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유튜브로 몰려가고 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크리에이터들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정치인도, 연예인도 유튜브 진영 구축에 골몰한다. 이런 흐름 속에 기업 브랜드라고 빠질 리 없다. 각각의 유니크한 방식으로 구독자 확보를 위한 소리 없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유튜브를 통해 가치관이 뚜렷한 브랜드로 자리 잡은 패션 브랜드 ‘ODG’, 부캐와 본캐를 이용해 유머러스한 영상을 만들고 있는 ‘롯데렌터카’, 그리고 홈코노미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인테리어 서비스 플랫폼 ‘오늘의집’의 유튜브 화법을 알아본다.
▲ ODG 채널의 <엄마한테 대들 때 초등학교 전후 차이> 영상
기업의 소셜 계정이 구독자를 모으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극소수 ‘생태계 교란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셜미디어 세계에서 유명세보다는 스토리가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배우 한예슬의 구독자(80만 명)보다 먹방 유튜버 입짧은햇님의 구독자(118만 명)가, 빌 게이츠의 구독자(224만 명)보다 스웨덴 출신으로 전 세계 구독자 수 4위인 퓨디파이(1억 명)의 구독자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유튜브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15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 ODG의 사례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ODG는 아동복과 성인복을 모두 판매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유튜브만 봐서는 브랜드 채널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7살이 5살을 처음 만나면 하는 말>, <엄마한테 대들 때 초등학교 전후 차이>, <아이를 혼자 두고 1시간 운동하면 생기는 일> 등 ‘아이’를 주제로 한 상황극이 게시되고, 아이들의 솔직함이 감동을 자아낸다. 꾸밈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런 영상들은 ODG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ODG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의 ‘어디지’를 귀엽게 발음한 것이라고 하니,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이이기 때문”임을 호소하는 ODG의 스토리텔링이 적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아이다움에 대해 재고하게 하는 ODG의 영상은 특히 ‘미닝아웃’과 ‘가치 소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유튜브를 통해 ‘가치관이 뚜렷한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ODG는 유튜브 세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 롯데렌터카 채널의 본캐 vs 부캐 인터뷰 영상
본캐를 잠시 숨겨두고 부캐로 외도하는 것은 이제 비단 소셜미디어 유저들만의 ‘놀이’가 아니다. 싹쓰리와 김다비를 차치하고라도 부캐를 활용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나 혼자 산다> 속 부캐 모임인 ‘여은파’의 동영상들은 조회수 N백 만을 기록하는 중이고, 룰루랄라스튜디오는 예능인 박명수의 부캐들이 출동하는 웹예능 <할명수>의 론칭을 예고했다.
캐릭터와 세계관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에게 빙그레는 ‘꼬뜨게랑(Côtes Guerang)’의 디자이너 고계랑을 소개하는가 하면, 아모레퍼시픽의 부캐 계정 <뷰티포인트>는 화장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핑쿠핑쿠하게 부수면서 귀르가즘 ASMR을 제작하고 있다.
롯데렌터카도 부캐 놀이에 동참하며, 부캐에 본캐를 얹은 역할극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선보인 일련의 광고는 영화 <아저씨>와 <해바라기>의 명장면을 패러디하며 인기를 끌었는데, 이 인기에 일조한 것이 바로 출연진들의 부캐를 활용한 ‘본캐 vs 부캐’ 영상들이다. <아저씨>의 만석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하며 악역으로 캐릭터를 굳혀 온 배우 김희원이나 <해바라기>의 병진이형으로 유명세를 떨친 배우 지대한 등이 자신의 부캐와 함께 인터뷰에 응하는 콘셉트이다.
똑같은 질문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이면서 본캐와 부캐는 수시로 대립하는데, “깜빡이를 잘 켜는가?”라는 질문에 배우 김희원 본인은 “안전 운전이 중요하다”라고 대답하지만, 그의 부캐는 “깜빡이는 무슨”이라고 응수하는 식이다. 본캐와 부캐를 모두 갖고 있는 배우들로 광고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캐의 특성에 주목해 재미의 폭을 넓힌 셈이다.
부캐가 유행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더 많은 계정’으로 대변되는 ‘더 많은 자아’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사실 같은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이 두 가지 캐릭터를 번갈아 연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재미있기도 하다. 트렌드에 부합하는 동시에 충분히 유머러스한 영상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더 많은 부캐 놀이를 요청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 오늘의집 인테리어 채널의 홈카페 꾸미기 영상
인테리어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오늘의집은 그 자체로 일종의 형용사가 됐다. “오늘의집st”라고 하면, 오늘의집 스토어에서 판매할 것 같은 재질의 소품으로 꾸민 스타일이라는 뜻이니까. 세련되면서도 과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듯 자연스럽고, 미니멀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느낌적 느낌 말이다. 이처럼 오늘의집이 독특한 ‘재질’을 확보한 데에는, 유튜브 채널 <오늘의집 인테리어>를 부지런히 운영해 온 덕이 크다.
<오늘의집 인테리어>에는 룸 투어와 인테리어 하울 영상이 수시로 게시된다. 대체로 원룸 또는 소형 오피스텔 등 혼자 사는 사람들의 자취방을 예쁘게 꾸민 영상의 인기가 높다. 코로나19의 유행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홈코노미(Home-conomy) 시장 전체가 팽창한 원인이 크다.
예전의 1인 가구들이라면 아마도 가족을 이뤄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월세방이나 전세방 인테리어는 미뤄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1인 세대들은 체리색 몰딩이나 답답한 색의 벽지를 참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나 혼자 먹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밀키트를 주문하는 것처럼, 나 혼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의 공간에 투자하는 것이다.
<오늘의집 인테리어>는 이러한 수요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MBTI 유행에 맞춰 <MBTI I형의 아늑한 3평 작은방 꾸미기>를 공유하거나, 집에서 지내는 공간을 예쁘게 가꾸고 또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집콕 로망 실현 분위기 좋은 홈카페 꾸미기>, <하이틴 속 영화 방꾸미기> 등의 영상을 게시한다.
국내 중저가 리빙 시장에서 중요한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는 오늘의집과 마켓비 모두 유튜브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SPA 브랜드로 리빙 시장에까지 진출한 자라홈(Zara Home) 등도 1인 가구의 인테리어를 위해 들려볼 만한 채널로 손꼽힌다. 플랜테리어를 위한 조언이나 마크라메 소품의 활용법, 앤틱 분위기 내는 법 등에 대한 동영상은 아직 독립하지 않은 예비 1인 가구들인 10대와 20대들까지 공략한다. 이들 역시 ‘내 방 꾸미기’에 동참해 내가 당장 머무는 현재의 공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 벽면에 사진 촬영 스팟을 마련하고 줌(Zoom)과 페이스타임으로 룸 투어를 하는 이들에게는 예쁜 것이 곧 실용적인 것인 듯하다.
제일기획 이경민 프로(콘텐츠비즈니스 5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