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윤 트렌드 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워킨백’, 이보다 요즘 소비 트렌드를 더 잘 나타내는 단어가 있을까? 워킨백은 대중적인 쇼핑 채널을 상징하는 ‘월마트’와 초고가 명품을 상징하는 ‘버킨백’이 더해진 신조어로, 최근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10만원대 가방이 버킨백의 스타일을 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워킨백은 대표적인 ‘듀프(dupe)’ 아이템이다. 듀프란, 복제품이라는 의미의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을 줄인 말인데 기존의 명품 위조품과는 달리, 외형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은 아니지만 스타일이나 재질, 기능 면에서 고가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대체재를 의미한다. 미국의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고가 브랜드 대신 가성비 높은 대체품을 선택하는 듀프 소비 열풍이 일고 있다.

인기 가방 브랜드 포터의 숄더백 탱커 (출처: 요시다 가방 홈페이지)

포터와 비슷하면서 20분의 1가격으로 저렴해 인기를 얻은 유니클로 멀티 포켓 숄더백 (출처: 유니클로)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저렴이’ 열풍
듀프 열풍은 전 세계적이다. 국내에서는 ‘포터맛’ 유니클로 가방(포터는 인기 가방 브랜드), ‘샤넬맛’ 다이소 화장품처럼 ‘맛’이라는 표현이나 ‘저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제네릭 소비’가 나타난다. 특허 기간이 만료된 신약의 성분이나 효능을 동등하게 하되 가격을 낮춘 복제 의약품을 가리키는 ‘제네릭(generic)’을 더하여 ‘제네릭 화장품’, ‘제네릭 향수’, ‘제네릭 잡화’ 등과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제품만 아니라 값비싼 레스토랑의 맛을 내는 요리법을 ‘제네릭 요리’라고 부르는 등 제네릭은 가성비 소비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

중국에서 룰루레몬의 저렴이 버전으로 인기인 MAIA ACTIVE (출처: MAIA ACTIVE 인스타그램)
중국에서는 ‘핑티 소비’라 불린다. 핑티는 핑자티다이(平價替代), “싼 가격으로 대체한다”를 줄인 말인데 기존 유명 브랜드를 대체하는 중국 국내 가성비 브랜드가 주로 소개된다. 예를 들어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 대신 중국 브랜드인 ‘MAIA ACTIVE’가 나오는 식이다. 핑티 소비 역시 단순 외형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고가 브랜드와 제조 공장이나 원단이 같다는 것을 강조하며 ‘브랜드 값’을 지운 것을 강조한다.
저렴이에 가치를 부여한 MZ 세대
이처럼 전 세계적인 가성비 추구 현상은 위축된 경제 상황과 관련이 깊다. 트렌드는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어떤 트렌드는 일 방향으로 진화한다. 집단주의에서 개인화로, 초개인화로 나아가는 트렌드가 대표적이다. 반면 어떤 트렌드는 주기적인 패턴을 보인다. 경기가 나빠지면 지금과 같은 가성비 트렌드가, 상황이 나아지면 ‘플렉스(flex)’처럼 프리미엄 관련 트렌드가 대두되는 것이 그렇다. 듀프 소비 역시 불황기마다 나타나는 가성비 추구 현상의 변형된 형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소비자들이 듀프를 대하는 태도다. 워킨백이란 별칭은 ‘버킨백의 짝퉁’이라는 조롱의 뉘앙스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쏠쏠한 쇼핑 정보로서 듀프 아이템을 공유하며 심지어 자랑하기도 한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에서 MZ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듀프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드러난다. 응답자의 60%가 ‘원제품을 살 여유가 있어도 듀프를 사겠다’고 답했으며 51%는 ‘듀프를 찾으면 짜릿하다’고 답했다. 마치 게임을 하듯, 누가 더 뛰어난 듀프를 발굴하는지 소비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과거 ‘짝퉁’을 구매할 때 위조품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던 것과는 대비된다.
불황기의 일시적인 유행만은 아니다
이를 확장하자면 듀프 소비는 젊은 세대의 소비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일명 ‘미투제품’이라고 불렸던 저렴이 화장품, ‘차이슨(차이나+다이슨, 다이슨과 비슷한 디자인과 기능의 중국 제품)’과 같은 전자제품이 존재했지만 현재의 듀프는 유명한 몇 개 제품만이 아니라 모든 소비 영역으로 확장된다. 소비자들은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듀프를 찾아 제한된 예산 내에서 소비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한다. 고가 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아니며, 값비싼 브랜드 제품이라 해서 넘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브랜드 이름에 좌지우지되기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자신의 니즈를 충족할 뿐이다.

명품 브랜드의 고가 제품과 비교해 인기를 끄는 인풀루언서 콘텐츠 (출처 : 유튜브 오비르 Ouvir)
따라서 듀프 소비 현상을 일시적인 열풍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국내 화장품 시장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품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제품 선택이 유명 브랜드 중심에서 성분 중심으로 이동했다. 양질의 듀프 소비경험이 쌓인다면 소비자들의 제품 분별력이 높아지면서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e.l.f. 뷰티’, 중국에서는 ‘cotti 커피’처럼 듀프 소비에 힘입어 급속히 성장하는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가성비냐? 프리미엄이냐? 어느 쪽이든 확실히
듀프의 조류에 휩쓸려 휘청이지 않도록 브랜드 입장에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브랜드라면 이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000만큼이나 값어치 있다’는 것을 알릴 좋은 기회다. 주의할 것은 듀프의 핵심 속성이 ‘가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숙한 소비자들은 무조건 저렴하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딱 가격만큼이라 결국 제 돈 주고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샀다’는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중 성능을 놓쳐서는 안 된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브랜드라면 소비자들이 ‘역시 이런 게 다르구나’라고 느끼도록 브랜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실제로 KOTRA 해외시장 뉴스에 따르면 중국의 SNS 샤오홍슈에서는 ‘대체 불가 아이템’이라는 키워드가 급상승 중이라 한다. 단지 이름값 때문에 비싼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할 수 있다면 오히려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들 기회이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질수록 브랜드는 치열해져야 한다.
권정윤 트렌드 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학·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9>, <트렌드 코리아 2020>, <트렌드 코리아 2021>, <트렌드 코리아 2022>, <트렌드 코리아 2023>, <트렌드 코리아 2024>, <트렌드 코리아 2025>,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2>, <스물하나, 서른아홉> 집필에 참여했다. 전자·식품·뷰티·통신·유통·여가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과 소비트렌드 도출 작업을 함께 해왔으며 이외에도 강의, 방송, 기고,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비자와 시장을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