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
잘파(Zalpha)라는 표현을 들어보았는가? Z세대(1990년대 중반~2009년)와 알파세대(2010년 이후 생)를 결합한 말이다. MZ에 이어 새로운 세대를 말하는 표현이 아직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이미 아마존, 우버, 쇼피파이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잘파를 주목하며 이들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잘파세대에 주목해야 할 이유, 이들이 리드하고 있는 마케팅 트렌드와 한국에 있는 마케터들에게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자.
비즈니스 마인드 갖춘 어린이들의 출현
잘파세대는 나이에 비해 더 큰 소비잠재력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 우선 물리적인 나이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성숙해서 업에이징(up-aging) 세대라고 불린다. 검색엔진 1위 구글에서 검색하는 대신 정보도, 맛집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방법도 영상 중심의 틱톡에서 검색하고, 뉴스 채널 대신 소셜미디어에서 뉴스를 본다. 로블록스 등 게임을 커스텀 해 수익을 얻고, 10대 시절부터 유튜버 등 개인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는 등 ‘키드프리너(Kidpreneur), 어린이(Kid)와 기업(entrepreneur)의 합성어로 어린 나이에도 수익 사업을 진행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가 일반화될 정도로 비즈니스 마인드를 장착했다.
인구수로도 2025년까지 Z세대 22억 명, 알파세대 20억 명으로 전망되는데, 출산율이 낮아지는 반대급부로 ‘텐포켓(10poket)’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오히려 한 명의 아이에게 집중되는 관심과 자본이 커진 것도 중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네이티브지만 팬데믹을 중요한 시기에 겪으며 오프라인 역시 선호한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잘파’는 MZ라는 세대 구분보다 세대 간 유사성이 훨씬 크고 기업에게도 좀 더 효율적이고 유의미한 세대 구분으로 볼 수 있다.
#안티알고리즘
그렇다면 잘파세대는 글로벌 마케팅에서 어떤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을까? 필자는 ‘잘파가 온다: 글로벌 마케팅 트렌드’라는 책에서 9가지 트렌드를 제시했다. #날추적하지마세요, #안티알고리즘, #연결되어있다는감각, #나보다우리가더중요해, #내가바꾸는세상, #진지함보다는가벼움, #소비로자존감을높이다, #나이를재정의하다, #의식적게으름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6개를 잘파세대가 리드하는 것을 발견했다.
우선 첨단 기술과 알고리즘에 대한 반감이 커지며 부상하고 있는 #안티알고리즘(anti-algorithm)을 보자.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점점 더 우리 삶에 들어오는데, 잘파세대는 특히 더 첨단 기술 기반의 상품과 서비스에서 자라났다. 2007년 스마트폰이 선보인 이후, 아이패드(2010년), 인스타그램(2010년), 틱톡(2018년) 등,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은 물론 디지털과 AI가 이미 기본 인프라로 갖춰진 환경에서 자라나다 보니 요즘 아기들은 처음 하는 말이 ‘알렉사(아마존의 AI 비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AI와 디지털이 편하지만 알고리즘 자체에 대해서 반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보다 더 관련성이 높은 콘텐츠나 상품을 추천해 주는 등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 반면 알고리즘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디지털 활동을 추적해서 나만을 위한 상품 추천을 해주는 것을 점차 부담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비슷비슷한 콘텐츠의 노출로 인한 확증 편향은 물론, 최고의 모습을 중심으로 소통되는 과시적인 소통에 대한 피로감 또한 늘어났다. 이런 흐름을 기술적 유토피아에서 기술적 디스토피아로 움직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의 ‘진실한’ 모습을 인증하고 싶어
안티알고리즘의 부상은 보다 진정성 있는 소통에 대한 잠재되어 있던 니즈를 의미한다. 실제로 안티알고리즘 니즈를 반영한 서비스의 인기가 높았다. 2022년에 앱스토어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4600만 번이나 다운로드된 앱 ‘비리얼(BeReal)’의 경우, 진정성을 서비스의 핵심으로 삼는다.
꾸미지 않은 진짜 내 모습을 인증해야 하는 앱 비리얼 (출처 : 비리얼)
나의 최상의 모습을 내가 원할 때 포스팅하는 인스타그램과 달리, 하루에 한 번 앱에서 알림이 울린 후 2분간만 포스팅이 가능하다. 물론 2분이 지난 후에 올릴 수 있지만, 얼마나 늦게 올렸는지, 재업로드가 된 것인지까지 표시가 되어 그 앱에서 소통되는 순간은 당사자의 가장 진실(real)한 순간임을 알 수 있다. 비리얼은 2022년 틱톡보다 그 성장세가 더 컸을 정도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그 주요 사용자가 10~20대 여성이었다. 코스메틱 브랜드 러시(Lush)는 2021년 11월 안티 소셜(anti-social)을 선언하며 모든 SNS 활동을 멈췄다. 보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가벼움의 정서, 시추에이션십
다른 키워드로 #진지함보다는가벼움 을 보자. 길고 진지한 호흡보다는 ‘가벼움의 정서’를 반영하는 이 키워드는 타인과의 관계, 콘텐츠 소비, 정보 습득, F&B에서도 엿보이는 트렌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의 경우 진지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관계 대신 상황(situation)에 따라 유연하게 가져가는 관계(relationship), 즉,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이라는 관계 맺기가 확산되는 중이다.
콘텐츠 소비에서도 긴 호흡의 콘텐츠 전반을 보는 대신 짧은 버전의 요약본 보기가 일반화되고, 넷플릭스 빨리 돌려보기, 영화 빨리 감아보는 트렌드가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콘텐츠를 간식처럼 가볍게, 더 빠르고 쉽게 소비하고자 하는 양상을 한국어로 스낵컬처(snack culture), 영어로는 스니펫 컬처(snippet culture)라고 부르는데, F&B 영역에서도 정찬 대신 식사를 가볍게 하는 트렌드가 확산된다.
잘파세대에게 가벼움의 정서라는 특징이 두드러진 것은 더 짧아진 주의 집중 시간(attention span)과 관계가 크다. 주의력 집중 시간의 경우 밀레니얼 세대는 20초, Z세대 8초, 알파세대 3초로 더 짧아졌다. 긴 호흡의 콘텐츠나 관계보다 좀 더 짧고 가벼운 소통을 원하게 되었다. 너무 끈적한 관계보다 조금은 가볍게 소통하고 소비하는 것이 더 편한 이유다.
잘파는 먼 나라 트렌드가 아니다
한국에 있는 마케터들은 #안티알고리즘이나 #진지함보다는가벼움 같은 글로벌 트렌드가 한국 시장과 무관할 거라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파세대는 글로벌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중요한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고, 점차 그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아마존은 틴 로그인(teen login)이라는 서비스로 10대가 가장 많이 돈을 쓰는 곳이 되었고, 우버도 10대 전용 계정을 제공한다. 한국의 토스(toss)도 10대 전용 카드를 출시한 지 2년 만에 약 190만 장을 발급하는 등, 많은 회사가 이미 잘파세대를 겨냥하는 비즈니스, 상품, 서비스를 속속 론칭하고 있다.
2024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 마케터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잘파와 관련한 글로벌 트렌드를 적용할 수 있다. 우선 잘파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소통에서는 진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진해 보자.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행보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행보가 지속적이어야 한다.
비리얼의 인기로 인해 틱톡은 틱톡 나우(TikTok Now)를 선보였고, 인스타그램은 캔디드 챌린지(Candid Challenge)를 선보였던 것처럼, 이러한 기능을 반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콘텐츠 소비 방식을 좀 더 가볍게 해야 한다. 소통의 단위를 짧게 가져가고, 요약본을 기본으로 하는 한편, 상품 정보를 제공할 때도 요약본과 함께 키워드 중심으로 제공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아마존은 이미 생성형 AI를 이용해서 엄청난 양의 소비자 리뷰를 한 문단, 또는 키워드 몇 개로 상품을 쉽게 파악하게끔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파이(Shopify)는 ‘알파세대가 더 성장하고 더 많은 소비력을 갖췄을 때 이들을 타기팅 하면 이미 늦다’라고까지 표현한다. 내년과 함께 좀 더 먼 미래까지 주요할 잘파세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마케팅 전공 부교수
기술 혁신이 바꿀 마케팅의 미래와 소비 권력의 세대교체가 기업에 미칠 영향을 트렌드 최전선에서 연구해 온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 유통업계에 빠르게 기술이 도입되던 시기, 국내에 ‘리테일’을 가장 먼저 화두로 꺼내 많은 기업에 혁신의 인사이트를 건넨 바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마케팅 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플로리다대학교와 핀란드 알토대학교에서 글로벌 마케팅을 강의했다. 저서로 <잘파가 온다> <리테일의 미래> <리:스토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