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대학내일20대연구소 매니저
바야흐로 K의 시대다.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의 위상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제목부터 K가 붙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흥행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Z세대는 ‘케데헌’ 속 음악과 한국 전통문화에 열광했다. 주제곡 ‘골든(Golden)’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립 박물관에서는 외국인 카드 이용 건수가 올해 37% 늘었다. 호랑이와 까치 등 ‘케데헌 뮷즈(박물관 굿즈)’를 사기 위해 몰려든 외국인들 덕분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출처: 넷플릭스)
Z세대가 K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플랫폼과 장르의 다양화, 퀄리티의 상승, 스타 캐스팅 등 여러 요인이 있다. 하지만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Z세대가 소비하는 콘텐츠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특징에 주목했다. 오늘날 Z세대에게 콘텐츠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현실에서 결핍된 감성을 채우고 인간관계에 필요한 사회적 스킬을 배우는 통로라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폭싹 속았수다’로
K콘텐츠 화제성의 중심에는 넷플릭스가 있다. ‘킹덤’, ‘더 글로리’,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리즈가 글로벌 시청자를 사로잡아왔다. 그런데 2025년 상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폭싹 속았수다’는 기존의 흥행작들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물(킹덤)도 아니고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극(더 글로리)도 아니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오징어 게임’ 같은 극한적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광례와 애순, 금명까지 3대에 걸친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폭싹 속았수다’는 인류애의 결정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사랑, 서러움을 함께 견디는 연인 간의 사랑이 시청자의 눈물을 쏟게 했다. 즉 최근 부상하고 있는 K콘텐츠의 핵심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휴머니즘’이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출처: 넷플릭스)
Z세대가 ‘아는 맛 클리셰’에 반응하는 이유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드라마·예능 속 Z세대 가치관 키워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모습을 ‘보편 감성 충전’이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현실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경쟁 사회에서 지친 Z세대는 콘텐츠를 통해 감정적 안정과 위로를 구한다. Z세대는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서로 마음이 엇갈리거나 오해와 갈등이 잦은 연인의 모습보다는 오랜 시간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진 직진 서사에 호응하고 있다.
또 가족의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나아가 1인 가구로 파편화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콘텐츠에도 반응하고 있다. 2024년 ‘선재 업고 튀어’의 선재나 2025년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 대표적이다. 회귀물인 ‘선재 업고 튀어’에서 선재는 여주인공이 회귀할 때마다 상황이 달라지는데도 한결같은 순애보를 보인다.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편단심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로 등장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관계·커뮤니케이션 정기조사 2025’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Z세대의 실제 인식이 담겨 있다. 조사 결과, Z세대의 절반가량(46.3%)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특히 친구(54.7%), 선·후배(38.6%), 친가 쪽 친척(31.2%), 연인(24.2%), 조부모(17.2%)에게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이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현실 관계에서의 결핍이 콘텐츠 속 보편 감성을 통해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Z세대가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장면이더라도 보편 감성을 충전할 수 있다면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마음 편히 보기에는 ‘아는 맛’인 클리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디즈니 동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Z세대 정성 조사 결과, 뻔한 클리셰가 나오면 이후 스토리가 예상되면서 오히려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언급이 나왔다.
연애를 TV로 배우고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Z세대가 콘텐츠를 통해 인간관계 스킬을 학습한다는 것이다. 특히 리액션 · 리뷰 콘텐츠 등 2차 콘텐츠가 Z세대에게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콘텐츠 시청 전후 과정에서 탐색하는 정보 유형을 조사한 결과, Z세대는 다른 세대와 비교해 ‘전반적인 줄거리(44%)’보다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49%)’를 찾는 비율이 높았다.

Z세대에게 주목받는 2차 콘텐츠 (출처: 대학내일20대연구소 ‘드라마·예능 속 Z세대 가치관 키워드’ 보고서)
Z세대는 2차 콘텐츠를 통해 인물들의 소통 방식을 분석하고, 현실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점들을 탐색한다. 연애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연애 경험이 없는 이들의 미숙한 연애 도전기를 보여줬다. Z세대는 출연진의 서툰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다가 “나도 저런 면이 있을까?” 되뇌며 성찰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행동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30 남녀의 연애 관련 인식 및 행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특히 20대 남성에게서 연애 프로그램 시청 후 달라진 태도가 눈에 띄었다. 이들은 ‘연애에 필요한 대화법이나 표현 방식을 알게 됐다(37.1%)’, ‘연애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다(21.6%)’,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배웠다(21.6%)’ 등의 응답이 비교적 높았다. 방송을 통해 현실 연애를 배워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Z세대는 콘텐츠를 통해 사랑·우정·행복 같은 보편 감성을 채우며 더 나은 관계를 찾아간다. 브랜드 역시 기능을 넘어, 공감과 감성을 채워주는 서사를 제안할 때 Z세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대학내일20대연구소 매니저
국내 최초, 유일의 20대 전문 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Z세대의 특성을 담은 콘텐츠를 기획·발행하고 있다. 세대별 데이터와 트렌드 사례를 중심으로 아티클을 작성하며 캐릿, 대홍기획 매거진, 퍼블리 등에 연재했다. 가치관·소비·라이프스타일 전반의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있다. 트렌드 도서 《Z세대 트렌드 2025》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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