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인_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 발행인

(출처: 하이브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2022년 7월 22일, 여름의 정점에서 5인조 걸그룹 뉴진스가 데뷔했다. ‘민희진의 걸그룹’이라는 오랜 수식어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이브의 브랜드 총괄 CBO이자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CEO를 겸하는 민희진은 다음과 같은 팀명 풀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보여줄 것을 예고했다. “시대를 불문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아 온 아이템인 ‘청바지(Jeans)’처럼,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

데뷔 앨범 [New Jeans]는 선 주문량 44만 장을 돌파했고, 선 MV 공개, 후 음원 공개라는 이례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전 곡이 여전히 각종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상위권에 안착 중이다. 지난 여름, 아티스트의 초기 팬덤이 만들어낸 성과를 넘어, 뉴진스가 모두의 대화 소재가 되었던 이유를 살펴보자.

핵심 제품의 다양한 선택지: 3종 앨범

데뷔 앨범 [New Jeans]의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 과정에서 제작자와 아티스트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키워드는 ‘자연스러움’이다. 새삼스러운 키워드다. 뷰티 브랜드가 ‘자연스러움’이라는 가치를 반복 노출할 때, 소비자들은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부득이하게 인위적인 과정을 동반’하고야 마는 자본주의 세계의 원리를 읽게 되기 때문이다.

(출처: 위버스샵)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방 버전’ 앨범은 온갖 세대와 취향의 경계를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오갔다. 제작자의 입장이기도 한 X세대에게 이 앨범 사양은 어렸을 때 CDP로 음악을 듣던 추억을 소환하는 향수의 결정체이다. M세대부터 Z세대를 아우르는 아티스트와 팬에게는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카운트다운 라이브 영상에서 멤버 혜인은 가방 버전 앨범의 실용성을 어필하며, 멤버들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 키링을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가방끈에 부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연해 보였다.

가방 버전 앨범이 팬을 넘어 일상의 영역까지 아울렀다면, ‘위버스 버전’ 앨범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포용한다. 2022년에는 CDP로 앨범을 듣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는 한편, ‘CD 없는 앨범’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위버스 버전 앨범 구매 고객은 전용 앱을 설치한 후 QR코드를 통해 고음질 앨범을 다운받아 들을 수 있다. 이는 최근 제이홉, 세븐틴 등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의 신보 발매 시에도 적용되고 있다. 실물 앨범을 대량 양산해 발생하는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는 소비자를 위해 마련된 몫이다.

CD와 앨범 패키지 후가공 등 공정 과정을 과감히 제한 위버스 버전 앨범(디지털 앨범)은, 블루북 버전(일반 앨범), 가방 버전(리미티드 앨범)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지기도 한다. 이는 브랜드와 서비스가 핵심 제품을 다양한 사양으로 제공할 경우, 형식과 틀을 파괴하는 새로움을 넘어 수많은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한 옵션을 제공할 필요를 시사한다.

디지털 시대의 케이팝: 자체 팬 플랫폼 & 인터랙티브 MV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언제 어디든 연결된 이들은 뉴진스라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잠재적인 타겟이다. 뉴진스의 팬 전용 플랫폼 ‘포닝(Phoning)’이 이를 보여준다. ‘Phoning’이 ‘Phone’과 ‘ing’의 합성어인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팬이 될 사람들이 새로 출시된 앱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사용자 경험을 쌓아 나가는 데 서툴지 않은 디지털 친화적인 소비자라는 걸 전제한다.

뉴진스 팬 전용 플랫폼 ‘포닝’ (출처: 포닝 앱)

이 플랫폼에는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사진과 짧은 클립, 멤버들이 주고받는 채팅, 공식 일정을 볼 수 있는 캘린더가 한데 모여 있다. 무엇보다 캘린더 활용법이 독특하다. 팀의 공식 일정 알림 기능(‘Hurt’ MV 공개, KBS 제49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 등)과 개개인의 SNS 타임라인(하늘 보기, 쿠키 만들기, 연습 열심히 하기 등)이 혼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어유의 ‘버블’, 엔씨소프트의 ‘유니버스’ 같은 팬 플랫폼이 유료 구독 장치를 통해 팬과 아티스트의 유대관계를 이루어 낸다면, ‘포닝’은 음악 외 아티스트에 관한 모든 콘텐츠를 아카이빙하는 (2022년 9월 기준) 무료 플랫폼을 지향한다. 누구든 뉴진스가 궁금해졌다면, 다른 채널을 살펴볼 필요 없이 일단 포닝에 접속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포닝은 공개 첫날 애플 스토어 소셜 네트워킹 부문 20위, 구글 스토어 1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서로 다른 네 편으로 공개된 ‘Hype boy’ MV (출처: ‘Hype Boy’ Official MV (Intro))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와의 만남은 ‘Hype boy’ MV에서도 잘 드러난다. 댄스파티를 둘러싼 로맨스 스토리에서, MV 속 멤버들이 빠른 속도로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는 갓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그 사랑을 끝내 버리는 서사 진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MV 후렴과 후반부에 스마트폰 스크린 위에서 단체 퍼포먼스를 하는 멤버들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 MV는 다섯 멤버가 연결된 스토리를 하나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상에 선형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MV Intro 영상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네 편의 MV로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원하는 순서대로 MV를 감상하고 결과적으로 전체 그림과 서사를 짜 맞춰볼 수 있다. 앨범 공식 소개에는 “보고 들으면서 어떤 스토리로 떠나고 싶은지 마음이 가는 데로 골라봐! 그리고 어땠는지 꼭 알려줘야 해”라는 코멘터리만 있을 뿐이다. 공식적으로 권장되는 시청 순서는 없다.

3가지 취향으로 골라듣는 NCT127 ‘Sticker’ 수록곡 추천 영상 (출처: ‘김일오’ 유튜브 채널)

지난해, 케이팝 MV 해석 채널 ‘김일오’에서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NCT127 정규 3집 [Sticker] 수록곡 전체를 세 유형으로 분류한 세 편의 개별 영상을 제작한 후, 리스너의 취향에 따라 자판기에서 하나씩 골라 먹듯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시리즈를 공개했다. 이처럼 영상 콘텐츠로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고자 하는 기획자는, 정교하게 구성된 인터랙티브 콘텐츠 시리즈에 한 수를 걸어볼 수도 있겠다.

모아 놓은 곳이 아닌 모여 있는 공간: 팝업스토어

데뷔 앨범 프로모션의 마지막 조각은 ‘팝업스토어’다. 2021년 3월, 민희진 CEO는 ‘하이브: 새로운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에서 베일에 싸여 있던 걸그룹 프로젝트 외 자신이 진행 중인 일들을 소개했다. 그중 하이브 신사옥의 컨셉을 설명하면서 민 CEO가 사용한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닌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컨셉은, 뉴진스의 첫 번째 팝업스토어에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2022년 8월, 더 현대 서울에서 뉴진스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복합문화공간이 케이팝에 보유 면적의 일부를 내어준 사례가 이례적이지는 않다. 이 팝업스토어에는 약 1만 7천여 명의 누적 방문객이 모여든 것으로 집계됐다. 객관적으로 약 두 달 전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스트레이 키즈X스키주 팝업스토어 ‘더 빅토리 인 서울’의 누적 방문객 2만 1,700명에는 살짝 못 미치는 수치다. 그러나 뉴진스 팝업스토어는 팬층 이외의 사람들의 방문 인증 후기가 쏟아졌다는 데에서 화제성 그 자체였다.

(출처: ‘NewJeans Pop-up Store’ Behind)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화제의 구역은 전면에 위치한 공중전화였다. 이는 별도의 포토존에 있는 공허한 소품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수록곡 ‘Hurt’ solo 버전 음원을 감상하기 위한 도구로 공중전화기를 배치해, 오로지 그곳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 요소로 방문 가치를 더했다. 방문객에게 있어, 입장까지 평균 웨이팅 3시간을 상쇄하는 건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는 감각이다. 이는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 굿즈 구매뿐 아니라 ‘미공개 음원을 들었다’는 체험형 경험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

대기를 감수하더라도 관람 시간만큼은 쾌적한 인구밀도를 유지하는 운영 및 관리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 마케팅은 무엇을 채워 넣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순환을 만들어 낼까에 대한 고민을 동반해야 한다. 운영 또한 브랜딩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굿즈와 앨범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존재 의의가 뉴진스의 팝업스토어에 있었다.


서해인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발행한다. 도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과 지니뮤직 오리지널 오디오 프로그램 <케이팝 탐사대>를 공동 진행한다. 2022년 여름, 보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이 된 과정을 담은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