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이글(Zoe Eagle), Iris* London CEO

오늘날 생성형 AI를 둘러싼 담론의 대부분은 아이디어, 자산, 효율성 같은 매끄러운 단어들로 포장돼 있다. AI는 브레인스토밍의 유용한 파트너, 혹은 컨셉을 빠르게 스케치하고 팩트를 체크하는 도구로 묘사되곤 한다. 실제로 AI와 함께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은 꽤 즐거운 경험이다.

아이리스(Iris)의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메노(Menno)는 이제 자신의 손에 ‘제작 수단’이 직접 쥐어졌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작 과정의 마찰이 사라지면 창작자의 본능은 더 날카로워지고 아이디어는 더 빠르게 구체화된다. 과거에는 비현실적이거나 도달 불가능해 보였던 창의적 도약이 갑자기 실현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속도는 분명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만들기 쉬워진 시대에는, 그만큼 본질을 놓치기도 쉬워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생성형 AI가 가져온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새로움’이 아니라 ‘양(Volume)’이다. 사실 마케팅 업계는 이토록 넘쳐나는 풍요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지난 수년간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아이디어의 부족이 아니라 ‘파편화’였다. 예산은 그대로인데 관리해야 할 플랫폼, 포맷, 시장, 접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AI 덕분에 그 거대한 간극을 메울 수 있게 됐다. 단순히 더 나은 결과물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결과물을 쏟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진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는 마케팅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콘텐츠 제작 속도가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들던 시절, 워크플로우는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강요했다. 팀원들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합의해야 했다. AI는 이러한 갈등을 없앴다. 유용한 변화지만, 동시에 다른 지점을 압박하게 됐다.

수많은 마케팅 의사결정이 실패하는 이유는 결과물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그 누구도 결과물에 대해 진정한 ‘주인의식(Ownership)’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무한해진 지금, 진정한 제약 요인은 ‘얼라인먼트(Alignment, 방향 일치)’에서 온다. 누구나 끝없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에 대한 확신을 끌어내고 조직 전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팀은 극히 드물다.

이러한 긴장감은 ‘글로벌의 야심’이 ‘로컬의 현실’과 충돌할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AI 덕분에 글로벌 팀은 대규모 툴킷(Toolkit)을 순식간에 제작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이론적으로 마케팅의 고질적인 속도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하지만 구성원 간의 신뢰와 공유된 주인의식이 없다면, 이는 오히려 현장의 저항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될 뿐이다.

마케팅은 팀 스포츠다. 그런데 왜 우리의 도구들은 여전히 ‘솔로 플레이어’처럼 작동하고 있을까. 로컬 팀은 본사에서 이미 완성해 내려 보낸 정답지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맥락을 공유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자신들의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결과물을 원한다. 즉, 일방적으로 전달된 지침이 아니라 ‘함께 빚어낸 아이디어’를 원하는 것이다. 글로벌 메시지가 규정 준수(Compliance)를 끌어낼 수는 있어도, 현장의 확신(Belief)을 얻기는 어렵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구성원의 진정한 ‘확신’ 없이는 그 어떤 유의미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신은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엔진이며, 글로벌의 일관성과 로컬의 관련성이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다. AI는 결코 이 확신을 대체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AI를 단순한 ‘결과물 생성을 위한 지름길’로 보지 않는다면,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확신은 더 많은 솔루션이 아니라, ‘초기 단계의 협업’에서 나온다. 런칭 과정을 공유하고, 맥락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명확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각 팀이 기여하고 질문하며 헌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의사결정이 끝난 뒤 완성된 작업물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작업물의 형태를 직접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아이리스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아이리스의 ‘B.O.A.R.’와 같은 도구들은 최종적인 정답을 내놓기 위함이 아니라, ‘공유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설계됐다. 지식과 의도, 학습 내용을 체계화해 각 시장의 팀들이 함께 적응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획일화가 아니라 ‘정렬된 진보(Progress with alignment)’다.

AI는 사람들이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협업할 수 있도록 도울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하지만 마케팅의 진정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확신을 심어주고, 신뢰를 얻으며, 팀이 진심으로 지지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마케팅의 이 본질적인 영역은 그 어떤 기술도 자동화할 수 없으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 이 글은 영국의 마케팅 전문 매체 Little Black Book에 게재된 칼럼을 번역·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원문 링크 : https://lbbonline.com/news/AI-Has-Made-Content-Easy-Belief-Is-Now-Marketings-Hardest-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