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아_중앙일보 경제 부문 라이프스타일 팀장

친환경, 동물복지, 채식주의.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요즘 젊은 세대에 자연스럽고 익숙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과거 특정 단체의 활동가들이 강한 구호와 함께 이끌던 ‘운동’이 아닌, 하나의 ‘문화’다. 이 중 채식주의는 ‘비거니즘(Veganism)’이라는 이름으로 MZ세대 사이에서 뚜렷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거니즘의 확장성이다. ‘비건(Vegan)’은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이라면 우유나 계란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가리켰지만, 최근에는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을 대신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비거니즘 역시 채식을 하는 것을 넘어 어떤 목적으로든 동물 착취를 거부하는 삶의 방식이나 철학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그 배경에는 MZ 세대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자기 자신의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 보존에 큰 의미를 두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비거니즘으로 나타난 것이다.

건강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코로나19 이후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탄수화물과 고기 위주의 식단을 돌아보게 되었고, 조금이라도 채식을 지향하는 식단으로 비타민과 식이섬유 등의 보충을 늘리는 추세다. 까다로운 신념이 아닌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로써 비건의 조건도 훨씬 느슨해졌다. 고기를 허용하고 유연하게 채식을 실천하는 일명 ‘플렉시테리언(flexible+vegetarian)’ 들이 증가한 것이다.

사실 채식이 육식보다 건강에 좋은지는 의학적인 논쟁이 있지만, 하루 섭취 권장량보다 육류는 많이, 채소나 과일은 적게 소비해 온 것은 사실이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1.3%가 코로나19 이후 건강을 위해 샐러드 구매를 늘렸다고 답하기도 했다.

동물권과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

비거니즘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동물복지와 환경 이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반려동물 가구는 604만 가구로 국내 전체 가구의 약 30%에 해당하며 인구로는 1,50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 fam)’도 많아 비윤리적인 사육, 도축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끼며 채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환경 문제 또한 비거니즘의 가장 두드러진 배경이 되고 있다. 전 연령층을 통틀어 환경오염 문제에 가장 민감한 2, 30대가 비거니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우연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운영하는 통계 사이트(OWID)에 따르면 농·축산업은 인간이 발생시키는 이산화질소의 81%, 메탄의 44%, 이산화탄소의 13%를 차지하는데, 이 중 대부분은 소와 양의 사육 때문이다. 단백질 1g을 얻기 위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필요한 땅의 면적과 물의 양도 소와 양, 돼지가 월등히 높다.

(좌) 편의점 GS25가 최근 출시한 비건 스낵 포테이토웨지스와 머쉬룸칩 (출처: GS리테일)
(우) 롯데마트가 출시한 비건 선물세트 (출처: 롯데마트)

어떤 이유로 시작했든, MZ 세대는 일상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효능감을 회복해갈 뿐만 아니라, 외부에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게 된다. 7개월째 채식을 하는 헤어 디자이너 조이아(34·여)씨는 “처음엔 고객의 헤어와 두피 건강을 위해 식물성 아로마 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가 환경으로 시각이 넓어지면서 내 생활 속 모든 것들이 비건과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특히 “식단을 스스로 조절하다 보니 감정과 기분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됐고, 쓰레기 하나를 버릴 때도 환경을 위해 더 꼼꼼히 분리배출하는 등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커졌다”라며 “환경, 사회와 내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비건 라이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비거니즘

비거니즘을 향한 움직임은 이미 주변에서 또렷하게 일어나고 있다. MZ 세대가 많이 찾는 편의점 GS25는 3종류뿐이던 비건 상품을 올해 간편식, 젤리, 셰이크 등 15종으로 5배 늘렸으며, 올해 안에 30여 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1~7월의 비건 상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8배 상승했다. 6월엔 전국 초·중·고 재학생과 부모들로 이뤄진 채식급식시민연대가 학교 급식에 채식 식단을 보장해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하기도 했다.

호텔엔 ‘비건 객실’이 등장했다. 워커힐 호텔은 동물성 충전재인 구스다운 대신 비건 인증을 받은 충전재를 넣은 침구, 가죽 대신 ‘식물성 한지 가죽’으로 만든 방석과 쿠션 등이 비치된 비건 전용 객실을 선보였다. 추석을 앞두고 롯데마트가 식물성 소시지와 버거 패티로 구성된 선물 세트를 내놓는 등 비건 관련 제품도 많아지고 있다.

워커힐 호텔의 비건 객실 (출처: 워커힐호텔앤리조트)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적극적인 실천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그중 MZ 세대는 환경, 윤리 소비에 대해 가장 확고한 합의가 이뤄진 세대로서 비거니즘 트렌드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에게 비거니즘은 소수의 극단적인 신념이 아니라 ‘나도 개념 소비, 윤리 소비에 동참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표방하는 일종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건강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많은 한국. 이에 나와 환경을 위한 소비가 더해지며 비건 트렌드는 소비자 산업 전반으로 퍼지고 있으며,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브랜드가 선택받는 현상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소아

2004년부터 기자로 활동하며 현재 중앙일보 경제 부문의 라이프스타일 팀장으로 취재 및 기사 작성을 담당하고 있다. 유통·재계·IT 등 산업의 다양한 취재 분야를 거쳤으며, 프리미엄 네이티브애드를 만드는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에서 PM으로 활동했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변하는 트렌드와 산업을 소비자 입장에서 풀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