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이채훈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리는 타이레놀을 제대로 알고 먹는가?

우리는 타이레놀을 흰 알약, 빨간 글씨, 서랍 한쪽에 항상 있는 약으로 오래 알아 왔다. 그러다 보니 ‘다 안다’는 착각이 오랜 시간 쌓였다. 하지만 실제로 타이레놀은 하나가 아니다.
두통·발열에 먹는 타이레놀 500, 감기 증상에 맞는 타이레놀 콜드, 근육통에 타이레놀 ER, 물 없이 빠르게 가루 형태로 먹는 타이레놀 파우더, 어린이용 타이레놀 현탁액까지 각각 통증에 따라 타이레놀의 종류가 다르고 그 복용법 또한 다르다. 잘못 먹으면 효과가 절반이고, 모르고 중복으로 복용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이것은 타이레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약품 전반에 걸쳐, 우리는 ‘약 뒷면 글씨를 읽지 않는 소비자’로 오래 살아왔다. 글씨가 너무 작고, 용어가 너무 어려워 읽기 싫어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먹는다. 아니면 누군가 먹던 방식을 따라 먹는다.

이번 타이레놀 캠페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타이레놀을 제대로 알고 복용하게 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쉽게 보여주기
이미 수십 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올바른 타이레놀 복용법’을 안내받아 왔지만, 여전히 약국에서 “그냥 타이레놀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줄지 않고 있다.
이번 캠페인이 선택한 답은 달랐다. 차이점을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타이레놀 패키지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타이레놀의 새로운 패키지를 보는 순간 바로 차이를 알수 있도록 광고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 패키지 설계 작업에 AI를 파트너로 불러들였다.

캠페인은 ‘패키지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으로 설정해서 풀어냈다.
타이레놀의 패키지 디자이너가 AI와 함께 타이레놀 전 라인업의 패키지를 처음부터 디자인하는 과정을 모션그래픽 필름으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화면 속에서 패키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분해되고, 재조합되고, 새로운 색과 형태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 전제 디자인 과정 자체를 광고로 만들었다.
규칙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게 타이레놀 레드와 동일한 타이포그래피를 적용했고, 통증별로 컬러를 다르게 입혀 쉽게 구분 지었다. 콜드 타입은 한 알 복용임을 패키지 디자인 안에서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어린이용에는 어린이 캐릭터 일러스트를 넣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바로 아이용으로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AI는 무엇을 했는가
이번 캠페인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AI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AI를 어떻게 썼느냐’가 핵심이다.
요즘 광고계에는 ‘AI로 만든 광고’가 넘쳐난다. 대부분은 그렇게 활용되고 있다. AI가 이미지를 생성하고, AI가 영상을 만들고, 덕분에 제작 비용을 절감했다는 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때로는 훌륭하고, 때로는 어색하고, 그리고 종종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AI가 촬영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는 작업물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이번 타이레놀 캠페인은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AI의 역할은 단순히 멋진 이미지를 생성하는 역할이 아니라 디자인 논리의 시각화 파트너로 등장시켰다.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디자인 원칙인 ‘통증의 종류를 색으로 구별하고, 복용법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게 한다’ 와 같은 구체적 디렉션을 받은 AI가 빠르면서도 정교하게 디자인의 맥락을 이해해 가면서 원하는 패키지 형태로 만들어 나갔다.
즉,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사람이 내고, AI는 그것을 실현하는 속도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제공했다. AI를 크리에이티브의 대체제로 사용한 것이 아닌 결과물을 증폭시켜주는 파트너로 영리하게 활용한 것이다.

모션그래픽 안에서 패키지 디자인이 변형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내러티브가 된다. 시청자는 디자인이 하나씩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동시에 각각의 패키지 디자인의 차이를 쉽게 구별하게 된다.
이것이 이번 타이레놀 페이스리프트 캠페인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왜 페이스리프트인가?
이번 타이레놀 캠페인을 단순히 얼굴을 바꾸어서 ‘페이스리프트’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말하는 방식을 바꿨다.

기존 타이레놀 패키지는 충분히 익숙하고 신뢰를 줬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어느 순간 ‘관성’으로 굳어 버렸다. 소비자는 타이레놀을 보면 안심하지만, 정작 어떤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른다. 타이레놀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제품에 대한 이해 사이에 오랫동안 간극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캠페인은 그 간극을 좁히는 작업이다.

통증별로 패키지 컬러가 달라지면 선반 위에서 놓인 다양한 타이레놀 제품을 한눈에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어린이 일러스트 하나로 누가 먹어야 하는지 언어 없이도 바로 전달된다. 복용 단위가 패키지 디자인 안에 녹아들면서, 뒷면 글씨를 읽어야 하는 수고도 줄어든다. 패키지가 이미 다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디자인의 힘이기도 하고, AI의 힘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광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크리에이티브의 힘이기도 하다
광고가 AI를 쓰는 두 가지 방법
광고가 AI를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쓰는 것이다.
실제 촬영 대신 AI로 이미지 구현하기, 카피라이터 대신 AI를 통한 카피 생성하기. 이 방향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광고가 되지 않는다. 수단이 목적을 대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표현을 확장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인간이 혼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속도, 정밀도, 완성도를 위해 AI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사람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AI를 끌어들이는 것. 이 방향에서 AI는 크리에이터의 경쟁자가 아닌, 철저하게 인간과 협업하는 관계가 된다.
타이레놀은 분명히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

타이레놀 패키지 디자인 리뉴얼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AI는 그 목표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실현할 수 있는 파트너로 활약했다.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고, 모션이 자연스럽고, 정보 전달이 직관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와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아프기 전에 알아야 덜 아프다
이 캠페인의 마지막 메시지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 끝에 나왔다.
우리는 아파야 약을 찾는다. 약을 찾고서야 성분을 보고, 복용량을 확인하고, 그제야 ‘이게 맞는 약인가’를 따져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프다. 생각하기도 싫고, 성분표 읽기도 싫고, 그냥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이번 타이레놀 캠페인을 통해 진심으로 노렸던 포인트는 바로 그 순서를 바꾸는 것이었다.
아프기 전에 패키지를 기억하도록. 선반 앞에서 망설이지 않도록. ‘나한테 맞는 타이레놀’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미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주자. 그것이 패키지 디자인으로 가능하다면, 그리고 AI가 그 디자인을 더 빠르고 정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제대로 도움을 받아보자.

이번 타이레놀 페이스리프트는 단순한 광고 캠페인이 아니다.
단순히 타이레놀 제품을 구별 짓게 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인식을 바꾸고, 삶의 방식까지 조금씩 바꿔보자는 것이 이번 타이레놀 캠페인의 핵심 노림수다.
이번 타이레놀 캠페인이 그 긴 역사의 어딘가에 작은 점 하나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AI로 만들어진 광고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캠페인이 돋보이는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다.
타이레놀은 AI 기술을 영리하게 활용해 이전보다 더 멋져졌고, 더 명확해졌고, 그리고 더 친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