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_『패션 vs. 패션』, 『레플리카』등 다수의 책 저자

잠실에 있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데 CNN이라고 적힌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네모에 하얀색 CNN 글자, 익숙하게 봐오던 뉴스 채널의 그 로고다. 매장을 둘러보니 옷은 최근의 트렌드라 할 밝고 화사한 컬러 위주의 아웃도어 풍 라이프웨어다. 커다란 다운 파카에는 ‘트래블 카메라맨 롱 다운 파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하긴 전 세계를 누비는 뉴스 채널의 카메라맨이라면 아주 따뜻하고 튼튼한 옷이 필요할 거다. 이름만 봐도 든든한 느낌이 든다. CNN 이름이 붙어 있으니 적어도 그 이미지에 해를 가할 제품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본사의 명성과 이미지에 기대어 만들어지는 게 바로 라이선스 브랜드다.

요즘 이렇게 뜬금없어 보이는 이름이 붙은 브랜드를 많이 볼 수 있다. 디스커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코닥, 폴라로이드, 빌보드, 팬암, 예일 등 유명하고 익숙한 여러 분야의 회사들이 국내로 들어오며 패션 브랜드가 되고 있다. 라이선스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패션 회사를 기반으로 하는데, 최근에는 비 패션 업종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라고 따로 구분되기도 하며 특히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무신사에 제품을 선공개하며 2020년 런칭한 코닥 어패럴은 첫해에만 16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브랜드의 등장

코닥 어패럴의 2020 ss 시즌 컬렉션 룩북 (출처: 코닥 어패럴)

사실 라이선스 브랜드는 예전부터 있었다. 보통 1970년대에 제일모직이 들여온 맥그리거가 시작이라고 하며 이후 닥스, 엘르, 파코라반, 아놀드 파마 등 유명한 외국 패션 브랜드의 상표권을 구입해 우리 실정에 맞는 옷을 만들어 판매했고 꽤 인기도 끌었다. 비 패션 라이선스도 있었다. 스위스 밀리터리, 지프, 지포 라이터 같은 상표가 옷이나 가방, 우산 등으로 만들어져 시중에 나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은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의 시작으로는 2012년 런칭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이야기할 수 있다. 1997년 미국 프로 야구 리그 MLB 상표를 패션화해 꽤 성공을 거둔 F&F가 내놓은 아웃도어 브랜드다. 2016년에는 더네이쳐홀딩스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어패럴을 선보였다. 이 두 브랜드는 큰 성공을 거뒀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의 시장 규모는 1조 원대이며, 수출도 많이 해 K-라이센스 패션이라고 불릴 정도다. 특히 디스커버리는 노스페이스, K2와 함께 국내 아웃도어 빅3에 들어갈 만큼 주요 브랜드로 성장했다.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의 장점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는 점이다. 얼핏 상충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코닥은 뉴트로 열풍과 함께 필름 카메라를 찾는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의류로 재탄생하며 한 세대 안에 익숙함과 신선함이라는 감각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들은 아웃도어 브랜드와 패스트 패션 사이에 자리잡고 편안하고 밝은 이미지의 아웃도어 룩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패션 취향을 형성할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낸 거다.

아웃도어지만, 아웃도어는 아닌

디스커버리의 밀포드 구스다운 패딩 화보 (출처: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2012년 디스커버리가 론칭할 때를 떠올려 보자. 디스커버리는 이전 아웃도어와 다른 특징을 들고 나왔다. 배우 공유가 스노우모빌로 설원을 누비고, 설산에서 헬리콥터를 뒤로한 채 멋있게 걸어 나왔다. ‘세상엔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화이트 컬러 다운 파카, 화사한 컬러의 플리스 같은 옷들이 아웃도어 풍 겨울옷의 분위기를 대신하며 아웃도어 패션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아웃도어가 기능을 넘어 스타일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웃도어 패션의 소비 방식이 바뀐 것은 롱 패딩 트렌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롱 패딩은 아웃도어 웨어로서 어느 정도의 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입고 산에 오를 수 있는 옷은 아니다. 게다가 롱패딩은 운동선수들이 입는 옷으로 여겨지며 일반인들이 입고 다니는 일상복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하지만 디스커버리는 이런 기존 이미지를 지우고, 화사한 컬러를 덮은 후 거기에 극한의 기능성까지 더한 새로운 롱패딩을 제시했다. 모두 알다시피 롱 패딩은 우리나라 겨울 패션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지도가 있다면 무엇이든 패션이 된다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가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인스타그램 등 SNS가 일상적인 채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이 크다. 패션은 보이는 표현 방식이고 새로운 세대는 그 대상을 주변에서 SNS로 확장해 갔다. 이런 경향은 특히 코로나 시대에 더욱 강해졌다.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들은 이런 경향에 대응해 분명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화이트 롱 패딩 등 쪽에 크게 적힌 디스커버리, 노란색 네모가 눈에 확 들어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명한 노란색과 빨간색의 조합을 어필한 코닥의 로고는 옷의 포인트뿐만 아니라 사진의 포인트로도 잘 활용될 수 있다.

최근의 흐름은 인지도가 있다면 무엇이든 패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패션을 자신의 가치나 이미지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보는 요즘 세대에게 브랜드의 기존 분야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패션 브랜드에는 결국 남들과 다름을 보여주고, 그걸 어떻게 매력적인 옷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해졌다. 그 매력은 옷의 모양뿐만 아니라 스토리, 감각, 재미, 신기함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과연 어떤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앞서 나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바라볼 만하다.


박세진

패션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지은 책으로 『패션 vs. 패션』, 『레플리카』, 『일상복 탐구: 새로운 패션』이, 옮긴 책으로 『빈티지 맨즈웨어』, 『아빠는 오리지널 힙스터』, 『아메토라: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가 있다. 이외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고, 강연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