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트렌드 분석가 /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욕망은 새로운 소비를 부르고, 경제를 키운다. 2025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욕망이 바로 Quiet & Silent, 즉 ‘조용함’이다. 그동안 조용함은 존재감이 크지 않던 욕망이었다. 조용한(내성적)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리했고, 세상은 시끄럽고 요란했다. 우리의 소비와 경제는 화려함과 요란함, 과시와 외향성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바뀌었다. 욕망의 반작용 때문이다. 조용함(Quiet & Silent)이란 트렌드가 당신을 둘러싸고 확대될 2025년, 우리 눈앞에 어떤 변화가 펼쳐질지 살펴보자.
생활 곳곳으로 번져가는 Quiet & Silent
수년간 ‘올드 머니(Old Money)’가 글로벌 트렌드로 부각되며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부(富)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로 부를 조용히 숨기려 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티 내는 부, 소위 돈 자랑이 멋없어진 시대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 즉 문화적 취향이나 지적 수준이 더 자랑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에선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조용한 해고(Quiet Cutting), 조용한 고용(Quiet Hiring)에 이어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ing)로도 번지며 조직이 아닌 개인이 훨씬 더 우선되는 직장관을 드러내고 있다. 수년 전부터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느슨한 연대(Weak Ties)’ 역시 관계와 인맥에서의 조용함으로 드러난다. 회식만 퇴조한 게 아니라, 동창회나 각종 모임도 줄어들었다. 인맥을 버리고 혼술, 혼밥, 혼여행 등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른바 자발적 고립주의자도 급증했다.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내면에 집중하겠다는 사람들이다.
패키지 여행도 나홀로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하나투어 밍글링투어
이런 사람들의 여행 욕망에서 조용한 여행(Silent Travel)이 확산된다. 이런 추세 속에서 단체 여행은 감소하고 솔로 여행은 급증한다. 스텔스 캠핑(Stealth Camping), 스텔스 차박 등이 대두되며 조용한 여행의 테마는 확산 중이다. 스텔스 차박은 자동차 캠핑을 가서 누가 온 지도 모르게 차 안에서만 조용히 있다가 돌아오는 캠핑을 말한다. 심지어 소통하는 공간의 대표 격인 카페 중에도 침묵을 내세우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신촌에 있는 ‘카페 침묵’에선 대화가 금지다. 그렇다고 독서실처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다. 노트북 자판을 치든 부스럭거리든 상관없다. 말 그대로 ‘대화’만 금지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대신하며 조용함을 찾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대화 금지 카페 ‘카페 침묵’ (출처 : 카페 침묵 인스타그램)
조용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명상 역시 2030 세대에게 인기이며, 이와 연관되어 사운드 배스(Sound Bath), 사운드 테라피 등 청각적 힐링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여기서 사운드 배스란 실제로 목욕하는 것이 아닌 소리로 몸을 씻는다는 뜻으로, 편안한 자세로 힐링이 되는 사운드를 듣는 서비스를 말한다. 일상에서 청각적 안정감을 찾다 보니 가전제품에서도 조용한 가전이 더 비싸도 선택받는다. 일상의 소음이나 과잉관계가 주는 소음은 스트레스가 되고, 이는 수면 장애로도 이어진다. 한국에서 수면 장애 환자가 수년 전부터 가파른 속도로 증가해왔는데, 고급 침대 시장과 슬립테크(Sleep Tech) 시장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결핍이자 욕망은 돈을 부른다. 이밖에 걸으면서 사색하는 조용한 걷기(Silent Walking), 음소거 챌린지 등 조용함을 추구하는 트렌드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나의 영역이 아닌 수많은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욕망은 메가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 조용함(Quiet & Silent)이 바로 그렇다. 조용함이 소비가 되고, 돈이 되는 시대를 당신은 앞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내향성 경제(Introvert Economy)가 대세다
인류는 수천년간 외향성 경제였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흥정하고 거래하고 경제를 키워갔다. 하지만 이젠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된 지금, 온라인 쇼핑 매출은 매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 사람과 관계도 흥정도 불필요해졌다. 이제 원격근무, 재택근무는 낯설지 않으며, 출근과 재택이 어우러진 하이브리드 워크는 근무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유명 연예인들 중에선 내향적인 사람들이 예전부터 많았다. 조직으로 일하지 않기에 자신만의 능력이자 콘텐츠가 있으면 성향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데 이젠 기업에서도 내향적인 사람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평가도 투명해지고 보상도 능력 중심으로 변해가다 보니, 성향이나 사교력이 아닌 업무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회식도 사라지는 시대, 사내 정치도 점점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 젊은 남녀가 새롭게 만나는 경로는 소셜 네트워크와 데이팅 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시대가 되니 조용하고, 낯가림도 하고 소극적인 내향적인 사람들도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불리할 게 없어졌다.
식당에 가기보다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일이 많아졌고, 회식하거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 노는 것이 확산되었다. 성인 음주율은 계속 하락세이고, 주류업계 유흥업계는 생존을 위한 변화가 시급해졌다. 밖에서 하는 사회 활동이나 모임, 야외 활동이 줄어드는 반면, 집 안에서 하는 콘텐츠 소비는 늘어났다. SNS도 OTT도, 온라인 게임도 시장은 커지고 있고, 사람과 어울리는 관계 대신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로봇에 대한 수요와 지출은 더 많아진다. 자기 관리, 안티에이징 등 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영역에서 내향성 소비의 특성이 반영되는 이슈가 계속 등장하고 새로운 유행으로 이어진다.
지는 시장과 뜨는 시장, 지는 소비 트렌드와 뜨는 소비 트렌드를 볼 때, 공교롭게도 외향성 소비와 내향성 소비로 구분해서 보면 많은 것들이 설명이 된다. 어울려 놀지 않으면 안 되던 시대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시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집단주의가 퇴조하고 개인주의가 대세가 된 시대다. 이를 일컬어 ‘내향성 경제(Introvert Economy)’라고 한다. 마케팅의 방향성에서 내향성 소비자, 내향성 경제를 중심으로 재설정이 필요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산업사회와 달리 지식정보사회에선 내향적인 사람들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조용함(Quiet & Silent)이란 트렌드는 메가 트렌드다. 2025년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용함이 새로운 욕망이 되고, 새로운 소비가 되고, 새로운 경제가 된 시대, 이제 당신도 조용함이 만드는 변화와 기회에 눈 뜰 때다.
김용선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정부기관에서 3000 회 이상의 강연과 워크숍을 수행했고, 트렌드 전문 유튜브채널 ‘김용섭 INSIGHT’를 운영한다. 저서로 『라이프 트렌드 2025 : 조용한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24 : OLD MONEY』,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언컨택트』,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