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전 이게 필요했어요. 제 삶을 바꿀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랬어요(I need this, this looks like it’ll change my life. and it completely did).”

미국의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어느 인터뷰에서 ‘스탠리(Stanley) 텀블러’를 소개하며 언급한 말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스탠리 텀블러 열풍이 올해 초까지 이어지며 꾸준한 사랑을 얻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SNS에서는 많은 셀럽들이 드디어 이 멋진 텀블러를 구했다며 기쁨을 표현하는 게시물들이 돋보인다.

인플루언서들의 인증으로 큰 인기를 끈 스탠리 텀블러

이뿐만 아니다. 최근 미국 식료품 체인점 ‘트레이더 조(Trader Joe’s)’가 새로 선보인 캔버스 소재의 미니 에코백 역시 새로운 품절 대란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특히 이 에코백은 틱톡 유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2.99달러의 작은 가방이 리셀(재판매) 사이트에서 정가의 200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명 ‘마트 오픈런’까지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리셀 가격이 원가의 200배까지 뛴 트레이더 조 에코백 (출처 : 트레이더 조 홈페이지)

이러한 유행이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양한 제품이 품절 대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한 뷰티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다이소의 가성비 앰플은 전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유명 가수가 부른 노래의 한 구절로 등장한 전통 간식 양갱은 전년 동기 대비 엄청난 매출 인상폭을 보였다.

새로운 추종 소비, 디토(Ditto) 소비

사실 현대 소비사회가 시작했을 때부터 ‘유행’이란 늘 존재해 왔다. 하지만 요즘 유행은 과거에 비해 그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SNS로 인해 파급력 및 전파속도는 더욱 강력해졌다. 누군가 “이거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면, “너도? 나도!” 하며 소비를 무조건 따라 하는 ‘추종 소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매우 복잡한 의사결정의 집합체다. 무엇을 구매하겠다는 필요 인식에 이어 다양한 상품의 정보를 탐색하고, 그렇게 골라낸 후보들에 대해 엄격한 대안 평가를 거쳐야만 행할 수 있는 정교한 행동이다.

구매 인증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스탠리 텀블러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단순히 특정한 대리체를 추종해 구매하는 현상이 극적으로 늘고 있다. 즉,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나, 콘텐츠 혹은 커머스에 언급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따라 구매하는 행동이 늘어났다. 트렌드 책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이런 현상에 “나도 그래.”를 의미하는 영어 속어 ‘디토(Ditto)’를 붙여 ‘디토소비’라 명명했다. 디토소비는 필요인식 단계부터 추종이 이뤄진다. 어떤 사용적인 측면의 필요를 느껴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닌, 애초에 추종으로 인해 제품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뜻이다. 글 서두에 소개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디토소비는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을지 하나씩 살펴보자.

사람 디토, 콘텐츠 디토, 그리고 커머스 디토까지!

과거에는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지가 중요했다면, 요즘은 ‘누가 사용한 제품’인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방법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다만 최근에는 유명한 셀럽형 인플루언서보다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을법한 중형급 인플루언서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일례로, 아무리 전례 없는 불황기라 할지라도 나와 주방 인테리어 취향이 비슷한 주부 인플루언서가 추천하는 공동구매 아이템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가 사용하는 식기나 도마가 공동구매로 등장하면 완판은 시간문제다. 이유는 바로, 그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영화 리뷰어가 “이건 꼭 보셔야 해요”라고 말하면 내가 평소 보지 않던 장르더라도 일단 한 번 눈여겨본다. 나와 영화 취향이 비슷한 그가 추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틱톡 인플루언서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품절 대란을 낸 트레이더 조 에코백

콘텐츠 소비가 급증한 코로나 이후,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콘텐츠에서 나오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그대로 추종하는 경향도 짙어지는 추세다. 예를 들어 인기 영화에서 나오는 장소는 관광지로 떠오르고, 특정 드라마에서 나온 음식이 인기를 끈다. 심지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도서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몇 개월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염세주의 철학가 쇼펜하우어 관련 책이 등장하여 주목받았는데, 그 후 12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람 아닌 커머스 역시 ‘워너비’가 된다

특정 커머스에서 제안하는 상품을 그대로 추종하는 ‘커머스 디토’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컬리에서 랭킹 1위를 한 식품, 올리브영 랭킹 1위를 한 화장품이라면 믿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단적인 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유통업계 절대강자인 쿠팡과 네이버 쇼핑 등이 있음에도, 특정 제품 카테고리를 좁혀 다루는 전문몰(버티컬 커머스) 역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패션 전문몰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는 앱 결제금액 기준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뷰티 전문몰 올리브영 또한 지난해 9월 앱 설치자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사용자 역시 552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의 비즈니스 트렌드를 분석한 책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Z세대 역시 편집샵(일본에서는 ‘셀렉트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쇼핑을 선호한다. 편집샵은 각각의 콘셉트에 맞는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이 판매한다. 여러 브랜드를 찾아다닐 필요 없이 나의 취향과 일치하는 편집샵을 찾아 이를 추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의류부터 생활용품까지 자신들만의 취향으로 제품을 선정해 인기를 얻은 일본 셀렉트샵 어반 리서치 스토어(URBAN RESEARCH Store)
(출처 : 어반 리서치 스토어 홈페이지)

FOMO와 FOBO에 사로잡힌 현대 소비사회

사람들이 디토소비를 추구하는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나만 트렌드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과 더불어 “내 선택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의 합작 때문이다. 미국의 벤처 투자자이자 작가인 패트릭 맥기니스는 자신의 저서 ‘포모사피엔스’에서 소비사회의 이러한 현상을 지적하며 ‘FOMO’와 ‘FOBO’의 개념을 소개한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어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을 의미하며 FOBO는 ‘Fear of Better option’의 약어로, 더 나은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아마존에서 신발 끈 하나를 검색해도 2000개가 넘는 상품이 뜨고, 스타벅스에서는 8만 가지의 음료 조합이 가능한 세상이다. 이처럼 복잡해진 소비환경과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요즘 트렌드를 잘 따라가면서도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상품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 정보탐색을 하기도 싫다. 많은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좋은 결과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나를 대신해 구매 의사결정을 내려줄 사람, 콘텐츠, 커머스를 추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제품력 뛰어넘는 브랜드 미학이 필요한 때

시장환경이 점차 복잡해지고 상품의 품질은 상향 평준화된 현대 시장에서, 뛰어난 제품력만으로는 디토소비를 이끌어내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디토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자사만의 차별화된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유명인의 코디에 맞춰 제품을 추천하는 에이블리 콘텐츠 (출처 : 에이블리 유튜브)

일례로, 소비자의 고민을 덜어주는 장치를 마련하는 차별화된 시도가 눈에 띈다. 최근 ‘써브웨이’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와 재료를 조합한 메뉴인 ‘썹픽’을 출시했다. 썹픽이라는 한 마디만 내뱉으면 일일이 고르지 않아도 알아서 꿀조합 샌드위치를 제조해주기 때문에 주문 시간을 덜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패션 전문몰 ‘에이블리’는 단순히 패션 스타일링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넘어, ‘탑 아이돌 코디 손민수하기’와 같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특정 상품을 직접 따라 입어보는 콘텐츠를 선보였는데, 해당 콘텐츠 발행 이후 거래액이 4.5배 증가하며 1020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디토소비 트렌드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글로벌 트렌드이자, 현시점 유통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소비자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기억해야 할 것은 ‘디토소비자가 진정 따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제품이 아닌 그 제품을 추종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소비자가 구매 시 느끼는 다양한 소비 감정들과 데이터를 통한 소비 행동 분석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삼성・LG 등 다수의 기업과 소비 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 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KBS1 Radio <성공 예감> 고정 출연, KBS <사사건건>, YTN <뉴스라이더>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트렌드 코리아 2024>를 비롯해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등 다수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