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힘찬 테크 칼럼니스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로 공부한다”라는 말은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 9월 코엑스에서 열린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참가 기업 205곳 중 절반이 넘는 121곳이 AI 관련 부스로 채워졌다. 단 2년 만에 생성형 AI가 교육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다시 주목받는 트렌드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이 아닌 분야에 레벨, 배지, 퀘스트 같은 게임 특유의 요소를 적용해 몰입감을 높이는 기법이다. 기존 방식은 학습 서비스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만 작동해, 학습자마다 수준에 맞추기 어려웠다.
어떤 이에게는 지나치게 어렵고, 또 다른 이에게는 너무 쉬워 시시하게 느껴졌다. 게임이 난이도 불균형으로 재미를 잃으면 포기하게 되듯, 학습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생성형 AI는 학습자의 요구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해, 맞춤형 게이미피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시험공부를 게임으로, 기즈모
“사람은 배운 것의 90%를 잊어버린다” 2023년 설립된 AI 튜터 스타트업 ‘기즈모(Gizmo)’의 공동 설립자 페트로스 크리스토둘루(Petros Christodoulou)의 말이다. 아무리 필요한 것, 좋아하는 것, 흥미 있는 것을 배우더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끝내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즈모는 사용자가 PDF, PPT, 웹페이지, 유튜브 영상 등 배운 것을 입력하면 핵심 개념만 추출하여 객관식 문제 세트를 생성한다. 반복해서 외울 수 있는 문제 풀이 ‘플래시 카드 덱(Flashcard Deck)’도 자동 생성한다. 시험 전날 핵심 요약만 미친 듯이 반복해서 외워야 할 때의 경험을 생성형 AI로 구현한 것이다.

교육 자료를 넣으면 문제를 생성해 주는 AI 교육 서비스 ‘기즈모’ (출처: 기즈모 웹사이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시험 날의 기억과 다른 점이라면, 매일 몇 개 문제 이상 풀면 일일 ‘스트릭(Streak)’을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릭이란, 연속적으로 학습한 일수를 의미한다. 스트릭을 유지하면 성취도에 따라 배지나 레벨 등 보상이 뒤따르고, 친구끼리 리더보드로 순위 경쟁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생명(lives)’이라는 기능도 있는데, 하루 15개의 생명이 부여되고 문제를 틀릴 때마다 하나씩 잃는다. 모든 생명을 소진하면 10분간 대기해야 하는데, 이때 핵심 개념을 다시 익혀서 오거나 유료 결제로 생명을 충전하여 문제 풀이를 이어갈 수 있다. 마치 실제 게임의 과금 모델처럼 설계해 놓은 것이다.
이로써 학습자는 스트릭을 달성하기 위해 생명 내에서 문제 풀이를 마치도록 충분히 학습해야 하고, 매일매일 반복하기 때문에 시험 전날 벼락치기 할 일도 줄어든다. 더군다나 학습할 내용을 직접 생성하므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 아닌 수업 진도나 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영역만 집중해서 학습할 수 있다.

게임처럼 정해진 ‘생명’있고 ‘퀘스트’를 해결해야 한다 (출처: 기즈모 웹사이트)
영어 공부를 게임처럼, 말해보카
국내 스타트업 이팝소프트가 내놓은 영어 학습 앱 ‘말해보카’는 “영어, 짬날 때 해보카”라는 슬로건처럼 짧은 시간 재미있게 영어를 익힐 방법을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열었다.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공부 대신 RPG 게임을 하듯 캐릭터를 키우고 경쟁하며 배우는 새로운 방식이 핵심이다.

짬짬이 게임처럼 즐기는 영어 공부 서비스 ‘말해보카’ (출처: 말해보카 웹사이트)
사용자는 매일 ‘하루 10분 학습 미션’을 수행하며 어휘, 문법, 발음을 퀴즈처럼 반복 학습한다. 틀린 문제는 오답 노트로 자동 저장되어 다시 출제되며, 발음도 다시 교정해 준다. 학습자별 취약점을 분석해 맞춤형 문제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매일 학습을 완료하면 포인트와 ‘다이아’가 쌓이고, 이를 이용해 아바타 캐릭터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실력이 비슷한 이용자끼리 점수를 겨루면서 상위권에 오르면 보상과 함께 캐릭터가 성장하는 리그전이라는 시스템도 있다. 학습, 미션, 경쟁을 하나의 앱에 모두 합친 것이다.
2024년에는 생성형 AI를 도입하여 사용자가 어휘 학습 중에 “이 단어의 반의어는 뭘까?” “비슷한 표현은 또 뭐가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면 앱 안에서 곧바로 질문하고 답을 얻을 수 있는 AI 질문 답변 기능을 추가했다. 여행을 앞둔 학습자가 공항 또는 호텔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을 요청하거나 취업 준비생이 면접에서 필요한 문장 예시를 요구하면 생성형 AI가 맞춤형 예문도 제공한다. 대화형 멘토와 함께 공부함으로써 몰입감을 증폭하여 게이미피케이션 효과를 더 강화한 것이다. 이러한 혁신성으로 출시 3년 만에 국내 주요 앱 마켓 교육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했고, 2025년 7월 기준 누적 다운로드 800만 건을 돌파했다.
코딩으로 PvP, 솔로런
2014년 출시된 ‘솔로런(SoloLearn)’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게임처럼 배울 수 있는 앱으로 인기를 끌었다. 학습자는 레벨과 경험치(XP) 포인트로 시각화된 학습 진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전 세계 학습자들과 같은 문제를 두고 1대1 실시간 코딩 대결을 펼쳐 승자가 XP를 차지하는 코딩 챌린지가 솔로런의 핵심이다. 모바일로 즐기는 프로그래밍 PvP 게임이다.

코딩 대결을 펼치며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솔로런’ (출처: 솔로런 웹사이트)
하지만 학습자가 학습 도중 또는 코딩 대결을 마친 후 모르는 부분, 놓친 부분 등 추가 학습이 필요한 내용에서 모든 사용자 수준에 난도를 맞춰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기존에는 게시판에서 고수가 초보의 질문에 답변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고수가 답변해 주지 않으면 초보는 이해할 방법을 솔로런을 벗어나서 다시 찾아야 했다.
그래서 솔로런은 2023년에 ‘코디(Kodie)’라는 생성형 AI 멘토 시스템을 추가했다. 학습자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24시간 개인 코딩 튜터다. 이해가 안 되는 오류 메시지를 입력하면 초보자도 알아듣기 쉽게 자연어로 설명하고, 사용자의 실력과 학습 패턴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 코딩 문제를 생성해 준다. 학습자는 앱을 이탈하지 않고 취약한 개념을 파악해서 맞춤 콘텐츠로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솔로런은 앱 내에서 문제를 해결한 학습자가 향상된 실력을 검증하고자 코딩 챌린지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학습과 AI의 본격적인 결합
생성형 AI는 학습 콘텐츠의 난이도를 개인별로 조정해 맞춤형 게이미피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덕분에 기존의 일률적인 학습 방식이 가진 한계를 넘어, 학습자가 필요한 순간에 자기 수준에 맞춰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앞서 사례에서 보듯 AI 기반 학습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반복, 참여, 경쟁, 보상 같은 게임적 요소와 결합해 학습자의 동기와 지속성을 극대화한다.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생성형 AI와 게이미피케이션은 공통적으로 학습 경험을 개선하고 성취감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앞으로의 학습은 더 이상 교재와 강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AI가 학습 여정을 설계하고, 게이미피케이션이 몰입을 뒷받침하며, 학습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상호작용적이며 재미있는 경험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는 학습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흐름이 될 전망이다.
오힘찬 테크 칼럼니스트
15년 차 테크 칼럼니스트이자 마케터. SK엔터프라이즈, LG CNS, 아웃스탠딩, 월간 IUM, 비석세스 등 기업/매체와 협업하여 약 4,000편의 기술 동향, 기업 분석, 산업 동향, 스타트업 조명 등 칼럼을 발행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실제 업무에 적용한 AI 활용 사례를 글과 책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ai100.co.k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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