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커피 시장은 빠르게 진화했다. 동네마다 커피전문점이 빼곡히 자리하게 됐고, 집에서 원두를 내려 먹는 홈카페 문화도 발달했다. 믹스커피는 물론 캡슐, 드립백, 액상까지 다양한 형태로 출시된 제품들은 다채로운 커피 라이프를 선사한다.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제 커피는 단순히 미각적 만족을 주는 기호식품을 넘어 삶의 중요한 일부이자 하나의 문화가 됐다.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를 맞은 커피 시장. 커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커피를 대하는 소비자의 기준은 높아져 갔다. 기존 제품만으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카누는 고급화되고 있는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 트렌드를 반영한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였다. 이름하여 카누 시그니처.
프리미엄 라인으로 출시된 만큼 소비자들이 선망할 만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이 시대의 프리미엄에 대한 가치를 재해석하고 그것을 제품에 결합시킨 카누 시그니처만의 프리미엄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신규 메시지 개발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제품의 제형을 나타내는 단어 ‘인스턴트’는 근본적으로 ‘프리미엄’이라는 단어와 결합하기에는 꽤 간극이 있었다. 바리스타가 정성스레 드립하는 원두커피와 달리 뜯어서 붓기만 하면 되는 제품. 보통의 소비자 입장에서 이 두 단어의 조합은 확실히 낯설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이미 그 속에 답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카누라는 브랜드는 이미 해결의 실마리를 갖고 있었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왜 카누는 신제품마저 하필이면 인스턴트일까? 물론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하는 데 캡슐이나 드립백을 구현할 기술이 없어서, 아니면 커피숍으로 확장할 자본이 없어서 그러진 않았을 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라는 카누의 슬로건에는 사실 동서식품이 지난 50년간 커피 불모지 대한민국에 커피를 보급하고 산업을 키워나가면서, 커피라는 존재를 바라보고 생각했던 그 어떤 철학과 신념 같은 것이 집약돼 있다. “커피는 누구에게나 가장 쉬워야만 한다.”, “커피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만 한다”,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맛과 향은 최고여야만 한다”는 기업의 사명 같은 것이랄까?
제일러들이 바라본 카누의 가치에는 단순히 ‘카페 커피의 대안’을 넘어선 더 중대한 개념이 기저에 존재했다. 그것이 10년간 카누가 국민 커피 브랜드로서 사랑받아온 비결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카누 시그니처의 제형인 ‘인스턴트’는 분명히 더 조명받을 가치가 있었다. 우리는 카누 시그니처를 더 이상 숍커피를 표방하는 ‘대안 제품’이 아닌, 인스턴트임에도 숍커피를 대체할 만큼 수준 있는 ‘온전한 한 잔의 커피’로 포지셔닝해 보고자 했다.
스틱 커피 형태로도 퀄리티 커피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좋은 커피 한 잔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곧 이 시대의 프리미엄이니까.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스턴트 커피로서 그 가치를 끊임없이 재조명하고 강조하는 것뿐이었다. 인스턴트 프리미엄에 대한 작위적 재해석이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인스턴트 그 자체를 더 강점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에 따라 ‘스틱’과 ‘커피 파우더’라는 인스턴트 제품의 속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웅장한 비주얼로 시각화했다.
TV 광고는 제품 패키지를 보여 주며 시작한다. 보물 상자를 열듯 열쇠를 돌리면, 커피 스틱이 등장한다. 스틱이 화려한 모션 그래픽으로 보여진 후, 이어서 펼쳐진 휘황찬란한 금빛 커피 세계 속에 모델이 벅찬 표정으로 서 있다. 카누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보여 주지 않았던 인스턴트 커피의 상징을 오히려 전면에 당당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얼마나 카누다운 발상인가!
이어서 등장하는 “이 한 잔에, 커피가 지닐 수 있는 모든 가치를 담아”라는 카피는 최고의 맛과 향을 지닌 커피라는 의미뿐 아니라, 지난 50년간 커피 라이프 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했던, 스틱형 커피가 쌓아온 역사와 가치를 은연중에 함의하는 브랜드의 울림 있는 목소리이다.
카누 시그니처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두커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퀄리티’이다. 실제 소비자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전문 숍브랜드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정도로 제품력은 자신 있었다. 심지어 <맥심 리스테이지>라는 사내 행사에서 임직원에게 개발 초기의 시제품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모두가 원두커피인줄로만 알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일화도 있다. 커피 전문 기업 동서식품의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의 맛과 향이라니! 가히 ‘시그니처’라는 이름이 붙을 만하다.
하지만 원두커피와 대등한 품질을 구현하려다 보니 일반 카누 대비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구매 동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카누 시그니처가 더 맛있고 향이 좋은 이유를 소비자에게 납득시키기에 그 내용은 지나치게 어려웠다.
품질의 근간은 ‘향 보존 동결 기술’, ‘저수율 추출’, ‘시그니처 블렌딩’ 이 세 가지 공법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 용어들만 봐도 제조 공정에 대한 이공계적 관점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가? 커피 스틱 하나 구매하기 위해 제품의 테크놀로지를 귀담아듣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손꼽히는 인스턴트 커피 마니아거나 업계 종사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역시 정공법을 택했다. 구구절절한 설명 외에 제품의 특징을 전달할 방법이 도저히 없다면, 구구절절하게 주입시킬 수밖에! 매체별로 광고의 목적을 달리하는 전략을 택했다. 광고 집중도가 높지 않은 TV 매체에서는 철저하게 인스턴트 커피에 프리미엄 이미지만 부여하고자 했고, 집중도가 높은 디지털 매체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어려운 이야기도 귀담아듣도록 만드는 솔루션은 소비자의 미디어 이용 행태에 있다. 텍스트는 세 줄만 돼도 어려워하지만, 5분짜리 유튜브 영상은 쏙쏙 이해하는 영상 미디어 시대가 아닌가!
세 편의 카누 시그니처 언박싱 영상에서는 카누 바리스타에서 카누 시그니처 BJ로 변신한 모델 공유가 제품의 종류, 맛과 향, 패키지 디자인, 핵심 공법, 용량과 음용법 등 우리가 소비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든 내 용을 쉽고도 디테일하게 설명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형태를 차용한 것은 이 시대의 소비자에게 제품을 학습시키기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카누의 프리미엄 제품인 시그니처는 자랑하고자 하는 요소가 많았던 만큼 회의가 거듭될수록 유효한 전략인지, 집중해야 할 메시지가 맞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기획 과정에서도 제품을 끝까지 신뢰하고, 제품이 가진 태생적 한계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시각을 견지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집에서 좋은 커피를 쉽고 편하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로 카누 시그니처를 떠올리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번 캠페인은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는 자기 만족으로 캠페인을 재해석하며 글을 마친다.
▲ 카누 시그니처 TV 광고 본편
▲ 카누 시그니처 언박싱 ‘공법’ 편
제일기획 박준형 프로 (The SOUTH 3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