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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2.

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 각본 있는 드라마 스포츠 마케팅

제일기획 이용규 프로 (미디어퍼포먼스 2팀)

4년에 한 번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2002년 대회에서 4강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썼습니다.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함께 기뻐했습니다. 오랜 본선 잔혹사를 단숨에 날려버렸기에 우리가 느낀 카타르시스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스포츠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분출구가 되어주며, 자존감을 높여주는 묘약이자, 강력한 사회적 연결망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스포츠의 긍정적인 효과 덕에, 기업들은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많습니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스포츠 마케팅은 치밀한 각본 없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성공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위해서 어떤 각본을 쓰면 좋을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언더독의 반란에 배팅하라

스포츠에서 1%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일어나는 ‘언더독의 반란’에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잉글랜드의 축구 클럽 레스터시티는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레스터의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에 불과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 돌아올 확률보다 낮다는 조롱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이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2부 리그에서 허덕이던 구단을 인수하여 체계적이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태국의 면세점 기업 ‘킹파워 (King Power)’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킹파워는 구단의 빚을 청산해 재정 기반을 안정시켰고, 최고의 훈련 시설과 유스 아카데미 시스템을 구축하여 무명의 선수들을 발굴해 냈습니다. 한편 구단주 가문은 지역의 아동 병원, 학교, 뇌졸중 센터 등에 기부하고, 구단주 사비로 팬들의 원정 응원 비용을 대주었습니다. 홈경기에선 공짜 맥주, 도넛, 물을 돌리는 등 팬심을 얻기 위해 진심을 다했습니다.

킹파워의 투자는 창단 132년만의 우승이라는 결실을 보게 되었고, 이 단 한 번의 우승으로 투자 비용의 몇 배 이상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유니폼 판매, 챔피언스리그 진출, 중계권료 인상 등으로 구단 가치는 폭등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 축구 중계와 스포츠 기사에 ‘킹파워’ 로고가 노출되면서, 해외 인지도가 미미했던 면세점 브랜드는 전 세계 축구 팬 수억 명이 알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킹파워의 진심 어린 투자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지금 레스터시티의 홈구장 ‘킹파워 스타디움’ 앞에는 2018년 헬기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구단주 故 비차이 회장의 동상이 서 있고, 그를 향한 팬들의 애칭 ‘The BOS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 블로그 ‘오렌지군의 행복을 찾아서’)

팬들과 한편이 되어라

‘해버지’ 박지성이 유럽 축구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던 시절, 필자는 새벽잠을 설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경기 시작 전 리그 테마곡이 울리며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 어김없이 대회 엠블럼과 함께 등장했던 초록색 맥주병에 진한 유대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30여 년간 챔피언스리그를 후원해 온 하이네켄 마케팅의 핵심은 팬들과 한편이 되는 연대 정신입니다

AC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시간, AC밀란 팬들이 연인과 직장 상사에게 속아 클래식 음악회에 끌려옵니다. 그들이 비탄에 잠겨 있을 때, 무대의 연주가들이 챔피언스리그 테마 음악을 연주하고, 스크린에서는 결승전이 생중계되기 시작합니다. 콘서트홀은 AC밀란 팬들이 지르는 환호성으로 가득해집니다. 하이네켄이 기획한 깜짝 이벤트였던 것입니다.

2021년 봄, 유럽의 빅 클럽 12개 팀이 자신들만의 ‘유러피언 슈퍼리그(ESL)’를 창설하겠다고 기습 발표했습니다. 자본의 논리로 축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였기에, 축구 팬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하이네켄은 공식 소셜 미디어에 음주 경고문을 패러디한 글을 올립니다 “Don’t drink and start a league. Enjoy Heineken responsibly” 이 묵직한 경고 한마디로 하이네켄은 또 한 번 팬들의 편에 섰고, 축구팬들의 하이네켄을 향한 동지애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돌발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라

스포츠에서는 종종 돌발 상황이 벌어지고, 대중들은 이런 예기치 못한 이벤트에 흥미를 느낍니다.

메이저리그 경기중, 오타니 선수가 친 파울 홈런 타구가 외야 전광판에 맞으면서 ‘쿠어스’ 맥주 광고화면 일부가 꺼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쿠어스는 재빨리 이 사고를 그들만의 유쾌한 자산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오타니 선수가 우리 맥주 캔에 구멍을 냈네요! 고마워요 쇼헤이!”라고 쿨하게 반응했고, 화면이 꺼졌던 부위를 그대로 인쇄한 한정판 캔맥주를 출시했습니다. 오타니 팬들과 야구 컬렉터들은 열광했습니다. 이 캔맥주는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으며 품절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야구 선수 오타니가 친 홈런의 파편’을 소장하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 공격수 수아레스가 이탈리아 수비수 키엘리니의 어깨를 깨무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스니커즈’는 사건 직후 수아레스를 태그하며 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봐 수아레스, 배가 고플 땐 이탈리아인보다 스니커즈지” 자신들의 슬로건에 이 사건을 위트있게 대입시켜 팬들의 황당함과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몰입의 순간을 잡아라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때, 팬들은 경기에 몰입합니다. 컬링은 ‘시각적 몰입’을 강제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가진 종목입니다. 한 선수가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스톤을 보내는 딜리버리 동작을 하고, 다른 두 명의 선수가 스톤의 속도와 궤적을 조정하기 위해 얼음을 닦는 스위핑 동작을 합니다. 스톤이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시청자는 숨죽이며 지켜보게 됩니다. 특히 딜리버리 동작에서 카메라 앵글은 선수의 정면을 중점적으로 잡게 되며, 유니폼 상의의 후원사 로고는 시청자의 시야 중심에 배치됩니다. 딜리버리 과정은 엔드당 팀별로 8회, 총 10개 엔드 동안 반복되고, 후원사 로고도 시청자에게 반복해서 보여집니다.

컬링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종목이 아닙니다. ‘팀 킴’이 쓴 감동 스토리 덕분이죠. 시골 학교 친구들끼리 취미로 시작해 평창 동계올림픽 결승까지 올라간 5명의 김씨 선수들, 그들이 던지는 샷 하나하나에 국민들은 환호했고, “영미!”를 외치며 감정이 폭발할 때 그 중앙에 후원사 로고도 함께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팀 5G는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얼짱 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계방송 시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 종목 특성 덕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인기 스포츠들과 달리 국내 브랜드가 컬링 대표팀 후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유니폼 로고에 눈길이 더 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환희의 순간을 함께 하라

스포츠 선수에게 올림픽 메달은 최고의 영광일 것입니다. 세계적인 대회를 모두 석권했으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던 테니스 황제 조코비치가 파리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내 심장과 영혼, 신체, 가족, 모든 것을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바쳤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공식 스폰서로서 오랜 기간 올림픽을 후원해온 삼성은 영광의 순간인 올림픽 시상식을 빛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수상대에 오른 메달리스트들은 감격스러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고, 그 장면을 관객과 시청자도 함께 지켜봅니다. 삼성 갤럭시는 숭고한 올림픽 무대에서 또 한 명의 승자로 팬들의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환희의 순간, 선수들의 멋진 세레머니는 팬들에겐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LA다저스 오타니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면서 자신의 화장품 광고의 포즈를 재연합니다. 팀 동료들도 너도나도 오타니를 따라 합니다. 이 홈런 세레머니도 모델 계약에 포함되어 있던 건 아닐까요?

팬들의 진심에 닿는다면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 각본에 관해서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각본을 쓰고 싶으신가요? 우리의 각본이 팬들의 진심에 닿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브랜드는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관련 언론 보도 및 업계 공식 발표 자료
* 이 글은 Kobaco가 발행하는 ‘광고1번지’ 7월호에 게재된 칼럼을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광고1번지 링크 : https://kobacomarketing.kr/content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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