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은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2024년을 지내고 곧 다가올 2025를 바라보며, 데이터로 발견한 우리 삶 속 변화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일상의 변주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일상의 루틴을 확립하는 법을 학습했다. ‘갓생’을 살기 위해, 무너진 내 일상을 재정비하기 위해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내 일상의 루틴에 여가를 추가하는 것이 아닌, 일상 그 자체를 여가화 하려는 움직임이 데이터로 포착되었다. 그 변화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하려 하고, 어떤 것에 소비하며, 누구와 함께하느냐로 나타나고 있다. 데이터와 함께 살펴보자.
2020년 vs 2024년 00투어 키워드 순위 비교 (출처: 썸트렌드 생활변화관측소)
일상 속 여행, #동네투어 #퀵턴여행
기존의 여행에 대한 인식은 장기 플랜에 가까웠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에 맞춰 미리 계획을 세우는 14박 15일 유럽 배낭여행투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10박 12일 아이슬란드 투어를 가기 위한 휴가 플랜과 같이 엄청난 사전 계획과 비용을 준비하는 여행이 ‘투어’, ‘여행’의 이름으로 주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투어는 일상의 영역인 ‘동네’까지 넓어졌다.
붕어빵 트럭을 찾기 위해 동네를 순찰하고, 방앗간처럼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동네 다이소를 가는 것이 ‘동네투어’라고 말한다. 내 일상의 주 무대인 우리 동네를 투어하는 것 외에, ‘동네투어’에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팝업’을 중심으로 한 남의 동네 투어이다. 팝업은 브랜드 홍보와 동시에 쉽게 다른 동네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서울의 동네 중 ‘성수동’, ‘연희동’의 언급 순위가 상승하고 있다. 이 두 동네의 공통점은 동네를 경험할 수 있는 팝업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이라는 점이다.
동네를 경험할 수 있는 맵을 만든 켈로그 오트로드 팝업 (출처 : 켈로그 인스타그램)
대표적인 예로 켈로그가 연희동에 열었던 켈로그 오트로드 팝업 행사가 있다. 켈로그는 신제품 그래놀라를 홍보하기 위해 연희동의 가게들과 협업을 진행해 팝업을 열었다. 켈로그 그래놀라를 올린 연희동의 아이스크림 가게, 켈로그 그래놀라를 올린 연희동의 베이글 집 등 연희동의 각 가게를 켈로그와 함께 경험하게 하고 스탬프를 모아오면 경품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켈로그와 연희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최근 ‘퀵턴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퀵턴여행’이란, 한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빠르게 다녀오는 여행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로 성심당 퀵턴 여행이 있다. 예전에는 대전에 ‘간 김에’ 성심당도 가고, 다른 관광지를 들르는 게 여행의 기본이었다면, 이제는 성심당 빵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으로도 부담 없이 짧게 다녀온다는 것이다.
퀵턴여행은 비용과 시간적 부담이 적기에 몇 일간의 휴가를 내지 않더라도, 반차만으로도 충분히 즐기고 올 수 있는 일상 속 여행이다. 동네투어와 퀵턴 여행으로 드러나는 여가의 변화는 매일의 평범함 일상을 참고 견디다, 단 한 번 폭발적으로 즐기는 여가가 아니라, 매일 일상 속에서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변화된 욕구가 드러난다.
나에게 선물이 되는 일상템 #수건 #침구 #파자마
중요해진 일상, 일상을 규칙에 맞추어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아닌 일상에 변주를 주어 재미를 더하는 것에는 여행 외에 아이템의 영역도 있다. ‘TEKLA’라는 브랜드를 아는가? TEKLA는 덴마크의 리빙 브랜드로, 수건과 잠옷, 침구를 주로 다루는 브랜드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였지만, 최근 점차 주목을 받으면서, 24년 9월에는 29CM가 큐레이션 쇼룸 ‘이구성수에서 국내 첫 팝업을 열기도 했다
덴마크 리빙 브랜드 TEKLA (출처 : TEKLA 홈페이지)
‘TEKLA’ 언급 추이 (출처: 썸트렌드 생활변화관측소)
이전에는 실용의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살림템의 변화는 이미 예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변화였다. 대표적 예로 가전의 영역에서 더 이상 부피가 큰 많이 들어가는 냉장고가 아닌, 비스포크, 스메그와 같은 예쁜 냉장고를 선호하게 됐다는 것, 엘지 오브제 라인의 등장 등 사람들이 일상 가전의 미적 아름다움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는 것은 모두가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전이나 집, 인테리어와 같은 큰 부분뿐만 아니라, 수건, 침구, 파자마와 같은 작은 영역에서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입는 잠옷,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내 피부에 닿는 수건, 매일 잠들 때 덮는 이불. 모두 나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남들에게는 남들에게 SNS 사진 등을 통해 보여줄 수는 있지만, 이런 제품들의 특징은 모두 나 자신을 위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살림템 추천! 여러 종류 수건들 중 가장 좋아하는 테클라의 수건, 발매트에요. 수건은 톡톡해서 마음에 드는데 디자인과 색감까지 멋드러지는 제품이랍니다. (중략) 발매트도 두꺼운 두께감과 잔잔한 스트라이프가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구요! 테클라로 집테기 극복!” 소셜에 올라온 구매 후기다. 이 글에서 볼 수 있듯, 하고 많은 수건 브랜드 중 TEKLA를 선택한 이유는 예쁜 디자인을 너머 집테기(집+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집테기를 느끼는 것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다. 사람들은 이제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이템이 아닌, 내가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쓰는 제품에 변주를 주어 스스로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달라지는 일상의 대상들 #퇴근후아빠 #가족데이트
00아빠 언급 순위 변화 (출처: 썸트렌드 생활변화관측소)
일상 속에서 가장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대상은 아마 가족일 것이다. 이런 일상의 대상인 가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아빠의 변화가 있다. 최근 4년간 00아빠의 키워드 언급 순위 변화를 보면, 언급 순위가 높아지는 것으로는 ‘보통 아빠’, ‘다정한 아빠’가 있다. 그리고 2024년 30위권 내에 처음 진입한 ‘퇴근 후 아빠’가 있다.
반면, 순위가 떨어지는 것으로는 ‘멋진 아빠’, ‘주말 아빠’가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아빠는 대단히 멋지고 잘난 아빠가 아닌, 보통의 다정한 아빠이며, 이런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주말이 아닌 평일의 퇴근 후이다. 특별한 날에 함께하는 특별한 아빠가 아닌, 평범한 일상의 날에 함께하는 보통의 아빠를 더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일의 퇴근 후 아빠와 무엇을 할까?
‘가족’연관 ‘데이트’ 언급 추이’ (출처: 썸트렌드 생활변화관측소)
아빠를 포함한 가족과 연관해서 최근 나타난 새로운 트렌드는 ‘데이트’이다. 과거 가족사진, 가족 행사, 명절과 같은 의무적이었던 가족은 지고 이제 연인의 영역이었던, 상호 선호의 ‘데이트’라는 형태의 가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의 데이트는 하나의 자랑 수단이 되고 있다. SNS에는 부모님과 찍은 인생네컷이 자랑처럼 올라오곤 한다. 부모님은 자녀와 찍은 인생네컷 사진을 자랑이라도 하듯 집 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둔다.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자랑의 수단이 되는 것이 ‘가족 데이트’다.
“얘들아, 친구나 애인하고만 인생네컷 찍지 말고 엄마아빠랑 인생네컷 찍어라. 엄빠도 좋아하신다. (중략)본가 가니까 주방 싱크대 상부장에 떡하니 붙여 놨더라. 좀 감동했음.” 인터넷 커뮤니티 유저의 게시글이다. 이렇듯 가족 데이트는 대단히 특별한 날 하는 특별한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평범한 일상 속 부모님과 찍은 인생네컷, 평일 저녁 아빠 퇴근 후 가족과 함께 가는 저녁 산책, 돌아오는 길에 먹는 아이스크림 등 과거 연인 혹은 친구와 하던 것을 가장 일상적인 대상인 가족에게 접목함으로써 일상의 변주를 주고 있다.
일상의 여가화, 중요해지는 평일
이렇게 일상의 여가화라는 변주를 어떤 것을 하는가, 어떤 것에 소비하는가, 누구와 함께하는 지 세 가지의 영역으로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엄청난 준비와 계획이 필요 없는 동네투어와 퀵턴여행을 통해 일상을 즐기려 하고, 수건, 침구류와 같이 내가 매일 쓰는 일상의 아이템에 변주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깝고 일상적 존재였던 가족과의 평범한 데이트를 통해 일상을 여가화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평일’이다. 중요한 것은 평일에 할 수 있어야 하며, 평일에 쓰는 아이템, 평일에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금’ 언급 추이 (출처: 썸트렌드 생활변화관측소)
‘불금’이라는 말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맥락과 같다. 여전히 쓰는 말이지만, ‘불금’이라는 키워드의 언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금요일만이 특별한 평일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이다. 금요일만 불태워 놀 필요가 없어졌다. 화요일에 반차를 내고 성심당만 얼른 다녀올 수도 있고, 목요일 퇴근 후에 성수동 팝업 투어를 할 수도 있다. 한 번에 몰아 즐기던 것을 평일의 일상 속에 나누어 담음으로써 일상 그 자체를 여가화 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 확장을 기획한다면 특별한 날이 아닌, 평일을 공략해야 한다. 자신의 평일 일상을 여가화 해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날 때 소비자는 반응할 것이다.
신예은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트렌드노트2023>, <트렌드노트 2024>의 공저자, <트렌드노트 2025>의 대표저자로 참여했다. 유튜브 생활변화관측소에 출연 및 기획을 맡고 있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다. 세상의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알기 위해 소셜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았다. 현존하는 가치관들과 앞으로 생겨날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해 생각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