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문화나 가치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세대 차이’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이를 떠나 세대 간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거나 신세대와 구세대 간 문화가 서로 역행하고 혼융되는 ‘세대 접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을 태우고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다.

“와, 교수님 완전 최신곡만 들으시네요? 화사 노래도 들으세요?”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아니, 뭐, 이 정도 갖고….”

질문이 이어졌다.

“근데 교수님, 혹시 탑백(Top100)은 아니죠?”

이번엔 진짜로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아니! 내가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 했던가? 연구실에 와서 당장 플레이리스트를 가수별로 짰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기본. 여기에 있지(ITZY), 오마이걸도 살포시 포갰다. 마크툽으로 애잔한 ‘갬성’도 녹여내면 퍼펙트!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정신 차리자, 감각에서 밀리면 끝이다!

이날도 학생들과 점심을 먹었다. 대화의 주제가 온라인 게임으로 흘러갔다.

“너희들 게임 좋아하니?”

“저는 씨 뿌리고 밭 갈고 농장 경영하면서 150시간쯤 보냈죠.”

“와, 대단하다! 근데 게임 이름이 뭐니?”

“스타&#$@”

“응? 스타뷰 벨리?”

“스타듀 밸리입니다! 교수님도 게임하시나요?”

“음…. 서든어택?”

“……”

연구실에 돌아와 생각해 봤다. 역시 내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 게 맞았다. 오버워치 좀 한다고 할 걸 그랬나? 사이버펑크 2077 출시일을 기다린다고 했다면? 젊은 척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랜플루언서’는 그랜드파더·마더와 인플루언서가 결합된 용어다. 박막례 할머니가 여기에 해당될 듯하다. 일각에서는 젊은 취향의 뉴시니어를 ‘Especially Lively Senior’라는 말을 줄여 ‘시니블리(Senively)’로 부른단다. 이들은 게이트볼이나 탁구보다 드론과 전동 킥보드를 갖고 노는 걸 더 좋아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9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의 중장년층도 젊은 세대만큼 디지털을 잘 활용한다’라는 항목에서 “그렇다”는 응답 비율이 55.3%였다고 한다. 젊은 세대 못지않게 디지털 서비스에 익숙한 시니어가 늘고 있단 얘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되면 아마도 70%에 버금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 기술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시니어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심리적 진지를 치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이 진지전은 낙동강 전선과도 같다. ‘골방 노인’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은 빠른 기술 발전과 문화적 배타성,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풍토가 낳은 중장년의 자화상이다.

▲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 이찬재, 안경자 부부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워가 40만 명이 넘으며, 틱톡과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 인스타그램 캡처(instagram.com/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젊은넘’들의 재담과 총명함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축약어 사용과 소소한 기억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한한 단어들은 듣고 외우기에도 벅차다. 세대와 문화의 벽을 허무는 재주도 비상하다. 진로 소주가 진로 이즈 백으로 컴백할 줄 누가 알았을까?

▲ 하이트진로가 성수동에 오픈한 팝업스토어 ‘두껍상회’.
국내 최초의 주류 캐릭터샵으로 다양한 굿즈를 볼 수 있다. 
ⓒ hitejinro.com

G마켓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요즘 젊은 세대의 구매 목록에는 턴테이블, 우표 같은 ‘옛날 것’들이 올라가 있고, 나조차도 잘 먹지 않는 떡이나 한과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단순한 복고는 ‘손절’하고 뉴트로는 반기는 이런 태도는 20대의 고고학적, 인류학적 감성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뉴트로의 일상화는 이들에게 마치 게임의 일상화처럼 체화돼 있다.

소비 주체들이 이렇다 보니 ‘에이지리스’가 하나의 소비 장르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일례로 스포츠 브랜드 휠라가 출시했던 ‘2020 백투스쿨(Back to School)’ 컬렉션은 방탄소년단과 컬래버레이션함으로써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를 동시에 공략했다. 그런가 하면 H백화점 에이지리스 편집숍은 엄마와 딸이 함께 휴식하는 공간을 컨셉트로 잡았다. 이렇게 지금 우리 사회는 세대에 관한 고정관념이 깨지며, 각 세대의 트렌드가 각개 약진하다가 서로 손을 잡는 문화 접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구정우는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비교사회학, 개발사회학을 비롯해 국제 인권을 전공했다. 자신의 호기심과 바람을 일상의 언어로 풀고 공유하는 데 관심이 많다. 지난해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