augmented Reality)의 한글 표현은 ‘증강현실’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실제 현실을 디지털로 확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머신 러닝을 기반으로 구동되는 AR 기술은 실시간으로 많은 양의 이미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AR 마케팅이 반짝 주목받았던 5년 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경험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의 스마트폰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해내기에 성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성능이 노트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다. 덕분에 좋은 퀄리티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드웨어 성능뿐만 아니라 AR 기술 자체도 발전해 소비자들이 좋은 퀄리티의 AR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게 됐으며, 비용 문제도 많이 개선됐다. 2015년 처음으로 스냅챗이 AR 서비스를 도입하고 AR 콘텐츠를 제작하는 렌즈 스튜디오(Lens Studio)를 출시하면서, SNS 플랫폼에서의 AR 마케팅이 시작됐다. 2018년에는 페이스북이 AR 기능을 도입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AR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이어서 스냅챗처럼 스파크 AR(Spark AR)이라는 AR 콘텐츠 제작 툴을 출시하여, 더 많은 AR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우리는 SNS 매체에 AR 기능이 도입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설치해둔 소비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AR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타겟팅 광고 기능도 광고 효과를 높이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광고를 활용하면 최적의 타겟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만든 AR 콘텐츠 체험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카일리 코스메틱 인스타그램 AR 필터(좌) / 파페치 인스타그램 AR 필터(우)
SNS에서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AR 콘텐츠는 바이럴 효과를 일으키기 제격이다. 친구가 경험하는 ‘좋은 것, 예쁜 것, 멋진 것, 힙한 것. 그거 나도 좀 해보자’는 SNS 심리가 ‘AR 경험 욕구’를 자극한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AR 콘텐츠를 사용하면 바이럴에 더욱 불을 지핀다. 덕분에 브랜드는 가만히 앉아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브랜드 콘텐츠를 퍼 나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구찌의 AR 스니커즈가 약 2억 명에게 전파된 것도, 카일리 제너(Kylie Jenner)의 나비 필터가 전 세계 인스타그램 유저들에게 노출된 것도 모두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공유 덕분이다.
디올 인스타그램 AR 필터(좌)와 캠페인 메인 비주얼(우)
AR 콘텐츠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소비자에게 확장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콘텐츠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잠깐의 AR 콘텐츠 사용만으로도 사진, 영상을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브랜드 인식 효과를 가져다준다. 디올(Dior)은 AR 콘텐츠를 통해 새로 나온 선글라스를 착용함과 동시에, 소비자가 직접 캠페인의 비주얼이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게다가 화면을 터치하면 선글라스가 바뀌며 재밌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러한 브랜드 체험은 곧 소비자의 ‘공유’를 유발하여, 인스타그램에서 미친 듯이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AR 글래스가 만들 AR 마케팅의 미래
CES 2020에서 소개한 삼성의 AR 피트니스(좌) / 페이스북의 프로젝트 아리아(우)
AR 마케팅의 미래는 스마트폰에 갇혀 있지 않다. 진짜 AR 마케팅은 AR 글래스와 함께 시작될 것이다. 2~3년 전부터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공격적으로 AR 글래스를 출시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삼성은 2020년 CES에서 AR 글래스를 활용한 피트니스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AR 글래스의 컨셉 영상까지 유출되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전 세계에 흩어져있던 AR 관련 전문 직원들을 한곳에 불러모아 리얼리티 랩(Reality Lab)을 꾸렸다. 그리고 프로젝트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올해 AR 글래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참고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한술 더 떠 AR 글래스가 VR 기기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네이버랩스가 제작한 판교 현대백화점의 실내 AR 내비게이션 (출처: 네이버랩스 블로그)
AR 글래스가 가장 크게 변화시킬 마케팅 채널은 ‘오프라인’이다. 지난해 네이버랩스가 공개한 AR 내비게이션 영상을 보면, 각 매장을 지나갈 때마다 쿠폰이 등장하거나 판매 중인 제품을 홍보하는 가상 콘텐츠가 떠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AR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효용성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AR 글래스에 적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안경만 쓰면 복잡한 백화점에서도 쉽게 길을 찾아갈 수 있고, 실시간으로 온갖 가상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조만간 AR 글래스를 착용하고 나이키 매장에 들어가면, 가상의 마이클 조던이 다가와 운동화를 추천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직 스마트폰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AR 콘텐츠가 브랜드에 굉장히 매력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 ‘언택트’ 니즈가 커지며, 소비자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AR 글래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을 활용한 AR 마케팅이 새로운 마케팅 산업의 한 축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찬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 SNS 플랫폼에서 사용 가능한 AR 콘텐츠 스튜디오 위에이알을 2020년에 설립해 운영 중이다. 50여개 이상의 국내외 브랜드와 협력했으며, 플랫폼을 벗어나 더 넓은 AR 콘텐츠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웹AR 솔루션을 개발하고, 메타버스 커머스를 향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