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합칠 때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브랜드가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문제 해결에 구체적으로 나서는 이른바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 주목받고 있다.
흔히 마케팅의 본질은 소비자와 지속적인 가치 교환을 할 수 있는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브랜드 액티비즘이 유발하는 연대감은 소비자와 브랜드 간 관계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회심리학자인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 교수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한 배를 타고 있다고 느끼는 연대감이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고 설득 효과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소비층으로 주목받고 있는 MZ세대들은 연대 의식의 범위를 사회 구성원을 넘어 브랜드까지 확대하면서 나와 한 팀이 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브랜드인지를 묻고, 그 결과를 브랜드 소비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하고 리드하는 브랜드들이 오늘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이제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12년 멕시코에서 프리즌 아트(Prison Art)라는 사회적 기업이 탄생했다. 창업자인 호르헤 쿠에토(Jorge Cueto)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1개월 동안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수감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 목격했다. 출소 후에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수감자들이 가진 독특한 능력에 주목하게 된다. 바로 화려한 문양의 문신을 새기는 능력이었다.
그는 사람이 아닌 가죽 제품에 문신을 새길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 멕시코의 6개 감옥에서 240명의 전·현직 수감자들을 고용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멕시코에 갔을 때 매장을 직접 방문해 보니,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다소 음산해 보이는 문양(예를 들어 해골)을 새긴 여러 가죽 제품들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프리즌 아트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덕분에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총 1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프리즌 아트의 제품들.
ⓒ 인스타그램 캡처(instagram.com/prisonartofficial)
2016년 3월, 전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팀브라운(Tim Brown)과 신재생 에너지 전문가인 조이 즈윌링거(Joey Zwillinger)에 의해 탄생한 신발 브랜드 올버즈(Allbirds)도 좋은 사례이다. 올버즈는 가볍고 따뜻한 양털 소재를 사용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로 칭송받으며, 까다로운 실리콘밸리 직원들까지 사로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뛰어난 기능성 못지않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올버즈의 친환경 철학이다.
올버즈는 ‘탄소 발자국 제로’라는 목표를 가지고 제품의 생산과 소비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즉, 친환경 원재료들을 선택하고 협력 공장의 생산 공정에 개입해 탄소량을 측정하는 한편 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 후 세탁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과 버려진 제품을 폐기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까지 확인하고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올버즈의 집요한(?) 노력들은 MZ세대들이 특히 중요시하는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 자폐증 환자들의 쇼핑을 돕기 위해 2018년부터 ‘Quieter Hour’ 캠페인을
진행하는 슈퍼마켓 체인 모리슨. ⓒ morrisons-corporate.com
그 밖에도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모리슨(Morrisons)의 500여 개 매장은 주말 오전 시간대에 조명의 밝기를 낮추고 음악을 끄는 ‘더 조용한 시간(Quieter Hour)’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는 자극에 예민한 자폐증 환자들이 좀 더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일본에서는 치매 노인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한 ‘주문 실수가 잦은 레스토랑’이 오픈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NHK PD가 치매 환자의 요양 시설을 취재차 방문했는데 그곳 노인들이 원래 예정됐던 함박스테이크가 아닌 만두를 점심으로 제공하는 모습에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격리된 곳에 갇혀 있던 치매 노인들을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세상 밖으로 초대한 이 레스토랑에서 고객들은 기꺼이 주문 실수의 불편을 감내했고, 20여 개 국가에서 현장 취재를 나올 만큼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한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지만, 몇 가지 주의할 점도 있다. 먼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찬반 논란이 큰 경우 브랜드가 한쪽 의견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경우 반대쪽 소비자들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브랜드가 미국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감자 튀김 용기인 ‘게이 프라이드 박스(Gay Pride Box)’를 출시했는데, 이는 문화와 종교에 따라 자칫 큰 시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두 번째 주의 사항은 브랜드 진정성에 대한 소비자의 의심이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상업적인 목적이 강하다고 생각할 때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미국의 한 음식료업 브랜드는 종이컵에 ‘Race Together’라는 글자를 적어 주는 인종 차별 폐지 캠페인을 펼쳤지만, 이 회사의 고위직 임원들은 대부분 백인이었으며,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찍은 사진 속 손이 모두 백인 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국의 생활용품 브랜드도 피부색, 나이, 키 등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수년간 진행해 왔지만, 제품의 미백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흑인이 옷을 벗으면 백인이 되는 광고물을 제작해 인종 차별적 시각을 드러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었다.
▲ 다양한 피부 컬러를 고려해 40가지로 출시된 Fenty Beauty by Rihanna의 파운데이션.
ⓒ 홈페이지 캡처(fentybeauty.com)
이와 대조적으로 가수 리한나가 만든 뷰티 브랜드 펜티 뷰티 바이 리한나(Fenty Beauty by Rihanna)는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Beauty for All)’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며 파운데이션 색깔만 수십 가지가 되는 제품을 출시해 큰 반향을 얻을 수 있었다.
김홍선 감독의 2012년 개봉작 <공모자들>에는 “조금만 비겁해지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소비자는 이제 이익만 추구하는 브랜드를 원치 않는다. 나와 같은 편이 돼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소비하며 세상에 알린다. 따라서 브랜드 액티비즘 전략을 고민할 때에는 ‘연대감’이라는 소비자의 기저 심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지헌은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이며 브랜드 심리학자이다. 소비자 행동, 브랜드 전략, 온라인 마케팅 등에 대한 연구로 다수의 상을 받았다. 저서로 브랜드 전략서 『디스 이즈 브랜딩』, 소셜미디어 시대의 소비자에 대한 연구서 『당신은 햄버거 하나에 팔렸습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