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대학내일20대연구소 매니저

‘나는 주위에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받는다.’, ‘통증에 매우 민감하다’,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카페인에 특히 민감하다’ 등등.

최근 젊은 층이 자주 하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초민감자)’ 자가 진단 테스트의 문항 중 일부다. 지난 수년간 한국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활용됐던 MBTI 검사에 이어 ‘셀프 분석’에 진심인 Z세대 사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HSP는 단순히 성격 파악 용도가 아니라, 자신이 평소 겪고 있던 감정적 불편함의 원인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더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Z세대는 불투명한 감정을 비교적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도구에 빠져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려는 모습이다.

물론 ‘감정 관리’가 20대만의 특징은 아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15~59세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 응답자 대다수(96.8%)는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해본 행동이 있었다. 그중 20대(19~29세)는 수면·낮잠(63.8%), 콘텐츠(유튜브·웹툰 등) 보기(56.3%), 음악·ASMR 듣기(53.8%) 등의 행동이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20대 응답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20대는 생성형 AI에게 질문 및 대화하기(38.8%) 응답률이 전체 응답자(20.0%)에 비해 18.8%p나 높았다. 감정을 AI에 털어놓음으로써 관리하는 것이다. 실제 Z세대는 AI에 감정을 털어놓는 이유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챗GPT와 대화하면서 좋지 않은 감정을 비워내는 편이에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채팅방에 제 상황을 적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현실적인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확실한 피드백이 있으니 더 좋아요.” (29세 남성 김OO)

즉 20대는 AI를 업무나 학업을 돕는 보조적 성격에서 나아가, 평소 지니고 있던 고민에 대해 위로와 공감, 나아가 해결책까지 얻는 ‘감정 객관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객관적인 언어로 감정을 파악한 Z세대는 개인의 루틴 관리로 감정을 조절한다.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르티솔’의 활용 범위가 달라진 데서 알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코르티솔’ 키워드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25년 상반기 누적 언급량(13만 1676건)은 2024년 누적 언급량(9만 2540건)을 1.5배 웃돌았다. 코르티솔의 연관어로는 관리·유지 맥락의 키워드가 두드러졌으며, 특히 ‘루틴(1300%)’ 언급량이 폭증했다. 과거 질환이나 치료의 영역에서 주로 언급되던 코르티솔이 이제 스트레스 관리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루틴의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 코르티솔을 스트레스·감정 관리와 연관 지어 해결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코르티솔 분비 조절을 도와주는 ‘저코르티솔 식단’이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는 ‘다크 샤워’라는 샤워 루틴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한 불빛이 코르티솔을 높이고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는 데서 착안해, 잠들기 전 샤워를 할 때 숙면을 취하기 위해 불을 끄거나 아주 낮은 조도에서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수면의 질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Z세대는 스트레스, 피로, 무력감 등의 감정을 최대한 세밀하게 분류한 뒤 이를 코르티솔, 도파민,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과 연결 짓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을 완화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피로가 쌓이면 도파민 분비를 돕기 위해 ‘콜드 플런지(냉수욕)’을 하는 식이다. 과학적인 언어를 빌려 감정을 보다 예리하게 감각하고, 루틴으로 조절하려는 감정 케어 니즈를 확인할 수 있다.

Z세대는 감정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앱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스트레스 관리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령 마음이 복잡하거나 불편한 감정이 생겼을 때는 이를 ‘무디(Moodee)’에 기록한다. 또 스마트워치를 통해 몸의 스트레스 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관리한다. 수면 추적 앱 ‘슬립 사이클(Sleep Cycle)’으로 숙면을 위한 음악을 들으며 수면 패턴을 분석한다.

Z세대는 왜 감정 관리에 주목하는 걸까? 친구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전 세대에게는 친구에게 자신의 고민이나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나 감정을 해소했다. 그런데 오늘날 ‘느슨한 관계’에 익숙한 Z세대는 친구 관계에서 기대하는 것도 달라졌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15~64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물어본 결과, 기성세대(45~64세)는 ‘힘들 때 의지가 되어주거나 위로해주는 것’을 1위로 꼽았으나, Z세대(15~29세)는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것’(49.7%)을 1위로 꼽았다. 또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41.0%)을 ‘의지·위로해주는 것’(39.0%)보다 중시했다. 감정을 털어놓고 위로를 얻기보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Z세대는 친구와 직접 부딪히며 감정 관리 요령을 터득하기보다 AI나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익히거나, 스스로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다정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갈망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Z세대의 감정 관리가 자기 자신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세상의 결핍을 감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Z세대의 인식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매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 하나가 바로 ‘추구하는 모습’이나 ‘롤모델’에 관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과거에는 ‘스펙 좋은 사람’, ‘갓생 사는 사람’, ‘취향이 뚜렷한 사람’ 같은 이미지가 이들의 ‘추구미(추구하는 모습)’로 언급돼 왔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다정한 사람’을 추구미로 꼽는 이들이 많았다. 자기 감정을 잘 조율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니즈가 관측됐다. 최근 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만 살펴봐도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다정함이 인격이다>처럼 ‘다정’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이 많다. 평범한 일상 속 낯선 사람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스몰토크 영상이나, 표현이 서툰 사람의 말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번역하며 위로를 전하는 황석희 번역가의 ‘다정한 번역’도 주목받았다.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 신드롬’도 다정함을 추구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2026년 Z세대 트렌드 키워드로 ‘메타센싱’을 꼽았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에서 나아가, 감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태도를 일컫는 개념이다. Z세대는 메타센싱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희소해지고 있는 다정함, 배려, 여유 같은 가치를 감각하며 결핍을 채워나가고 있다. 다가올 한 해, 감정 관리와 다정함에 대한 Z세대의 니즈는 일상과 여가, 관계, 콘텐츠, 소비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메타센싱 트렌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성욱 대학내일20대연구소 매니저

국내 최초, 유일의 20대 전문 연구 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Z세대의 특성을 담은 콘텐츠를 기획·발행하고 있다. 세대별 데이터와 트렌드 사례를 중심으로 아티클을 작성하며 캐릿, 대홍기획 매거진, 퍼블리 등에 연재했다. 가치관·소비·라이프스타일 전반의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있다. 트렌드 도서 《Z세대 트렌드 2025》, 《Z세대 트렌드 2026》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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