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_원스피리츠 CCO
우리는 술의 향과 맛을 즐기고, 술로 파생되는 문화를 즐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자 취향의 다변화로 평균이 실종되고 있는 세상에서 트렌드를 예측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지난해 주류 트렌드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1인으로서 2023년 계묘년의 주류 트렌드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주류 문화의 진화, 그리고 공간의 확장
코로나를 겪는 동안 외식을 통한 주류 소비가 줄어들며 홈술이 증가했다. 올해도 여전히 홈술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것이다. 온라인에서 전통주를 주문하거나, 가까운 편의점에서 맛있는 주류를 구매해 집에서 편하게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류 문화의 진화는 경이로웠다. ‘원소주’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화요’, ‘일품진로’ 등 증류식 소주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스카치, 버번 등 위스키를 필두로 한 증류주 카테고리 전체에 열풍이 몰아쳤다. 증류주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칵테일이 유행하며, 섞어 먹는 문화가 새롭게 창출되었다. 한편 건강을 생각해 술의 원재료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새로’처럼 당이 빠진 제로 슈가 술의 인기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젊은 층 사이에 증류주 열풍을 일으킨 원소주 (출처: 원소주 홈페이지)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쉽게 하지 못했던 오프라인 모임과 행사에 대한 욕구가 극에 달해, 홈술로 다져진 주류 취향들이 다양한 형태의 공간에서 공유될 것이다. 오프라인 술자리들은 이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자리를 탈피해 좋은 술을 맛있는 안주와 멋있게 즐기는 술자리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 음식점이나 바틀샵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술의 진짜 맛을 알게 되면 취향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이렇게 발견한 취향은 더욱 다양한 술의 소비 촉진으로 이어진다. 이를 대비한 주류 업체 및 전국 양조장들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혼술도 좋고, 페스티벌에서 즐기는 술은 더 좋고!
(출처: 김희준)
올해는 다양한 형태의 페스티벌이 그간의 설움을 표출하듯 폭발적으로 열릴 것이다. 술을 나누기 좋고 즐기기 좋은 최적의 공간이 바로 페스티벌이다. 술에 대한 다양한 취향은 페스티벌에도 반영된다. 맥주에서 나아가 가성비 좋은 하이볼 형태의 술들이 인기를 끌며, 전통주나 우리 음식을 중심으로 한 페스티벌도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페스티벌은 주로 여름과 가을철에 집중되므로, 위스키나 전통주 브랜드는 페스티벌을 필두로 한 칵테일용 술 소비 수요에 대비해 보면 어떨까.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류 브랜드 탄생의 원년
지난해에는 특히 한식, K-POP,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뉴욕의 파인다이닝 한식당 ‘아토믹스’를 필두로 한식의 위상은 하늘을 찌르고, ‘블랙핑크’의 인기는 남미, 유럽을 넘어 중동, 인도, 아프리카까지 번져 사우디에서도 콘서트가 열린다. ‘오징어게임’ 열풍 이후 최근 ‘더 글로리’가 등장하며 올해 한국 콘텐츠의 인기도 재점화 준비를 마쳤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올해는 한국 술도 글로벌 진출의 원년이 되지 않을까.
예약에만 반년 이상이 걸린다는 뉴욕의 한식당 ‘아토믹스’ (출처: 아토믹스 인스타그램)
콘텐츠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 우리 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러한 세계적인 관심은 원소주를 중심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국내외의 관심을 지속적인 판매, 수출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경쟁력 있는 우리 술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 콘텐츠의 성장에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었듯,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만드는 이의 노력은 기본이고, 좋은 술이 지속적으로 나오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도 활성화되면 좋겠다. 이런 노력이 이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 술 브랜드의 탄생을 기다려본다.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기보다, 지난해 붐업된 우리 술이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을 담은 글로 봐주면 좋겠다. 주류 시장은 올해 더욱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글로벌에 함께 진출하는 크루가 생기는 과정이라 여기고, 서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의의 경쟁이 되었으면 한다. 술이 아닌 문화를 파는 대한민국 대표 주류 브랜드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희준
원소주 프로젝트 총괄. 워크와 라이프를 블렌딩한 삶을 살고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브랜드 빌드업에 능숙하며 홈쇼핑 쇼호스트부터 브랜드 마케터 등 마음이 끌리는 일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생수 사업, 대만 디저트 사업 등 직접 사업체를 꾸려 보기도 했을 정도로 도전할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돌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여행과 술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만든 1세대 인플루언서이며, 2022년 연말 ‘원소주 더 비기닝’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