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트렌드코리아 공저자

1020세대, 3040세대, 5060세대 중 샐러드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은 누구일까? 정답은 1020세대다. 흔히 10대와 20대는 마라탕과 탕후루만 먹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지만 이들은 건강 관리에 진심이다.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1020세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샐러드 전문점과 헬스장을 가장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미디어 ‘어피티’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는 더욱 흥미롭다. 응답자의 78.3%가 서른 살 이전부터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고 응답했는데, 이 중 20대가 되기 전부터 먹었다는 사람도 11%에 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입학식 등에 등장하는 부모의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출산적정연령이라는 개념이 옅어지면서 육아의 현장에 다양한 연령대가 뒤섞이고 있다. 이제 자녀의 나이만으로 부모의 연령대를 예측하기 힘든 시대다.

‘옴니보어(omnivore)’란 사전적으로는 잡식성(雜食性)이라는 의미이지만, 파생적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어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만의 소비 스타일을 가진 소비자를 옴니보어라고 한다. 옴니보어들은 기존의 인구학적 기준으로 분류된 집단의 특성이나 사회에서 정해둔 고정관념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관심에 따라 차별화된 소비의 모습을 보인다.

키즈카페는 누가 방문할까? 예상하듯 키즈카페의 방문 연령대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신한카드 빅데이터를 통해 키즈카페를 이용한 사람들의 연령대 비중을 살펴보면, 2024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2년 동안 20대, 30대는 각각 1.7%, 6.7% 줄어든 반면, 40대와 50~60대는 각각 6.9%,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50대와 60대는 아이를 늦게 낳은 부모뿐만 아니라 일찍 손주를 본 조부모의 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육아의 주체를 특정 나이대로 좁힐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도 바뀌고 있다. 출생률이 점점 낮아지면서 대학들은 새로운 돌파구로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퇴직 후에 배움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2023년 기준 고령인구의 비율이 22.6%로 고령화에 직면한 부산에 위치해 있는 영산대학교는 시니어층의 수요를 반영하여 시니어모델학과를 열기로 했다. 단기 프로그램이 아닌 4년제 최초로 개설된 학사과정으로 모델이 되기 위한 실습 교육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같은 교양 수업도 포함한다.

이러한 경향성을 반영해 2023년 12월, 어린이들을 위한 직업 체험 테마파크로 잘 알려진 ‘키자니아’는 어른들만을 위한 직업 체험 행사 ‘키즈(kid)아니야’를 마련해 어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오후 시간대에 400명 한정으로 티켓을 오픈하였는데 빠르게 매진된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가게 오전에도 열어달라”는 학부모의 요청까지 생겨났다.  키자니아 측은 인기에 힘입어 2024년 4월과 6월 ‘키즈아니야’ 시즌2, 시즌3을 운영했다. 이미 다 이뤘을 것 같은 성인들도 직업 체험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성별에도 옴니보어 트렌드가 침투하고 있다. 흔히 스포츠 팬은 남성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프로야구 1000만 관중의 시대를 이끈 건 여성 관객이다. 대한민국 프로야구리그(KBO)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프로야구 티켓 구매자 중 54.4%이 여성이었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3.7%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야구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 4대 스포츠(프로축구·야구·배구·농구)의 팬 성별 비중을 조사한 결과, 여성이 더 많았다.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즐기는 여성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동호인 축구 여성 선수는 2019년 말 3,190명에서 2024년 4월 기준 3,855명으로 20% 증가했다.

성(性)역이 없어지는 현상은 패션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몇 년 전부터 ‘젠더플루이드’ 혹은 ‘젠더리스’ 패션이 떠오르면서 남성 연예인이 흔히 여성용이라 생각하는 스커트, 꽃무늬 제품, 클러치 등 소품을 착용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운동의 인기에 힘입어 여성들 사이에서 ‘블록코어’ 스타일이 사랑받으며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성정체성이 고정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변하는 경향)를 강화하는 추세다. 패션 회사들도 성별의 경계를 없애고 있다. 예를 들어 브랜드 ‘던스트(DUNST)’는 품목에서 ‘남성 자켓’, ‘여성 셔츠’ 등 성별 구분을 지우고 그 대신 XS, S, M, L, XL 등 사이즈를 구분한다. 브랜드측에 따르면 오버핏을 원하는 여성은 라지(L) 사이즈를, 슬림핏을 원하는 남성은 스몰(S)이나 미디엄(M) 사이즈를 입게 되면서 성별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설명이다.

옴니보어 트렌드가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소비자를 분류해 왔던 세그먼트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시장을 분석할 때 연령·성별·직업·거주지역 · 교육 수준 · 소득 등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타깃 소비자 집단을 좁혀나가는 것을 시장세분화(segmentation)라 하고, 그 결과 분류된 각 집단을 세그먼트(segment)라고 부른다. 시장세분화 작업을 중시해 온 이유는 세그먼트에 따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가치관·취향 등이 비슷하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옴니보어 시대에 각자의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되면서 집단의 차이는 줄어들고 개인의 차이는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옴니보어의 시대에 세그멘테이션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신혼살림에 적합한 냉장고를 마케팅한다고 가정해 보자. 예전 같으면 혼수를 장만할 확률이 가장 높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 세그먼트를 타겟팅하고, 이 연령대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을 선정해,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채널에 광고를 집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품과 상품의 주요 고객층, 주요 고객층이 이용하는 광고 및 판매 채널이 고리처럼 엮여 있던 안정된 시장의 접근법이다.

옴니보어 시대의 잠재 고객은 인구학적 세그먼트로 쉽게 정의되지 않으며 특정 채널로만 한정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 가치 · 취향 · 기분 · 상황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활용해 소비자를 면밀히 정의해야 한다. 혼수로 냉장고를 장만할 소비자를 찾으려면, 연령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 지표가 필요하다.

예컨대 청첩장을 주문한 사람, 결혼 준비 커뮤니티에 새로 가입한 사람, 입주 이사를 알아보는 사람 등의 기준으로 타깃을 ‘추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인구학적 기준의 세그먼트 대신 소비자가 남긴 흔적을 통해 타깃을 찾아가는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소비자는 더 이상 전형적이지 않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식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최지혜 트렌드코리아 공저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ssss 석·박사. <더현대서울 인사이트>, <트렌드코리아 2025> <트렌드코리아 2024> <트렌드코리아 2023>, <트렌드코리아 2022>, <트렌드코리아2021>, <트렌드코리아 2020>, <트렌드코리아 2019>, <트렌드코리아 2018>, <트렌드코리아 2017>, <트렌드코리아2016>, <트렌드코리아2015>, <트렌드코리아 2014> 공저자. 서울대에서 소비자 심리의 이해와 소비트렌드분석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삼성·LG·아모레퍼시픽·SK·코웨이·CJ 등 다수의 기업과 소비자 트렌드 발굴 및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인천시 상징물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에 <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칼럼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